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간판을 걸면 사람들이 잔뜩 올까 봐 눈에 띄지 않도록 작은 간판을 달아놓은 민박집으로 한 여자, 타에코(고바야시 사토미)가 찾아옵니다. 그녀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조용한 곳을 찾아 이곳에 온 것이죠. 그런데 그녀가 보기에 이곳은 좀 이상합니다. 아침마다 사람들이 바닷가에 모여 기이한 체조를 하는가 하면 민박 주변은 썰렁하다 못해 관광할 곳조차 하나 없거든요. 조용하다 못해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곳에서 도대체 사람들은 뭘 하나 궁금해서 물어보니 사색을 한다는 게 그 답변입니다. 결국 그녀는 이곳을 참지 못하고 민박집을 바꾸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 동네가 좀 특이한 걸까요? 또 다른 민박집은 오전에는 밭일을 하고 오후에는 공부를 하는 곳으로 서로 협력하고 존중하며 흙을 접하면서 자연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걸 체험하는 곳입니다. 우주 만물에 경의를 보내며 하루하루를 살자는 콘셉트죠. 민박 투숙객 모두가 밭일을 하고 있는 모습에 놀란 그녀는 결국 원래 있던 민박집으로 돌아옵니다.

처음 영화 <안경>을 봤을 땐 좀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호흡이 너무 길고 배우들의 대사가 뜬구름 잡는 느낌이었거든요. 영화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사쿠라 상의 빙수가 왜 맛있는지 도통 모르겠고, 주인공의 내적 갈등은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분명 좋은 대사들은 있었지만, 영화에 대사가 전부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다시 보게 된 이 영화는 다른 느낌입니다. 이 영화는 사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그 느린 호흡이 영화에 담겨 있음을 알게 됐거든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이곳을 사색하기 좋은 장소라고 말하자 타에코는 묻습니다. “사색하는 거에 무슨 요령이라도 있는 건가요?” 그러자 민박집 주인인 유지(미츠이시)는 말합니다. “예를 들면 옛 추억을 그리워한다던지 누군가를 곰곰이 떠올려 본다든지...”
타에코가 정처 없는 여행을 계속하는 까닭은 진지하게 사색을 하지 않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걸 찾지 못한 상태에서는 방황의 시간만 길어질 뿐이죠.

이 영화의 분위기를 완성해주는 건 배우들의 몫이 큽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낯선 곳으로 여행을 오게 된 여자의 심리를 잘 그려낸 고바야시 사토미와 개성 넘치는 연기로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모타이 마사코는 그 등장만으로도 영화의 분위기를 일정 정도 완성해줍니다. 이미 <카모메 식당>으로 여성의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내며 사랑받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연출은 특유의 편안하면서도 느긋한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영화에 나오는 음식들도 영화를 닮아 있습니다. 화려하거나 특별하진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건강해질 것 같은 음식들이죠. 연어구이, 달걀 프라이, 지라시 스시, 봄 채소, 매실 장아찌.. 일본의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들입니다. 특히 영화에서 빙수는 아주 큰 역할을 합니다. 누구나 한 번 맛보면 최고의 빙수라고 말하게 되는 사쿠라(모타아 마사코)상의 빙수는 사람들에게 힐링을 선사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주인공들이 낯선 곳을 찾아가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무리 가도 찾는 곳이 나오지 않자 불안해진 주인공은 묻습니다. “지도를 한 번 보고 갈까요?” 민박집 주인이 그려준 그 지도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왠지 불안해지는 지점에서 2분 정도 더 참고 가다가 거기서 오른쪽으로 갈 것". 당장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 말고 그 지점에서 조금만 참고 견디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안경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고바야시 사토미, 이치카와 미카코, 카세 료

개봉 2007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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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메뉴 따라 하기

타에코가 민박집에 도착한 날. 민박집 주인은 특별한 손님이 오는 날이라며 도시락을 준비합니다. 그 도시락은 일본식 도시락인 지라시 스시입니다. 지라시스시는 '흩뿌리다'라는 의미가 담긴 초밥입니다. 네모진 그릇에 생선, 달걀지단, 양념한 다른 채소들을 골고루 흩뿌려 만들면 맛도 좋고 색감도 알록달록한 도시락 요리가 완성되죠. 지라시스시를 들고 짧은 사색을 즐기면서 봄나들이를 다녀오면 어떨까요.


지라시스시

재료
2공기, 칵테일새우 5마리, 달걀 2, 연근 당근 1/4개씩, 4
식초 1 작은 술, 표고버섯 4, 날치알 2 큰 술, 레몬즙 1/2 큰 술, 무순 1
버섯 밑양념: 간장 1/2 큰 술, 설탕 1 작은 술
초밥 소스 : 식초 5 큰 술, 설탕 3 큰 술, 소금 1 작은 술

만드는 법
1. 칵테일 새우는 끓는 물에 데쳐놓고, 달걀 2개는 젓가락으로 잘 풀어 지단을 부친 뒤 가늘게 채 썬다.
2. 연근은 껍질을 벗긴 뒤 단면의 모양을 살려 0.3cm 두께로 썰고, 당근은 연필 깎듯이 돌려 깎아 꽃 모양을 낸다.
3. 표고버섯은 기둥을 떼어낸 뒤 갓 부분만 적당한 크기로 썬 다음 밑양념한다. 날치알은 레몬즙을 뿌려둔다.
4. 초밥 소스 재료를 한데 모아 전자레인지에 넣고 30초 정도 데운 뒤 따뜻한 밥 위에 2-3 큰 술 정도 넣어 섞는다.
5. 냄비에 물 4컵과 식초 1 작은 술을 넣고 끓인 뒤 썰어둔 연근을 넣어 30초간 데친다. 그런 다음 남은 초밥 소스에 연근과 당근을 담가둔다.
6. 기름 두른 팬에 양념한 표고버섯을 살짝 볶아낸다.
7. 그릇에 양념한 밥을 담고 지단을 흩뿌린 뒤 새우, 표고버섯, 무순, 연근, 당근, 날치알 등을 보기 좋게 올린다


파란달 / 요리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