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공유가 빠른 요즘, 관객들은 ‘테스트 스크리닝’ 결과에 웃고 운다. 테스트 스크리닝은 영화를 일반 관객에게 공개하기 전 사내 직원이나 몇몇 소수 관객에게 상영하는 사전 시사회다. 우리나라식으로 말하자면 사전 시사회나 블라인드 시사회라 할 수 있다. 어떤 영화의 테스트 스크리닝의 결과가 유출되면, 기대감이 폭싹 내려앉거나 반대로 의외의 결과라며 주목을 받기도 한다. 할리우드 상업 영화 대부분은 테스트 스크리닝을 거치는데, 그중 관객들의 의견으로 크게 수정된 작품도 있다. 어떤 영화들이 대중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는지 정리해봤다.

※ 본문에는 각 영화의 엔딩이나 주요 전개가 서술돼있음을 명시한다.


타이타닉

1997년 개봉한 이후 20년 가까이 전 세계 흥행 1위를 지킨 <타이타닉>. 3시간 14분이란 긴 상영시간에도 수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 영화를 만끽했다. 사실 <타이타닉>의 테스트 스크리닝 버전은 4시간에 육박했다고 한다. 당연히 관객들은 너무 길다고 의견을 모았고, 그래서 40여 분가량이 삭제됐다.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칼(빌리 제인)의 경호원 러브조이(데이비드 워너)와 싸우는 장면도 삭제됐는데, 침몰 중인 상황에서 보석 때문에 싸운다는 설정이 관객들의 몰입을 깬다는 이유였다. 마지막 깊은 여운을 남기는 엔딩도 늙은 로즈(글로리아 스튜어트)가 선원들과 얘기하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보석을 던지는 구성이었으나 엔딩의 감성을 해친다는 의견에 대폭 삭제, 수정됐다.


이티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티>는 지금까지도 동화적인 SF 영화로 관객들의 마음에 남아있다. 그런데 스필버그가 처음 의도한 엔딩은 테스트 스크리닝에서 엄청난 반발 때문에 변경해야 했다 그 엔딩의 내용은 이티가 진짜로 죽는 것이었다. 테스트 스크리닝 이후 이티가 살아서 집에 돌아가는 엔딩으로 변경됐다. 또 관객 반응에 따라 삭제된 장면은 이티가 우주선을 타고 떠난 이후, 엘리엇과 친구들이 ‘던전 앤 드래곤’을 같이 하는 장면이었다. 각본부터 있는 장면이었으나 이티가 떠나는 장면에서 관객들의 감정이 최고조를 찍기 때문에 이 장면도 삭제됐다.


28일 후

<28일 후>는 <새벽의 저주>와 함께 ‘빠른 좀비’의 공포를 적절하게 이용했고, 좀비와 인간에 대한 고찰을 녹여낸 새로운 좀비 영화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주인공 일행이 영국을 탈출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엔딩을 제시한다. 그러나 대니 보일이 고려한 엔딩은 더 비참했다. 헨리 소령(크리스토퍼 에클리스턴)의 총에 맞은 짐(킬리언 머피)이 사망하고, 절망에 빠진 셀레나(나오미 해리스)와 해나(메건 번즈)가 총을 챙겨서 좀비가 그득한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다음 대안으로 마련한 엔딩은 지금 것과 유사하지만, 역시 짐은 사망한 상태였다. 테스트 스크리닝 결과 관객들은 엔딩까지 너무 절망적이라 영화가 끝나도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여러 엔딩 중에서도 좀 더 희망적이고 (짐이 살아있는) 현재 엔딩으로 극장에 개봉했다.


좋은 친구들

<좋은 친구들>은 마틴 스콜세지가 그때까지 연출한 작품 중 가장 비싼 영화였다. 그리고 그는 최종 결정권까지 쥐고 있었다. 처음부터 뚝딱! 명작이 나왔을 것 같지만, 테스트 스크리닝 당시 분위기는 끔찍했다. 시작한지 10분 만에 영화 속 폭력에 질린 관객들 40여 명이 상영관을 나갔다. 폭력성이야 사람 취향이니까 어쩔 수 없다손 쳐도, 영화가 끝나고도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관객들 대부분은 영화가 지루했으며, 특히 클라이막스가 너무 길다고 말했다. 마틴 스콜세지와 편집자 셀마 슈메이커는 곧장 영화를 재편집했다. 이 과정에서 특유의 리드미컬한 점프컷들이 등장했고, 내레이션도 편집에 맞춰 수정됐다. 또한 폭력성이 짙은 장면들도 조금 손봤다. 그 결과 마틴 스콜세지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갱스터 영화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귀여운 여인

1990년대는 로맨틱 코미디의 시대였다. 그중 <귀여운 여인>은 흥행에 성공하며 줄리아 로버츠를 ‘로맨스 퀸’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귀여운 여인>은 원래 지금보다 훨씬 지독한 영화로 기획됐다. 작중 마약 중독이 중심 소재였을 정도였다. 당시 시나리오의 결말 역시 상당히 모욕적이었는데, 에드워드(리차드 기어)와 비비안(줄리아 로버츠)이 차를 타고 가던 중 에드워드가 비비안을 길 한복판에 내려놓고 돈을 집어던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작사가 바뀌면서 시나리오를 새로 집필하게 됐고, 결말 역시 바뀌었다. 제작진은 다양한 버전의 결말을 준비해두고 테스트 스크리닝에서 관객의 반응이 좋은 걸 선택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의 <귀여운 여인>이 완성될 수 있었다.


