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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산골영화제가 감독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디렉터즈 포커스, 엄태화 감독의 장편들 ②

주성철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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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투기〉

<잉투기>(2013)

잉여들의 인터넷 디스토피아 탈출기

‘엄태화 유니버스’라는 관점에서 <잉투기>를 지금 다시 보면, 태식(엄태구)의 방에 붙어 있는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1984) 1편 포스터가 유독 눈에 띈다. 아마도 10년 전 많은 이들이 <잉투기>로 엄태화 감독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그린 근미래 SF <터미네이터>가 <잉투기>라는 영화 안에서 지나치게 생뚱맞기 때문이다. 그건 엄태화 감독의 전체 필모그래피 안에서 바라봐야 이해 가능한 설정이다. 그는 자신의 실질적인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단편 <선인장>에도 마지막 챕터 제목을, <터미네이터 2>(1991)의 부제인 ‘심판의 날’로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디스토피아적 정서를 압축하고 있는 공간이 바로, 그 ‘선인장’으로 가득한 멕시코 국경 지대의 어느 곳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이 자신의 본령과도 같은 디스토피아와 무관한 영화 <잉투기>를 만들고 있음에도, 창작자로서 그것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인터넷 커뮤니티의 삶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잉투기>의 서사를 디스토피아적으로 바라본 것일 수도 있다. 아마 둘 다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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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투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칡콩팥’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잉여인간’ 태식은 같은 커뮤니티에서 사사건건 대립하는 ‘젖존슨’에게 급습을 당한다. 심지어 대낮에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힌 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인터넷 세계에서 치욕적으로 조리돌림을 당한 그는 ‘젖존슨’에게 복수를 다짐하고, 절친 희준(권율)과 종합격투기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때 유망한 ‘격투 소녀’로 신문 기사까지 났지만, 현재는 인터넷에서 ‘먹방’ 방송을 운영하는 영자(류혜영)를 만나 힘을 합친다.

 

‘우리는 싸우고 있다’라는 뜻, 혹은 ‘잉여들의 분투기’라는 뜻의 ‘ING+투기’라는 제목은 온라인의 칡콩팥이 현실의 태식으로 커밍아웃하는 이야기다. 온라인 세계가 오프라인 현실의 나를 규정하고 지배하고 있기에, 젖존슨의 급습 이후 겪게 된 태식의 ‘안면타격공포증’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그 이상의 고통이다. 엄마(길해연)와 함께 코스타리카로 이민을 떠날지도 모르는 현실보다 자신의 인생을 건 문제인 것. 한국 청춘영화의 유구한 계보 안에서 <잉투기>는 온라인상에서 발생한 다툼을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 싸우는 이른바 ‘현피’, 그렇게 학교나 집이 아니라 온라인 세계에서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청춘들을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영화라 할 것이다. 한편, 태식 모자가 이민을 계획했던 코스타리카의 1,000콜론 짜리 지폐에는 특이하게도 코스타리카피타야선인장 꽃이 그려져 있다. 중요한 얘기가 아닐 수도 있겠으나, 또 한 번 엄태화 감독의 오래전 단편 <선인장>을 떠올려봤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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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시간〉

<가려진 시간>(2016)

멈춰진 시간에서 살아 돌아온 아이를 믿을 것인가 내칠 것인가

“너만, 나를 믿어주면 돼”라는 대사처럼 <가려진 시간>은 엄태화 감독이 줄곧 다뤄온 ‘믿음’의 문제가 디스토피아의 풍경과 만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가려진 시간’ 혹은 ‘멈춰진 시간’의 풍경이 디스토피아의 그것이나 다름없다.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춰버리고 어린 성민(이효제)을 비롯한 세 친구만 살아 움직인다. 처음에는 세상에 그들밖에 없기에 한없이 즐거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없이 무료해진다. 결국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망해버린 세상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지는 것. 텅 빈 백화점의 캠핑장 코너에서 그들이 보는 만화책, 타무라 유미의 SF 만화 「세븐시즈」(7SEEDS)는 무척 상징적이다. 운석 충돌로 전 인류가 멸망할 위기에 처하자, 각 나라의 정부는 ‘7SEEDS’라는 프로젝트를 발동해 10대 소년 소녀들을 엄격하게 선발해 7명씩 팀을 만들어 냉동 보존한다. 그렇게 멸망 이후, 오로지 냉동 보존된 사람들만 살아남아 살아가는 이야기다. 멈춰진 세상을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상으로 설정한 것은 그로 인해 명확해진다. <가려진 시간>은 그렇게 멈춰진 시간 안에서 14살 아이들이 20살이 되면서 나이 든 성민과 또 다른 친구 태식은, 각각 강동원과 엄태구 배우가 연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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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시간〉

수린(신은수)은 엄마를 잃은 후 새 아빠(김희원)와 함께 섬마을 화노도로 이사 온다. 자신만의 공상에 빠져 홀로 지내는 수린과 성민은 그들만의 암호를 주고받으며 친하게 지낸다. 어느 날, 공사장 발파 현장을 구경하기 위해 그들은 친구들과 산으로 가고, 모두가 실종된 채 유일하게 수린만 돌아온다. 그리고 며칠 뒤, 자신이 성민(강동원)이라는 남자가 수린 앞에 나타난다. 그는 자신이 ‘멈춰진 시간’에 갇혀 어른이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오직 수린만이 성민을 믿어주고 모두가 그를 의심한다.

