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책을 사는 데 있어 기준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조금만 긴장 풀고 책을 사다 보면 굳이 사지 않고 도서관 같은 곳에서 빌려 읽어도 될 만한 책들까지 사기 때문이다. 돈도 돈이지만 책이라는 물건이 차지하는 자리가 이제 은근 부담스럽다.
 
음반을 사거나 블루레이를 살 때도 항상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편인데 별건 아니다. 한번 듣거나 보고 말 것 같은 콘텐츠는 도서관 등에서 빌려서 읽고, 두 번 이상 볼 것 같은 콘텐츠는 사서 본다. 문제는 집에 사놓고 압도적으로 여러 번 읽는 책의 태반이 <술 한 잔 인생 한 입>, <바 레몬하트> 같은 만화책이라는 건데... , 상관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ㅎㅎㅎ.
 
책도 책이지만 영화 블루레이를 살 때 더 신경을 쓰는 편인데, 나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콘텐츠에 더 민감한 편이라 그렇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어떤 이유로든 맘 한구석이 불편해지면 그걸 참고 계속 보는 걸 잘 못한다. 그러다 보니 극장보다는 집에서 영화 보는 걸 선호하게 되고, 그렇게 네이버 영화 다운로드 서비스로 다운받아 영화를 본 뒤, 두 번 세 번 보겠다 싶은 작품들은 DVD나 블루레이를 사게 된다.
 
하여간, 이렇게 여러 번 보는 영화들이 여러 개 있는데 <카모메 식당>이나 <마더워터>가 그랬고, <아메리칸 셰프><브루스 올마이티>가 그랬고, <라따뚜이><몬스터 주식회사>가 그랬고, <키키><붉은 돼지> 같은 지브리 애니메이션들이 그랬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언어의 정원>.

<언어의 정원><너의 이름은.>으로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이다. 구두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하는 고등학생 타카오와 학교 선생님 유키노가 비오는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후 비가 내리는 날마다 만남을 거듭하며 점점 가까워지게 되고, 그런 그녀에게 구두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가까워지다 여러 이유들로 멀어지게 되는, 하지만 끝맺지 않고 여운을 남기는 그런 이야기를 예쁜 영상 속에 담담히 풀어낸다.

영화 내내 잔잔한 감동과 동질감을 느꼈지만 또 군데군데 코믹 포인트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초입부에 주인공 타카오가 공원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술 마시는 게 금지된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는 선생님이라니, 하하.

유키노 선생이 술을 마시던 공원의 입구. 우측 상단에 알코올 금지라고 떡! :)

공원에서, 그리고 집에서 유키노 선생이 마시던 술은 주로 맥주인데 우연인지 PPL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부 산토리사의 제품이고, 일본 주세법상의 분류로는 맥주뿐만 아니라 발포주, 3맥주 등도 섞여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위 ‘4캔 만 원으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맥주들인데 마시기엔 다 비슷비슷하지만 조금씩 제법이나 원료 함량이 다르다. 그 차이는 다음과 같다.
 
맥주 : 맥아, 호프, 물을 원료로 발효한 것, 혹은 법으로 정해진 기타 재료를 맥아의 50% 이내로 써서 발효한 것.
발포주 : 맥아를 재료의 일부로 써서 발효해 만든 것. 다른 재료를 자유롭게 사용해 만들 수 있으며 원재료 중 맥아의 비율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제1, 2, 3발포주로 나눠서 부른다. (각각 50% 이상, 25% 이상, 25% 미만)
3맥주 : 맥아 이외의 원료를 사용한 맥주와 비슷한 음료. 혹은 발포주에 증류주(소주 같은 것)를 추가한 것. 산토리 킨무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사실 발포주가 처음 나오게 된 것은 일본의 버블 붕괴로 사람들의 씀씀이가 박해지면서 싼 맥주를 만들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발포주는 상대적으로 비싼 재료인 맥아를 적게 쓰니 원가도 덜 들어가고 게다가 일본 주세법상 발포주는 맥주보다 세금도 싸기 때문에 싼 가격으로 팔 수 있었다. 기린에서 탄레이라는 발포주를 대히트시키면서 다른 맥주회사에서도 앞다투어 발포주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일본에서 발포주가 정착되었다.
 
