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달루시아의 개>

1“사유하며 영화보기” 스무 번의 연재를 오늘로 마칠까 한다. 작년 4월 말에 시작한 연재이니, 아이 하나를 품었다가 세상에 내보낸다는 열 달은 얼추 채운 셈이다. 그간 두 주에 한 번씩(어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지만) 영화에 ‘대해’, 혹은 영화를 ‘통해’ 꽤나 진지한 척 독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정기적으로 마감에 시달려야 하는 연재 글의 속성상, 나로서는 다른 원고들에 비해 여기 글들이 우선이었고, 제법 품도 많이 들였다. 그래서 마지막 글은 연재를 마치는 소회로 마무리할까 했다.

그러나 소회라니, 이제 생각하니 좀 우습다. 네이버 영화판에 올라있고 또 지금도 올라오고 있는 수천 편의 글들 사이에서 내가 쓴 스무 편의 글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도대체 몇이나 되는 독자들이 ‘사유하며’라는 유행 지난(그래서 이제는 주로 꼰대들만 사용한다고 알려진) 부사어가 붙은 이상한 방에 부러 찾아 들어와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주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저 짐작만 할 뿐인데, 아마도 그런 연재가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구독자들이 태반일 거라 생각한다. 이런 상황은 마치, 학생들이 (가령 ‘소확행’ 같은 주제로) 열띠게 토론 중인 강의실에 들어와 (아렌트적인 의미에서) ‘사유’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일장 연설을 마친 인문학 교수가 종강을 선언하고 강의실 밖으로 나가는데, 정작 학생들은 그가 다녀갔는지조차 모르는 상황 같기도 하다. 그럴 때 대체로 잘못은 학생이 아니라 교수에게 있다는 사실을 나는 경험적으로 안다.

<이창>

2어릴 적부터 영화를 아주 좋아해서, 본업도 아닌 주제에 (나는 ‘문학’ 평론가다) 영화에 대해 쓰고 싶었다. 청소년기까지 내가 살던 소읍 도시의 낡은 극장(믿지 못하겠지만 선동렬의 아버지가 주인이었다)을 기억한다. 지금 극장들에 비하면 넓기 그지없었지만, 낡기도 그지없었고 춥거나 덥기도 그지없었다. 길고 묵직한 종이 울리고 불이 꺼지고 잠깐 일어서서 애국가를 듣고(시인 황지우는 이 상황을 시로 쓰기도 했다) ‘대한 늬우스’ 따위도 끝나고 나면, 영화가 시작된다. 그때의 기이한 흥분을 내 몸은 아직 잊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실은 영화보다 극장을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극장이라는 공간이 연출하는 그 흥분은 명백히 관음증적이었으니까.

어둠이 내 표정을 다른 이들로부터 차단한다. 이제 나는 어둠 속에서 혼자다. 그리고 그렇게 혼자가 된 내 눈앞에 놀라워라, 타인들의 삶이 낱낱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영화가 ‘집단적이고 산만한 관람자들’의 장르(그래서 비판과 해석에 열려 있는 장르)라는 벤야민의 기대는 틀렸다.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커다란 스크린에 펼쳐진 타인들의 일상을(집중해서, 침실까지도) 엿보는 관음증자였다.

심지어 거실 소파에 앉아 TV로 영화를 볼 때마저도 우리는 대체로 불을 끄고 관음증적 상황 속에서 영화 보기를 즐기는데, 아마도 영화가 가진 가장 강력한 매력이 그것일 테다. 훔쳐보기의 쾌락! 나이를 속이고(실은 속일 필요도 없었지만) 실비아 크리스텔이 주연한 <개인 교수>를 보던 어느 날, 배꼽 아래 비뇨기 계열의 특정 부위에 생긴 생리적 변화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는 경험까지 해야 했던 나는, 그래서 종종 영화란 장르가 무섭다.

<경멸>

3라캉의 이른바 ‘거울단계’에 대해 읽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대학원 시절……. 라캉 왈, 우리는 모두 거울에 비친 이미지에 매혹당한 적이 있고, 그 이미지에 따라 자아를 형성한단다. 게다가 거울(반드시 물리적 거울일 이유는 없다. 타자도 거울이다)에 비친 이미지는 대체로 이상화되기 마련이고, 따라서 ‘실재’라기보다는 나르시시즘적으로 왜곡된 상이란다.

어렵게 설명할 것도 없이, ‘거울아, 거울아’를 연발하는 동화에서와 달리 거울은 항상 거짓말하는데, 거짓말하지 않는 거울(우연히 찍혀서 전혀 나라고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셀카 사진이나, 원치 않는 순간 우리 얼굴의 티끌까지도 적나라하게 반사하는 엘리베이터의 거울상)에 비친 상이라면 우리가 기를 쓰고 외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요컨대 이미지를 통해 ‘실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상상’한 ‘나’를 본다. 나르시시즘적 이미지와의 동일시, 그렇게 착각과 오인 속에서 우리는 ‘나’가 된다. 이미지는 주체형성과정에서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나는 영화가 무섭다. 관음증적 흥분 속에서 우리는 이미지(스크린)와 나를 동일시한다. 가령 부담스러울 정도로 불거진 근육질의 미군 ‘람보’와 스스로를 동일시하지 않고, 스크린에 등장하자마자 그가 난사하는 기관총에 쓰러지는 동남아시아 병사와 스스로를 동일시할 관객은 없다. 그렇고 그런 수많은 영화들이 그런 식으로 우리의 주체형성 과정에 (이데올로기적으로) 관여한다.

