
2002년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릴로 & 스티치>가 실사 영화로 돌아온다. 전 세계 수익 2.7억 달러, 제75회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노미네이트까지. 제작비 약 8000만 달러의 작은 몸집에 비해 제법 굵은 성과를 거뒀던 이 작품이 20여 년 만에 실사화된다는 소식에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일었다.
걱정은 디즈니가 최근 선보여온 실사화 영화들의 성적을 보면 쉽게 납득된다. <인어공주>(2023)는 글로벌 수익 5.4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7억 달러에 달하는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뒤이어 개봉한 <무파사: 라이온 킹>(2024)은 그나마 체면치레 수준의 흥행을 보여줬지만 <백설공주>(2025)는 2.7억 달러에 달하는 제작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익을 내며 공개 후 줄곧 혹평에 시달렸다. 급기야 그 여파로 실사화 예정이던 <라푼젤>은 제작이 중단되기도 했다. <썬더볼츠*>의 배우 플로렌스 퓨가 주연, <위대한 쇼맨>의 마이클 그레이시가 감독으로 내정되어 있던 작품이었다.
이 와중에 <릴로 & 스티치>는 망해가던 디즈니 실사화 라인업에 작게나마 날개를 달아줄 가능성을 보여준다. 원작의 감정선을 과하게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실사와 CG가 섞인 장면에서는 디즈니가 꾸준히 갈고닦아온 기술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무리한 재해석 대신, 익숙한 이야기의 결을 따라가며 현재 디즈니가 실사화를 통해 다시 되새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증명해 보인다.
※ 이하 <릴로&스티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릴로 & 스티치>는 하와이 섬에 사는 엉뚱한 소녀 릴로와, 우주에서 가장 위험한 실험체인 스티치의 우정을 그린다. 부모를 여의고 언니 나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릴로는 친구와의 관계에 서툴러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하다. 언니 나니는 동생을 부양하고 생계를 꾸리느라 늘 벅차다. 이들은 사회복지사의 감시 아래 언제든 떨어질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그리고 이들 앞에 외계 생명체 스티치가 뛰어든다.
실사화 영화 <릴로 & 스티치>의 전반부는 원작과 높은 유사도를 보인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장면 하나하나를 그대로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티치(실험체 626호)를 만든 외계 행성의 박사 점바 주키바의 재판 장면과 그의 탈출, 릴로의 훌라 댄스 발표와 언니 나니와의 갈등 등은 원작의 팬이라면 반갑게 맞이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다.

디즈니의 전작 <백설공주>에서 일곱 난쟁이가 어설픈 CG로 구현되어 관객의 웃음을 샀던 것과 비교하면, <릴로 & 스티치>는 같은 라이브 액션 방식임에도 훨씬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완성되었다. 라이브 액션이란 실제 풍경과 배우의 연기를 먼저 촬영한 후 CG 캐릭터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디즈니가 그간 실사화 작품을 통해 꾸준히 다듬어온 기술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기술에 힘을 더하는 것은 릴로 역의 배우 마이아 케알로하다. 15번의 오디션을 거쳐 데뷔하게 된 이 신예는 실제 배우 없이 연기해야 하는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릴로 특유의 활기, 외로움, 따뜻함을 고르게 보여주며 극의 중심을 잡는다.
원작과의 눈에 띄는 차이는 서사의 구조보다는 감정의 방향성이다. 원작에서 스티치는 ‘미운 오리 새끼’라는 이야기와의 연결을 통해 자아 탐색의 여정을 겪는다. 파괴를 위해 태어났지만 사랑을 통해 존재의 이유를 발견하는 서사는 원작의 핵심 정조였다. 반면 실사화에서는 해당 모티브가 생략되고, 스티치가 릴로와 맺는 관계의 흐름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다. 개별 인물의 감정보다는 둘 사이의 상호작용, 즉 관계성의 전개에 무게를 둔 것이다. 이로 인해 인물의 깊이는 다소 얕지만, 캐릭터 간의 결속은 더 선명해졌다. 미운 오리 새끼의 내적 고뇌가 원작의 매력이라면, 실사화는 그 관계에서 오는 유쾌함과 따뜻함을 부각하며 전혀 다른 정서를 구축한다.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원작과의 차이가 더욱 분명해진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이 흐릿했고, 등장인물들 역시 제각기 자기만의 논리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실사화는 인물 간의 선악 구도를 보다 명확히 하고, 주변 캐릭터를 간소화하거나 성격을 변형시키며 이야기를 보다 직선적으로 끌고 간다. 이는 앞서 언급한 릴로와 스티치의 결속을 중심에 놓겠다는 선택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원작과 다른 방식으로 독자적인 매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