블레어 윗치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의 시작을 알린 <블레어 윗치>는 딱 8일 동안 촬영했다. 첫 편집본은 2시간이 넘었다. 제작진 입장에서야 20시간이 넘는 촬영 영상을 1/10로 줄였으니 괜찮겠지 했을 텐데, 솔직히 2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보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블레어 윗치> 테스트 스크리닝의 현장 반응을 지켜본 제작자 케빈 J. 폭스는 영화를 더 줄여야 한다고 판단했고, 최종적으로 81분까지 분량을 줄였다.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대성공. 대대적인 흥행작에 등극한 것은 물론이고,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부흥을 이끈 선봉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쇼생크 탈출

<쇼생크 탈출>은 영화사 전체에서도 빛나는 명작 중 하나다. 특히 마지막에 앤디(팀 로빈스)와 레드(모건 프리먼)가 재회하는 결말은 감옥에서 인생을 낭비해야 했던 두 남자에게서 희망적인 미래를 연상시키며 관객들의 감정을 흔든다. 하지만 이 결말은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원한 게 아니었다. 테스트 스크리닝을 참여한 관객들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다. 프랭크 다라본트는 레드가 사회에서 적응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모호하게 표현해 관객들이 고민하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은 보다 희망적이고 구체적인 결말이 필요할 것 같다고 의견을 내비쳤고, 그래서 지금의 결말이 추가됐다. 원래 결말이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관객들의 시선을 결코 외면해선 안 된다는 좋은 사례다.


트로이

볼프강 페터슨의 손에서 탄생한 트로이 전쟁, <트로이>. 테스트 스크리닝 이후 제작진은 큰 고민에 빠졌다. 영화 음악이 너무 별로라는 평가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음악을 맡은 가브리엘 야레를 과감하게 해고하고 그의 음악을 완전히 삭제했다. 그리고 제임스 호너를 그 후임자로 발탁했다. 문제는 개봉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했던 것. 제임스 호너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의 음악도 다소 자기복제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다. 야레의 음악을 함부로 평가절하한 테스트 스크리닝 관객들이 문제였다고 말하는 평론가도 있을 만큼 야레의 음악과 호너의 음악은 호불호가 갈렸다. <트로이>는 나중에 30분 분량을 추가한 감독판을 공개했는데, 이 버전에선 아예 다른 영화의 음악을 사용하기도 했다.


본 아이덴티티

<본 아이덴티티>는 본(맷 데이먼)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마리(프란카 포텐테)의 앞에 본이 나타나 두 사람이 재회하면서 끝난다. 처음 기획한 엔딩은 조금 달랐다. 신분을 숨긴 채 여행을 하는 본 앞에 애봇(브라이언 콕스)이 나타난다. 그는 트레드스톤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고, 내막을 모두 듣게 된 본은 마리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속편을 만들 수 없다는 가정 하에 단편으로 끝낼 결말을 만든 듯하다. 또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당시 9/11 테러가 발생한 미국 사회에서 CIA를 좀 더 우호적인 집단으로 그리기 위해 아예 새로운 엔딩도 공개했지만, 테스트 스크리닝 결과 원래 엔딩이 낫다는 의견이 많아 지금의 결말까지 이르게 됐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DCEU 작품들 중 테스트 스크리닝 결과가 나쁜 건 없었지만,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반응은 정말 좋았다. 다른 작품들이 워너 브러더스 이사진에게 좋은 반응을 받았던 것과 달리 <수어사이트 스쿼드>는 일반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받았다. 문제는 워너 브러더스 이사진이 이 영화를 마음에 안 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재촬영 및 재편집을 통해 지금의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완성시켰다. 감독인 데이비드 에이어는 SNS를 통해 “개봉한 것이 내가 편집한 최종 결과물”이라고 밝혔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워너가 제작에 깊게 관여해서 영화가 이렇게 나왔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워너가 에이어에게 말도 하지 않고 편집자를 마음대로 고용했다는 루머마저 돌았다. 1차 예고편과 2차 예고편의 온도차를 보면 어떤 식으로 변경됐을지 대강 느낄 수 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긴 했지만, 실추된 감독의 명예는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