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수많은 영화가 있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이들을 위해 쓴다. ‘씨네플레이’는 ‘씨플 재개봉관’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봉하면 당장 보러 갈 영화, 실제로 재개봉하는 영화들을 소개해왔다. 이번에 만나볼 영화는 20년 전, 1998년에 개봉한 <여고괴담>이다.
여고괴담
감독 박기형 출연 이미연, 김규리, 박용수, 최강희, 윤지혜, 박진희, 이용녀 개봉 1998년 5월 31일 상영시간 107분 등급 15세 관람가
- 여고괴담
-
감독 박기형
출연 이미연, 박용수, 김규리, 최강희
개봉 1998 대한민국
충격과 공포. 충격은 충무로의 것이고 공포는 관객의 것이다. 1998년 5월 <여고괴담>이 개봉했다. 어느 학교에나 흔하게 전해지는 괴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충무로의 오랜 고정관념이던 ‘공포영화 장르는 흥행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깼다. 관객들은 <스크림>, <13일의 금요일>, <나이트메어> 같은 미국산 공포물이 아닌 한국 공포영화를 보면서 비명을 질렀다. <여고괴담>은 분명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액션, 코미디, 멜로의 벽
<여고괴담>은 서울 관객 약 62만 명(이하 추정치), 전국 관객 약 250만 명을 동원했다. 지금으로 보면 많은 관객수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당시로는 엄청난 흥행이다. <여고괴담>의 돌풍은 속편 제작으로 이어졌고 시리즈로 발전했다. 그전까지 한국영화는 액션, 코미디, 멜로 장르가 대세였다. 1990년대 대표적인 흥행작들을 살짝 살펴보자. <장군의 아들>, <투캅스>, <편지>, <접속>, <쉬리> 등이 떠오른다. 영화계의 어느 누구도 공포영화 <여고괴담>의 흥행을 점치지 못했다. 공포영화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았다. <여고괴담> 촬영 당시 공포영화가 아닌 청춘학원물로 속이고 <아카시아>라는 제목을 쓴 건 유명한 일화다.
<여고괴담>의 흥행 뒤엔 오기민이라는 프로듀서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쓴 시나리오 초고를 들고 대기업과 영화사를 찾아다녔다. “유치하다”는 답변을 듣기 일쑤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여고괴담>을 통해 데뷔한 박기형 감독을 섭외한 것도 그였다. <여고괴담>의 성공 이후 오기민 PD는 ‘마술피리’라는 영화사를 차리고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고양이를 부탁해>, <장화, 홍련> 등을 제작했다.
<여고괴담> 출신 신인 배우
<여고괴담>은 김규리와 선생님으로 출연한 이미연을 제외하면 출연 배우 대부분이 신인이었다. 지금은 익숙한 이름과 얼굴인 최강희, 박진희 등이 <여고괴담>을 통해 눈에 띄는 배우로 성장했다. <여고괴담> 2편부터 이어지는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들의 이름은 더 화려하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김민선(김규리로 개명), 박예진, 이영진, 공효진이 출연했고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에는 박한별, 송지효 등이 출연했다. <여고괴담4: 목소리>에는 김옥빈, 서지혜, 차예련이 <여고괴담5>에는 오연서, 손은서, 황승언이 등장한다. <여고괴담> 시리즈는 5편까지 이어오면서 신인 여자 배우를 대신 발굴해주는 역할까지 맡았다.
무서운 복도
<여고괴담>에서 딱 한 장면만 꼽으라고 한다면? 너무 쉽다. 재이(최강희)가 등장하는 복도 신이다. 복도 끝에 있던 재이가 “둥, 둥, 둥, 둥” 하는 효과음과 함께 점프컷으로 카메라를 향해 다가오는 장면. 솔직히 말해 지금 다시 보면 그다지 무섭지 않다. 20년 전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여름방학도 되기 전인 5월말 6월초 교복 입은 학생들은 이 장면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만큼 이 장면의 충격은 컸다. 조금 과장한다면 <여고괴담> 1년 뒤 1999년에 개봉한 <매트릭스>에서 보게 될 공중 부양 360도 특수촬영 기법의 충격과 비교할 수 있겠다. <여고괴담> 이후 각종 TV 예능 방송 등에서 이 촬영 기법을 자주 사용했다. 그밖에도 <여고괴담>에는 공포를 유발하는 여러 장치가 있다. 대표적으로 과거에 자살한 학생 진주가 은영(이미연)에게 전해준 방울 소리가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여고괴담> 시리즈
폭력과 성희롱이 일상인 선생님,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 왕따 문제 등 세기말 학교의 현실을 가감 없이 묘사한 <여고괴담>은 영화 속 분신사바 의식, 책상에 칼로 새긴 ‘JJ’라는 이니셜, “내가 아직도 네 친구로 보이니?”라는 대사까지 유행시켰다. 한마디로 <여고괴담>은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다. 자연스레 속편 1999년 개봉한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이 제작됐다. 김태용, 민규동 감독이 공동연출한 이 작품은 평론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고괴담> 영화다. 교환 일기를 소재로 한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단순한 공포물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전통적인 공포 장르의 문법에서 벗어난 영화다. 공포영화이자 성장영화이자 퀴어영화로 분류할 수 있다. 동성애 코드를 바탕으로 한 성장기 고등학생의 하위문화 보고서라고 봐도 좋은 수작이다. 이후 시리즈 3편부터는 장르물의 본질에 충실해진다. 2003년 <여고괴담3 - 여우계단>, 2005년 <여고괴담4 - 목소리>, 2009년 <여고괴담 5 - 동반자살>까지 시리즈가 이어졌다. <여고괴담> 6번째 영화도 기획됐다. 1편 <여고괴담>의 첫 장면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교사, ‘늙은 여우’라는 별명의 박기숙(이용녀)의 과거 행적을 그리는 리부트 영화로 알려졌다. 2017년 “이정현이 출연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안국진 감독이 연출한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이후 진행상황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
감독 김태용, 민규동
출연 김규리, 박예진, 이영진, 공효진
개봉 1999 대한민국
20년 만에 <여고괴담>을 다시 보면서 한국 영화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봤다. <여고괴담>은 지금 보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저화질의 영상이 촌스러워 보이고 매끈하지 못한 사운드가 낯설게 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고괴담>은 다시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다. 복도 신 이외에도 뛰어난 카메라 워크와 학교라는 공간을 활용한 적절하게 활용한 공포 연출, 편집 때문에 그렇다. 또,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입시 현실과 그 나이 때 학생들의 보편적인 정서를 세밀하게 담아낸 점에서 그렇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여고괴담>을 챙겨보길 바란다. 20년 전 교복 입고 <여고괴담>을 보며 비명을 질렀던 세대들에게는 추억여행이 될 테고, 처음 <여고괴담>을 보는 세대들에게는 삼촌, 이모가 열광했던 영화를 통해 신선하고 독특한 체험이 될 것이다. 특히 지금과 똑같은 최강희의 얼굴은 진정한 충격과 공포.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