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에 ‘서스펜스’라는 단어가 붙는 것은 상당히 어색합니다. 낯설다고나 할까요. <세 번째 살인>의 원작 포스터만 보아도 주인공들의 얼굴에 피가 튄 모습은 전작들의 그것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미지죠. 지난 몇 년간 그의 작품들을 보고 팬이 된 이들이라면 다소 당황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고레에다 히로카즈만의 분명한 인장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부산국제영화제 예매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는 기염을 토한 이 작품은 일본에서는 이미 크게 흥행 중입니다. 10월 19일 저녁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된 <세 번째 살인> 리뷰와 함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후쿠야마 마사하루 배우가 직접 말하는 영화에 대해 듣고 왔습니다.
"세상에 죽어 마땅한 사람이 있을까?" 영화는 살인범이 한 남자를 살해하고 시체에 불을 지르는 장면과 함께 시작됩니다. 살인범은 이미 30년 전 살인 전과가 있는 미스미(야쿠쇼 코지)로, 자신이 다니던 공장의 사장을 죽였다고 자백합니다.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는 마지못해 그의 변호를 맡게 되죠. 하지만 살인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미스미와 대화를 나눌수록 하나씩 드러나는 진실과 사건의 조각들 사이에서 시게모리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족 이야기를 화두로 작업해온 감독은 “지난 10년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이가 생기는 등 개인적인 생활 안에서 생각할 것이 많았다. 그러다 현재 일본 사회에서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사람이 사람을 심판한다는 것에 대해 파헤쳐보고 싶었고, 그게 이 영화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말했는데요.
“한 사람의 살인범을 주인공으로 삼았을 때 어떤 세계관을 펼칠 수 있을지, 살인방법과 미술형태에 대해 생각하는 건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덧붙였죠. 거장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여전히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와 갈증을 느낄 수 있었던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가족’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죽은 공장 사장과 미스미, 시게모리 모두 딸을 가진 아버지이지만, 정상적인 부녀와는 달리 어딘가 망가져있는 관계 안에 놓여있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함께 작업한 후쿠야마 마사하루, 마찬가지로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함께한 히로세 스즈, 두 배우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합니다. 특히 후쿠야마 마사하루와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작업 전부터 어떤 작품을 하면 좋을지 함께 이야기해왔다고 밝혔죠.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 번째 살인>과 오우삼 감독의 <맨헌트> 두 편의 영화에서 얼굴을 볼 수 있는데요. 지난번 부산을 찾았을 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소개로 이창동 감독과 함께 게장을 먹었다고 이야기하며, 그의 영화 <오아시스>와 <박하사탕>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만일 기회가 된다면 이창동 감독과 꼭 한 번 작업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빛났던 장면은 시게모리와 미스미가 교도소에서 접견하며 심리전을 펼치는 부분이었습니다. 처음 대본 속에서 이 장면이 중요하게 표현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 배우 모두 앉아있는 상태에서 움직임 없이 연기하기 때문에 긴장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장에서 두 사람이 보여준 연기는 상상 이상이었죠. 이 때문에 접견 장면의 횟수와 시간을 점차 늘려갔고 오히려 이 장면들을 축으로 해서 영화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후쿠야마 마사하루 또한 대본만 읽었을 때는 ‘왜 변호사(시게모리)가 살인범(미스미)에게 흔들리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계속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현장에서 야쿠쇼 코지가 연기하는 미스미의 모습에 빠져들고 말았다고 밝혔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는 사전에 계산한 것이 아닌 현장에서 우러나온 모습으로,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야쿠쇼 코지의 훌륭한 연기가 이를 만들어준 것 같다고 말했죠. 실제로 영화 속에서 야쿠쇼 코지의 열연이 가장 돋보이기도 했고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번 작업을 하면서 스릴러 영화들이 아닌 <석양의 건맨> 같은 서부극을 통해 “'두 명의 남자가 대치한 상태에서 심리전을 펼치며 누가 먼저 권총을 뽑느냐'는 점들을 많이 참고했다”고 밝혔는데요. 그래서 후반부 두 사람의 접견 장면 속 연출이 더욱 인상적으로 그려졌던 것 같습니다.
감독은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 보고 이해하지 못했는데 아는 척하는 것, 알면서 모른 척하는 것 등 법정에서 심판되지 않는 죄에 대해 주목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의도대로 영화는 줄곧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좇고 있지만, 다른 스릴러 영화들과는 달리 여기서 누가 진범인지는 중요하지 않죠.
시나리오를 쓸 때 도움을 준 7명의 현역 변호사들로부터 “법정은 진실을 밝히는 곳이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 입장에서는 진실을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것이 이번 작품의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듯, 영화는 우리에게 ‘진실은 과연 어떤 것이냐’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집니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봤으면 좋겠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감독은 “지금까지 제 작품들을 좋아한 사람들도, 서스펜스와 수수께끼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이번 작품을 보고 어떤 좋은 의미의 ‘배신감’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유난히 비관적인 느낌을 강하게 내뿜고 있는 이번 작품에 대해 “전작들에서도 세상을 낙관적으로 그려온 적은 없었다. 다만 늘 생각하는 것은, 영화를 본 후 살아있다는 게 싫어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 생각은 이번 작품에서도 변하지 않았다”고 답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벌써부터 그가 이 다음에 보여줄 세계가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 세 번째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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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후쿠야마 마사하루, 야쿠쇼 코지, 히로세 스즈
개봉 2017 일본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상영 시간표>
10/20 10:30 CGV센텀시티 3관
씨네플레이 에디터 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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