<메이콘의 아이>

4편협하고 주관적으로 말해, 내게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는 그렇게 구분된다. 관객이 ‘원하는’, ‘상상적 이미지’를 순순히 제공하는 영화들에 대해 나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반면 관객이 앉아 있는 관음증적 상황을 깨뜨리고, 그들이 원하는 상상적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말하자면 ‘불편한’ 영화들을 선호한다.

나는 지금 특별히 영화사 초창기 걸작 <안달루시아의 개>(루이스 부뉴엘, 1929)를 염두에 두고 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눈알을 긋는 면도날이 클로즈업된다. 나는 그 장면을 ‘동일시하지 말라, 눈을 그어버리리라!’라는 경고로 읽었다. 히치콕의 <이창>(1954)도 빼놓기 힘들다. 관음증적인 상황에서 내내 살인자를 지켜보던 제임스 스튜어트 바로 뒤에서, 피사체였던 살인범이 역으로 그를 응시한다. 그럴 때 관객은 마치 열쇠구멍으로 부모의 정사를 지켜보다 들킨 아이처럼 황망하다. 같은 이유로 나는 피터 그리너웨이(<메이콘의 아이>)나 조던 필(<어스>), 그리고 장 뤽 고다르의 영화(<경멸>)를 좋아한다.

<기생충>

5 봉준호의 영화들도 좋아한다. 그도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니까. 그래서 나는 지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며 찔끔찔끔 울기도 했는데, 당연히 그 눈물은 애국주의적 감상의 소산이 아니었다. ‘불편하게도’ 이 사회의 불평등한 계급구조를 다룬 영화가 그토록 상찬을 받는 장면이 얼마간 장해서였다.

그러나 나는 그러면서 또다시 무서워지기도 했는데, 그것은 (좋은 영화건 나쁜 영화건) 영화라는 놀랍도록 매혹적인 장르가 지금 처한 어떤 역설적인 상황 때문이었다. 혹자는 <기생충>의 최종 수익이 천억 단위를 넘어 조 단위에 이를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한다. 또 혹자는 ‘방탄 소년단’과 함께(아미들이여 용서하시기를!) <기생충>이 한류 산업을 ‘쌍끌이’할 것이라고도 말한다. 참고로 ‘쌍끌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한 틀의 그물로 두 척의 배가 바닷물고기를 대상으로 저층을 쓸어서 어획하는 방법”을 의미하는 ‘어업 용어’다. 뉘앙스가 좀 잔인하고 독점적인 어업임에는 틀림없어 보이는데, 말하자면 <기생충>은 이제 단순히 (흔히 우리가 예술에 속한다고 말하는) 하나의 ‘작품’이 아니다. <기생충>은 산업이다.

역설은 거기 있다. 관객을 자꾸 완고한 계급적 불평등의 현실(영화의 결말, 이 현실은 영영 개선되기 어려워 보인다) 앞으로 불러 앉히는 이 영화가, 아이러니하게도 산업의 산물이고 산업의 도구이자 산업의 구성 요소여서, 결국엔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점 말이다. 더 무서운 것은 전작 <설국열차>로 미루어 보건대 봉준호 감독 또한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생충>으로 오스카상을 네 개나 들어 올린 그는, 그렇다면 <설국열차>의 크리스 에반스가 아닌가? 시스템에 대한 저항 자체가 시스템의 유지에 필수불가결하게 되어버리는 역설적인 상황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에드 해리스 앞에 서야 했던 바로 그 ‘캡틴 아메리카’ 말이다.

<조조 래빗?

6편협한 문학평론가가 ‘문학의 죽음’ 운운하는 작금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영화(산업)에 전가하려는 의도로 하는 말들이 아니다. 물론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조차 시집이나 소설보다 관람하는 영화 작품의 수가 수배 아니 수십 배에 이른지는 오래되었다. 유감은 없다. 영화가 그만큼은 매혹적인 장르니까. 게다가 문학 쪽도 그리 순수하지는 못해서, 문학권력이네 출판권력이네 하는 말들에 다들 익숙해진 바에야…….

그래서 이 글에는 (정확한 진단과 전망으로 이루어진) 마땅한 결론도 없다. 깜냥도 안되는 문학평론가가 애초부터 무력감이나 호소하자고 쓴 글이니까. 다만 영화를 통해 더 ‘사유’해 보고 싶었다는 말은 변명처럼 남겨둔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했다면 아마도 연재는 좀 더 이어졌으리라. <어스>에서 <It>으로, <성스러운 피>에서 연쇄 살인에 대한 영화들로, 히틀러 일당을 극장에 몰아넣고 깡그리 불태워버린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통쾌함을 지나 다시 아우슈비츠로(<쇼아>, <조조 래빗>), 그리고 1980년 5월로(<스카우트>)……. 그러나 지금은 숨을 좀 골라야 할 시간,

남은 이야기들은 조만간 책 속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역시나 많은 독자들에 대한 기대는 없는 채로…….


저자 | 김형중

1968년 광주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문학동네신인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평론집 《켄타우로스의 비평》 《변장한 유토피아》 《단 한 권의 책》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후르비네크의 혀》 등과 에세이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가 있으며, 소천비평문학상(2008), 팔봉비평문학상(2017)을 수상했다. 현재 조선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