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SF 불모지라는 이야기가 많다. 실제로 해외 유명 SF 영화 시리즈인 '스타워즈'가 한국에서 그닥 인기를 끌지 못하는 걸 보면 정말 한국은 SF 장르 불모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SF 장르에 속한 성공작들이 결코 적지 않다. 우선, 봉준호 감독. 그가 만든 <설국열차>(2013)와 <괴물>(2006), <옥자>(2017)는 장르적인 측면이 도드라지는 SF 영화들이며, 작품성과 흥행 모두 성공적이었다. 비교적 최근에 개봉한 <승리호>(2021)는 한국에서 인기가 없다고 정평이 난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번에 개봉한 <서복>(2021) 역시 SF 철학 영화다. 오늘은 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는 한국 SF 영화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마녀
감독개봉 년도
박훈정 감독의 SF 액션 <마녀>는 개봉과 동시에 대중에게 '자윤'(김다미)이라는 캐릭터를 각인시켰다. 피범벅이 된 이름 없는 꼬마는 10년 후, 고등학생 자윤이 되어 조용하게 살아간다. 공부는 잘하지만 유난히 체력이 약했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자신을 '마녀'라고 부르는 귀공자(최우식)를 만나며 뜻밖의 진실과 조우하게 된다. 힘을 개방한 이후 선보이는 자윤의 액션은 이전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휘몰아치는 액션이었다. 이전까지 쌓아 올린 드라마는 액션을 통해 폭발한다. 그 강렬한 잔상에 관객들은 속수무책으로 영화에 빨려들어가게 된다.
동그랗고 순진무구한 얼굴의 김다미는 자윤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 시켰다. 특히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동물에 가까운 액션이 드러나는 순간 영화는 완전히 새로운 매력을 선사한다. 마치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처럼 화려하고 역동적인 액션신과 김다미의 이미지가 주는 괴리감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게다가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에, '용서가 가장 큰 복수다' 따위의 시시한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다. 후진 없는 그의 행보에 한동안 '자윤앓이'를 지독하게 겪은 사람들도 있을 정도. 지금껏 본 적 없는 한국의 '마녀'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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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훈정
출연 김다미, 조민수, 박희순, 최우식
개봉 2018.06.27.
승리호
감독개봉 년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승리호>는 SF 영화의 불모지라 평가받아온 한국에서 당당하게 '한국 최초의 우주 SF 영화' 타이틀을 걸고 나온 작품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24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투입됐는데, 관객들의 평은 '자본이 들어간 만큼 볼거리는 풍부하다'는 평이 주요했다. 캐릭터 빌드업이 다소 진부하다는 평도 있었으나, 첫 단추치곤 꽤 잘 채웠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단순히 한국 최초 SF 우주 영화라는 타이틀을 넘어, 한국에서도 이러한 장르 제작이 가능해졌다는 걸 알리는 신호탄과 같은 작품이었다.
<승리호>의 배경은 여타 우주 SF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92년 미래, 사람들은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우주에 있는 시민 거주 단지에서 지내고 있다. 물론 이는 우주개발기업 UTS가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인류의 5%만이 갈 수 있다. 나머지 95%는 지구에 남아 있거나, 우주 노동자로 일을 하고 있다. <승리호>의 주인공들은 우주 노동자 계급으로 우연히 지구 환경 재생의 희망인 어린이, 꽃님이를 만나게 되며 사건이 시작된다. 사실, 줄거리만 읊자면 매우 신선하고 창의적이진 않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승리호>에 좋은 평점을 준 이유는 바로 이전까지 없었던 '한국'의 정서가 들어간 스페이스 오페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주 청소부'라는 직업적인 특징이 주는 시각적인 쾌감도 분명히 존재했다. 결국 <승리호>는 과거에도 있었던 이야기를 새로운 장르와 결합시켜 전에 없던 비주얼을 만들어 낸 영화다.
- 승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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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성희
출연 송중기, 김태리, 진선규, 유해진
개봉 미개봉
서복
감독개봉 년도
이번에 개봉한 <서복>은 철학적인 메시지를 SF 장르로 풀어낸 영화다. <서복>은 한국 영화 최초 복제인간을 다뤘다는 점과 비주얼 톱배우 공유와 박보검을 한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것으로 굉장히 이슈가 되었다. 영화는 '삶과 죽음의 연관성'이라는, 수많은 이들이 말한 주제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 SF 장르를 선택했다.
영생을 살아가는 복제인간 서복(박보검)과 시한부 판정을 받은 기헌(공유)은 설정만 놓고 보면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다. 뇌종양 교모세포종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은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실험체 서복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임무를 맡는다. 임무를 무사히 성공한다면 병을 고쳐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그는 죽음이라는 분명한 공포 앞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복제인간인 서복은 그런 기헌의 공포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영원에 갇혀버린 자신은 도대체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다른 두 캐릭터를 한 프레임 안에 둠으로써, 영화는 유한한 삶과 그 속의 의미를 강조한다.
- 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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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용주
출연 공유, 박보검, 조우진
개봉 2021.04.15.
괴물
감독개봉 년도
한국 SF 영화를 말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감독, 봉준호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는 <괴물>, <설국열차>, <옥자> 세 편을 통해 SF 장르 영화에서도 성취를 거머쥐었다. 실제로 <괴물>과 <설국열차>는 미국 유력 매체 '인디와이어'가 선정한 21세기 영화 중 가장 훌륭한 공상과학(SF) 영화 톱35에 이름을 올렸다. <설국열차>는 24위, <괴물>은 4위에 랭크되었다. 특히 <괴물>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에이 아이>(2001),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드니 빌뇌브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2049>(2017),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2010)보다 상위에 랭크 되어 눈길을 끌었다.
이토록 한국사회의 맥락이 완벽하게 녹아 있는 SF 영화는 아직까지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강을 배경으로, 주한미군이 불법으로 버린 독극물에 의해 탄생한 돌연변이 괴물 이야기는 해외에서도 찬사를 보냈지만 사실 서울 사람들이 가장 잘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기존의 크리처물이 갖고 있는 장르적 재미는 살리되, 새로운 캐릭터성을 통해 클리셰를 비튼다. 익숙함과 새로움이 주는 재미를 동시에 갖고 가는, 놀라운 작품이다. 봉준호의 개성 넘치는 유머는 주제의식과 만나 날카롭게 다듬어진다. 그렇기에 <괴물>은 '한국' SF 영화가 지향하는 바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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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봉준호
출연 송강호, 변희봉, 박해일, 배두나, 고아성
개봉 2006.07.27.
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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