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겨레’ 칼럼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 나이가 되어 알게 된 건 사람은 원래 화장실 갈 때와 올 때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게 좋고 싫고, 옳고 그르고 하고는 별 상관이 없이 말이다. 어찌 보면 아주 불합리한 일인데 그런 인간의 불합리함, 거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이성과 감정의 충돌과 그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비겁함들, 그런 것들은 인간이 싫든 좋든 살면서 갖고 사는 부분들이고 그래서 ‘홍상수라는 영화감독이 이런 것들을 항상 주목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을 하곤 했다.
 
예전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참 싫어했다. 다른 영화를 보러 갔다가 시간이 맞지 않아 다른 영화를 찾다 보니 자리 남는 영화가 홍상수 감독 영화밖에 없어 한번 봐볼까 하고 들어갔다가 채 30분을 못 보고 극장을 나와 버린 적이 무려 두 번. 영화가 형편없고 안 좋았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고, 다만 보기가 너무 괴로웠다. 누구나 갖고 있지만 어지간하면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꼭꼭 숨겨놓은 어두운 부분들을 너무 인정사정없이 밖으로 끄집어내는 느낌? 높지도 낮지도 않은, 꼭 사람 눈높이로 등장인물들을 타의로 관찰하게 되면서, 그 스크린 속 등장인물들의 찌질함이 비수로 변해 내 숨기고 싶은 어둠을 찌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우연히 다시 접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전만큼 내 가슴속 어두움을 찌르지는 않았다. 뭐랄까, 그의 영화는 여전하지만 그에게 계속해서 지적당했던 내 가슴속 어두움은 좀 바뀌고 작아졌다고 해야겠지. 그래서 그런지 이전만큼 등장인물들의 찌질함이 보기 괴롭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오래간만에 그의 영화를 억지로 노력하지 않고끝까지 볼 수 있었다.
 
약술하면 그의 영화, 나에겐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셈이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2015년에 개봉된 홍상수 감독의 영화다. 지금은 그의 연인인 김민희 씨를 비롯해 정재영, 윤여정 씨 등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참여했다. 특이한 것은 제목에 띄어쓰기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 뭔가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홍상수 감독이 직접 “의미 없다”고 언급했다고.
 
줄거리는 간단하게 언급하면 남자와 여자의 우연한 연애담이다. 축약하면 평범한 그릇 안에 상세하게 어떤 이야기를 집어넣는가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비범함일 텐데 이 영화 역시 곳곳에서 그런 홍상수 감독의 비범함이 드러난다.

홍상수 감독 영화의 남자 주인공이 대개 그렇듯 이 영화의 주인공 함춘수(정재영) 역시 대책 없이 찌질하다. 강연을 하기로 한 수원에 실수로 하루 일찍 내려간 춘수는 고궁에서 우연히 윤희정(김민희)이란 화가를 만난다.

희정에게 관심을 갖게 된(, 최대한 유하게 표현하자면) 춘수는 희정의 작업실에서 희정의 그림을 칭찬하고 같이 소주와 회를 마시며 희정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춘수가 유부남임을 알게 된 희정은 춘수에게 실망한다.

이와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가 다시 이어진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만남을 갖게 된 춘수와 희정은 같은 동선을 그리며 이동한다. 그러나 춘수는 조금 더 솔직하고, 희정은 그 솔직함에 조금 더 마음을 연다. 결국 첫 에피소드에서는 잿밥에 맘을 둔 춘수, 하지만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사람에 맘을 둔 춘수였고 그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가져오며 영화는 끝이 난다.

다른 장면들도 그렇지만 극중 춘수와 희정이 횟집에서 소주와 회를 먹고 마시며 하는 대화들과 시선처리, 행동들은 그 자체로 하나하나 다 의미를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의미 속에서 소주는 어떤 때는 여자를 꼬시기 위한 수단으로, 어떤 때는 그냥 솔직한 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수단으로 자리한다. 두 경우 모두 술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자리매김하는 건 영 별로지만 우리나라의 소주가 있어서 소비되는 경우는 글쎄, 그리 흔하지 않을 테니 뭐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원래 소주는 쌀이나 드물게 다른 곡식을 사용해 만든 발효주(대개는 청주)를 흔히 소줏고리라고 부르는 증류기를 사용해 증류해서 만드는 술을 일컫는 말이었다. 대개는 단식, 기껏해야 두 번 증류해서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따라서 재료의 풍미를 깊이 간직한 좋은 술이었다. 그러다 희석식 소주가 보편화되면서 증류식으로 만든 소주를 증류식 소주라고 수식어를 붙여 부르게 되었다.
 