맥아의 비율에 따라 맥주와 발포주가 나뉘니 맥주는 무조건 좋은 것이고 발포주는 무조건 싸구려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꼭 그런 건 아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법에서 정해지지 않은 다른 재료가 들어가도 발포주로 분류되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고수가 들어간 1664블랑 같은 좋은 맥주도 일본에서는 발포주로 분류된다. (솔직히 우리나라 맥주보단 일본 발포주가 훨...쿠허험.)
 
그러다가 일본 정부에서 발포주 주세를 올렸다. 기업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맥주라는 건 기본적으로 보리로 만든 술인데 아예 보리를 안 쓰고 맥주 비슷한 술을 만들어버리거나, 발포주에 증류주를 섞어서 출시하기 시작한다. 그게 제3맥주의 시작이다.
 
아무래도 편의점에서 맥주를 살 때 맥주와 제3맥주를 구별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데, 의외로 그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언어의 정원>에 나오는 술을 예로 들자면,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는 맥주고 킨무기는 제3맥주(발포주에 증류주를 더한 방식으로 만든다)인데 맥주의 경우 하단에 가타카나로 ビール’(비루, 비어의 일본식 표기)라고 표기되어 있고 제3맥주의 경우 リキュール(発泡性)’(리큐르, 술이라는 뜻)라 표기되어 있다. 참고로 발포주는 '発泡酒'라 표기된다.

3맥주는 아예 보리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있고 보리를 쓰더라도 다른 술이 들어가니(소맥?) 맥주와 제3맥주를 결국 진짜가짜라고 구별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난 그 구분에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며칠 전 정말 오래간만에 크래쉬가 부른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노래를 들었는데 보컬인 안흥찬씨는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그 나이를 쳐 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 이거 아니면 죽음, 이거 아니면 끝장 네 전부를 걸어보고 싶은 그런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고 묻는다. 뭐 틀린 말은 아닌데 너무 무겁다.
 
글쎄, 이 나이를 먹도록 나는 내가 진짜’ ‘내 전부를 걸 정도로좋아하는 일이 뭔지 잘 모르겠다. 살아보니 거창한 것이 딱히 인생에 필요한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냥 몸 건강하게 오늘 하고 싶은 걸 오늘 하고 싶다. 내일 하고 싶은 것이 내일 생기면 그건 내일 또 하면 되는 거고. 내가 좋아하는 게 언필칭 가짜면 어떤가. 나만 좋으면 그만인 걸. 그래서 난 발포주나 제3맥주라고 해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진한 보리의 맛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또 산뜻한 맛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값도 싸고.

영화의 주인공 타카오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하고, 그건 그에게 정말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있다. 얼마 전 10대 후반의 친척 조카와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는 실력은 별로지만 힙합을 정말 좋아한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일을 직업으로 할 거라고 하길래 이렇게 대답해준 적이 있다.
 
지금 좋아하는 그 힙합 앞으로도 평생 좋아할 거야?”
! 물론이지.”
자신 있어?”
!”
그런데 너 옛날에 그렇게 좋아했던 그 여자애 지금 기억은 나냐?”
“......”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일이 언제든 싫어질 수도 있다는 것. 나 자신도 세월에 따라 바뀌어가지만 뭣보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꾸고 있어 더 그렇다. 죽을 때까지 하나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때그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행복한 시대가 오고 있다. 어쨌든 무슨 일을 해도 먹고는 살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고, 그리고 난 그게 더 좋은 사회고 세상 같다. 그래서 오늘도 인생 되는 대로~~~’를 읊조리며 산다. 그런 거지 뭐. ^^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맥주가 먹고 싶어진다. 킨무기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면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도 좋을 것 같다. 편의점까지 걸어가기 귀찮은데, 자전거가 어디 있더라...

언어의 정원

감독 신카이 마코토

출연 이리노 미유, 하나자와 카나

개봉 2013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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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렉 / 술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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