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블란쳇

지난해 9월 방문한 <토르: 라그나로크> 호주 촬영장에서 헬라를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을 만났다. 영화가 촬영될 당시에 진행된 인터뷰임을 감안하고 보길 바란다. 호주 촬영현장 체험기는 아래 포스트에서 볼 수 있다.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빌런 헬라를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

케이트 블란쳇이 기자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들어왔다. 큰 키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헬라의 코스튬은 입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편안한 일상복 차림으로 기자들을 만났다. <캐롤>을 인상깊게 봤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머리에 걸쳤던 선글라스를 테이블에 올려놓는 평범한 동작도 우아하고 기품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당시에는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마블 영화의 첫 여성 빌런 헬라의 모습이 공개되지 않았다. 이후 공개된 예고편에서 처음 본 헬라의 모습은 기자가 본 우아한 금발의 케이트 블란쳇이 아니었다. 기자들을 맞이한 케이트 블란쳇은 “(작은 땅콩 봉지에 든) 마지막 한 조각을 마저 먹어도 되냐”는 농담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케이트 블란쳇은 마지막 땅콩을 맛있게 먹고 손을 탈탈 털었다. 인터뷰가 시작됐다.

-첫 마블 영화다. 기분이 어떤가.

=(마블 스튜디오의 대표) 케빈 파이기에게 헬라에 대한 정보를 처음 들었을 때 엄청나게 흥분됐다. 드디어 마블에도 여성 빌런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에 들뜬 기분이 들었다. 크리스 헴스워스가 연기한 토르는 마블의 여러 영화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헬라는 아직 많이 알려진 캐릭터는 아니지만 토르처럼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줄 여지가 있을 것이다.

-마블 스튜디오의 어떤 면을 보고 출연을 결심했나.

=나는 항상 연극무대에 서는 것에 대한 애정이 있다. 그건 하나의 이벤트처럼 느껴진다. 영화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마블 영화는 하나의 이벤트다. 그런 점이 매우 흥미롭다. 또 마블 스튜디오는 어떤 아이러니한 매력이 있다. 매우 심각하면서도 동시에 장난스러움이 묻어난다. 기존 영화들과 비교하자면 일종의 전복적인 면이 있다.

-헬라 캐릭터를 위해 원작 코믹스나 코믹스의 토대가 된 북유럽 신화를 참고했나.

=북유럽 신화보다는 코믹스를 참고했다. 나는 어떤 역할이든 비주얼에서 영감을 얻는 편이다. 그러면서 뭔가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을 좋아한다. (미술 부서의) 일러스트레이터는 헬라 캐틱터를 코믹스에서 봐왔던 것과는 다르게 그릴 것이다. 코믹스 버전의 헬라 캐릭터는 옷을 많이 입고 있지 않았다. (웃음) <플레이보이> 매거진에서 본 듯한 모습이었다. 영화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헬라 캐릭터를 만드는 방법은 아주 많다. 어쩌면 영화나 코믹스의 팬들에게서도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헬라의 화장법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특수효과 부서와 함께 그 영상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모션 캡처 연기는 어땠나.

=과거에 모션 캡쳐 연기를 해본 적이 있다. 앤디 서키스가 이 분야의 엄청난 개척자다. 사람들은 시각효과, CG를 배우들의 연기 과정과 구분해서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뛰어난 스턴트우먼이자 훌륭한 배우인 조 벨(Zoe Bell)이 나의 대역으로 함께 촬영했다. 또 제이크가 이끄는 특수효과팀이 함께 했다. 이 모든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나는 모션 캡쳐 연기를 사랑한다. 시각효과, 특수효과 팀과 대화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조 벨은 <킬 빌>의 우마 서먼 대역으로 유명하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데쓰 프루프>에는 직접 출연하기도 한다.

-판타지의 세계인 슈퍼히어로 영화를 촬영하는 것의 기쁨은 또 어떤 게 있나.