<가려진 시간>은 세월호의 비극에서 출발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안에서 시간이 멈췄을 때 횡단보도 신호등의 초록색 숫자가 ‘14’로 맞춰져 있고, 쇼핑몰의 시계는 ‘4시 16분’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4월 16일을 잊지 않기 위해 영화 속에 기호로 남긴 것. 그래서 <가려진 시간>이란 제목은 참사 이후 멈춰버린 우리 사회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인이 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마음이랄까. 아니면, 엄태화 감독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언제나 호명되는 <터미네이터>의 타임슬립처럼 비극을 막기 위해 시간을 멈추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날의 일을 지금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우리 사회는 그 자체로 디스토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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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시간〉

혼자만의 믿음으로부터 더 나아가 세상을 향해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결심한 수린의 모습은 무척 감동적이다. 팀 버튼의 <가위손>(1990)처럼 지난 일을 들려주는 구조의 <가려진 시간>은 영화 속 아동심리학자 민경희(문소리)의 책 「가려진 시간」의 서문으로 시작해 “이제 거짓말하지 않으려고요”라는 수린의 이야기를 더해 마무리된다. 아이들의 실종과 세월호 참사 이후 저마다 서로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모를 시간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간절한 주문이자, 엄태화 감독의 매혹적인 판타지가 진심 어린 현실 인식과 탁월하게 조우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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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

황궁아파트에서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다시 보면 유독 눈에 밟히는 인물이 바로, 뒤늦게 황궁아파트로 간신히 살아 돌아온 901호 학생 혜원(박시후)이다. 즉각적으로 전작 <가려진 시간>의 성민(강동원)처럼 대지진으로 인해 외부 세계에서 ‘멈춰진 시간’을 보내고 왔을지도 모르기에, ‘엄태화 유니버스’의 연결고리라고도 볼 수 있다.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지옥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온 것 같은 혜원은, 그 외부 세계에서 겪은 일에 대해 마치 흥밋거리처럼 묻는 황궁아파트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심지어 아파트 사람들은 명화(박보영)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처럼 힘겹게 ‘살아 돌아온 아이’를 딱히 반기지도 믿지도 않는다. 다시, 엄태화 유니버스의 ‘믿음’이라는 테마 위에서 진짜 주민인 혜원은 의심받고 가짜 주민인 영탁(이병헌)은 무한한 신뢰를 얻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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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대지진으로 세상은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다. 어쩌면 부동산 경매 일을 하는 <잉투기>의 태식 엄마(길해연)가 한 번쯤 들렀을지도 모를 황궁아파트만이 그대로다. 외부 생존자들이 몰려들자 위협을 느낀 입주민들은 새 주민 대표 영탁을 내세우고, 새 규칙을 만들어 외부인들을 몰아내기로 한다. 그처럼 디스토피아의 세상 속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세우려는 목표에 한걸음 다가서지만, 외부에서 구해오는 물자들이 바닥나기 시작하고 외부의 침입도 도사리는 가운데, 급기야 영탁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은 혜원이 살아 돌아오면서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영화의 최고 명장면은, 주민 회의 후 벌어지는 입주민과 외부인의 대치 상황일 것이다. 입주민은 유선방송 원형 안테나를 마치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처럼 들고나오고,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외부인 꼬마는 친한 형 민성(박서준)을 향해 손을 흔들며 해맑게 웃는 가운데, 중요한 발표를 해야 하는 영탁의 확성기는 마치 싸구려 행사장의 그것처럼 계속 에러를 낸다. 이후 벌어진 입주민과 외부인의 격렬한 싸움을 마무리 짓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그동안 ‘샤이 유권자’라고 불러온 이들을 은유하는 것 같은 다른 입주민들, 즉 피 터지는 싸움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으나 저마다의 집 복도에서 화분과 각종 물건을 마치 인터넷 세상의 ‘악플’처럼 내던지는 끔찍한 풍경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콘크리트 유토피아〉

마치 <잉투기>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닉네임 뒤에 숨어 태식(엄태구)을 조리돌림하던 광기의 탄생이자, 이른바 ‘침묵하는 다수’의 실체를 목격하게 되는 순간이다. 세상이 망해서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결국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세상이야말로 디스토피아다. 그처럼 엄태화 감독은 단편 <선인장>으로부터 20여 년 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이르기까지, 디스토피아의 풍경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주제와 더불어 길고 긴 ‘엄+투기’의 시간을 보냈다. ‘위대한 예술가는 평생 하나의 주제를 다룬다’는 명제는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의 그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저는 엄태화 감독이 선택받았다, 그렇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