제조법은 다음과 같다. 감자나 고구마, 타피오카 같은 곡물을 발효시킨 뒤 연속증류기를 사용해 증류시켜 약 95도 정도의 고도수 알코올(보통 주정이라 칭함)을 만들어 낸 뒤 여기에 물과 각종 첨가물을 섞어 만든다. 원래 감미료가 들어가면 국제 기준으로는 모두 리큐르, 즉 혼성주로 분류되지만 관행적으로 증류주로 분류하고 그러다 보니 국제 증류식 술 판매 랭킹에 항상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각 소주 제조 회사가 주정을 직접 만들지는 않고 대한 주정판매라는 회사에서 주정을 제조사에 일괄 납품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 실질적으로 각 소주 제조 회사가 쓰는 주정은 모두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뭐 어차피 연속증류기로 만든 주정이라는 게 딱히 다를 것도 없고. 따라서 전국에서 생산되는 소주들의 맛이 각기 조금씩 다른 것은 주정의 차이가 아닌 물과 감미료의 차이다. 참고로 감미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보드카를 만드는 제법과 비슷하며 진로 공장에서 한때 스미노프 레드를 생산한 적도 있다.

제법과 원료를 봐도 알겠지만 농담으로라도 고급술이라곤 말할 수 없는 술이고 그렇게 싼 가격에 만들어져 판매되다 보니 역설적으로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한국인들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술이 되었다. 또 그러다 보니 많이 마시는 게 좋다라는 한국 특유의 아주 나쁜 술 문화의 원흉이 되기도 했고. 여러 가지로 애증의 존재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일본에도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가 모두 유통되며 희석식 소주는 보통 갑류 소주, 증류식 소주는 본격 소주라고 흔히 말한다. 우리나라에선 소주가 톱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지만 일본에선 워낙 마시는 술들이 다양해서 갑류 소주와 본격 소주가 비슷비슷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물론 저렴한 본격 소주가 워낙 많아서 그렇겠지만. 참고로 한국의 경월소주가 일본에서 인기가 좋고 본격 소주의 경우 스트레이트가 아닌 온더록스나 하이볼, 오유와리 등으로 많이 소비된다.

야키이모 마카이에노 이자나이. 그냥 마셔도 괜찮지만 하이볼로 마시면 품격이 느껴지는 군고구마 소주

사람은 입으로 말을 하고 그 말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지만 가끔 언어 그 자체로는 사람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 전부를 전달하는 데 버거움을 느끼곤 한다. 문자나 ‘카톡’으로만 의사표현을 하다 보면 나중에 가서 어라, 그런 의미였어?”라는 식의 오해가 종종 생기곤 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말 이외에도 표정과 몸짓으로 말을 하고, 그럴 때 의미는 더 분명해진다. 그 점에서 영화 속 정재영 씨와 김민희 씨의 연기는 참 대단했다. 첫 번째 에피소드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두 사람의 연기는 그 상황 상황에 딱 맞춤이었고 이 연기를 보는 관객들은 시나리오에 인쇄된 글자만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을 전달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주는 꽤나 중요한 역할을 했고 ^^.

사람이 화장실 갈 때 생각이 다르고 다녀온 뒤 생각이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주위 모든 것들을 자기 본위대로 해석하려고 하지만 또 그래서 자기 객관화, 쉽게 말해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기가 인간의 가장 고등적인 사고방식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영화 속 춘수와 희정도 그럴 것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희정의 비위만 맞추기 위해 노력한 춘수는 결국 오로지 자기만 생각했던 것이고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솔직했던 춘수는 결국 희정을 존중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목적에 방점을 두느냐, 사람에 방점을 두느냐의 차이일 텐데, 사람에 방점을 두며 산다면 화장실 가기 전과 다녀온 후의 모습이 최소한 비슷하게는 보이지 않을까.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드는 요즈음이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감독 홍상수

출연 정재영, 김민희

개봉 2015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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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렉 / 술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