=보통 블루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걸 힘들다고 얘기한다. (CG로 작업할) 테니스공과 연기해야 하니까 말이다. 물론 이 제작 방식은 진화하고 있긴 하다. 타이카 감독은 가능한한 실제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토르의 고향별인) 아스가르드 세트에 가봤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멋진 세트다. 실제처럼 느껴진다. (세트장 주변의) 유칼립투스 나무만 제외하면 그렇다. 아스가르드에는 그렇게 많은 유칼립투스 나무가 없다. (웃음) 관객이 극장에서 보게 될 영화 속 장면은 감독과 특수효과팀, 미술팀 등이 만들어낸 어떤 통합된 이미지가 될 거다. 나는 그 과정의 일부가 되는 것이 기쁘다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순수한 연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늘 공동작업을 즐긴다. 극장의 무대에 설 때도 그렇다. 물론 영화를 촬영할 때도 마찬가지다.

-약간 악역을 즐기는 느낌이다. (웃음)

=현실에서? 아니면 배역으로? (웃음) 악당 헬라를 연기하는 것은 최고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 그는 재밌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약간 짖궃은 면이 있다. 한마디로 장난기가 많다. 물론 이 영화에는 진지한 스토리 라인이 있다. 그 사이사이에 타이카 감독과 함께한 장난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토르: 라그라로크>의 촬영장은 지금까지 경험한 어떤 영화보다 행복한 곳이다.

-고향인 호주여서 더 그런 거 아닌가.

=그렇긴 하다. 보통 이런 큰 예산의 영화에선 일종의 압박감이 느껴지곤 한다. 영화의 규모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스태프들이 내가 연기하고 있는 장면의 시나리오를 보고 있는 광경을 보면 더욱 더 그렇다. 또 영화의 팬들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도 있다. 그런데 타이카 감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세트장에서는 음악이 흘러 넘친다. 늘 장난기 가득한 촬영장이다. 악당 헬라 역할을 하는 것 역시 어쩌면 장난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큰 예산만큼 어마어마하게 큰 세트장이다.

=모든 영화가 이런 건 아니다. 세트장 내의 모든 스튜디오가 <토르: 라그나로크>를 위해 동원됐다. 얼마나 많은 텐트가 있고 또 얼마나 많은 인부들이 있는지 모를 정도다. 이 큰 세트장에 우리밖에 없다. 정말 크다.

-어떤 슈퍼히어로를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우선 역경을 이겨낸 모든 사람들을 슈퍼히어로라고 생각한다. 역경에 맞서고 희망을 지키는 사람들 말이다. 흐음.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항상 악당쪽에 끌리곤 했다. 어린 시절 <배트맨> TV시리즈를 봤을 때 캣우먼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헬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왜냐면 그전까지 헬라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슈퍼히어로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내 아이들은 다르다. DC나 마블의 슈퍼히어로에 대해서 잘 알더라. 1930년대부터, 40년대, 50년대까지의 슈퍼히어로 연대기를 설명할 정도다. 어쨌든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한 슈퍼히어로는 캣우먼이다. 지금은? 아마도 헬라일 거다. (웃음)

-촬영하면서 실제로 슈퍼히어로처럼 느낀 적이 혹시 있나.

=없다. 워킹맘이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헬라를 연기하는 데 이전의 연기 경험이 도움이 됐나.

=나는 늘 새 캐릭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감각으로 연기를 시작한다. 보통의 경우 그렇다. 만약 이전 작품의 스토리에서 유사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새로움과 신선함을 찾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액션 연기는 어땠나.

=액션 연기? 완전(f**king) 사랑한다. 음…. 그러니까 조(케이트 블란쳇 대역)를 사랑한다. 그녀의 연기에 감탄했다. 존중을 표하고 싶다. 나에게 그녀는 경외의 대상이다. 나는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조를 비롯한 무술팀과 함께 고민했다. 영화에서 제대로 보여질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키스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 다르고 그 방식이 백만 개 정도 있는 것처럼 누군가의 얼굴을 때리는 방법 역시 그 만큼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웃음)

-당신에겐 두 개의 오스카 트로피가 있다.

=(기자의 말을 끊으며) 언급해줘서 고맙다. (웃음)

*케이트 블란쳇은 <에비에이터>에서 여우조연상, <블루 재스민>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트로피를 어디에 두었는지 궁금하다.

=하나는 멜버른에 있는 호주영상센터(Australian Centre for the Moving Image) 박물관에 있다. 다른 하나는 아마도 집안 어딘가에 박스째 포장돼 있을 거다. 내가 받은 다른 모든 트로피와 함께. (웃음) 아니다, 아니다. 이사갈 때 오스카 트로피를 박스에서 빼놨다. 아마 집안 어딘가에 있을 거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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