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출신의 감독 폴 버호벤의 최신작 <베네데타>가 극장가에 상영 중이다. 폭력과 섹스에 대한 금기를 넘나드는 자유분방한 영화들로 50년째 현역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폴 버호벤의 지난 행적들을 정리했다.


** 이름 ‘Paul Verhoeven’이 할리우드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영어식 ‘폴 버호벤’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모국어인 네덜란드어로는 ‘파울 베르후벤’이라 발음한다.

** 1938년 7월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교사인 아버지와 모자를 만드는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헤이그에서 성장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부대가 인접한 지역에 살아서 폭격으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겼고, 거리에 널브러진 시체와 불타는 건물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 아버지가 교장으로 재직하던 초등학교에 입학해, 부자가 함께 학교 영사기로 영화를 보곤 했다. 둘 모두 미국 영화를 선호했고, 후대 SF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우주전쟁>(1953)은 10번 이상 볼 정도로 특히 좋아했다.

** 학부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던 당시 단편영화를 연출했고, 마지막 학년엔 네덜란드 영화 아카데미의 수업을 들었다. 전공은 살리지 않은 채 영화 만들기에 열중하다가 해군으로 징집돼 복무 중에 군사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전역 후 TV 방송국에서 드라마를 만들며 연출 경력을 쌓았다.

<플로리스>

** 훗날 수많은 작품을 함께 하는 시나리오 작가 헤라르트 소트만(Gerard Soeteman)과 처음 협업한 드라마 <플로리스>(1969)가 호평받았다. 장편영화 데뷔작은 두 매춘부의 우정을 코믹하게 그린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1971). 버호벤은 네덜란드 문학 작품을 각색한 작품을 첫 장편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소트만이 우선 연출 제의 오는 것부터 만들고 보자고 설득해 작업하게 됐다. 버호벤이 직접 암스테르담의 매춘부들을 인터뷰하며 준비한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 버호벤은 이미 여러 차례 네덜란드의 베스트셀러 작가 얀 볼커르스(Jan Wolkers)의 소설을 각색하고 싶다 제안했다가 거절당했지만,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볼커르스의 대표작을 바탕으로 한 <사랑을 위한 죽음>(1973)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플로리스>의 주인공 플로리스를 연기한 루트거 하우어(Rutger Hauer)가 주연을 맡아 조각가와 그가 길에서 만난 소녀의 사랑을 그렸다. 버호벤과 촬영감독 얀 드 봉(Jan de Bont)은, 윌리엄 프리드킨(William Friedkin)의 영화 <프렌치 커넥션>(1971)을 보고 자연광을 쓰고 핸드헬드로 찍고 자잘하게 편집하는 방식에 영감을 받았다. 원작자는 “75% 정도 걸작”이라 평했지만, 개봉 당시 네덜란드 인구 26%에 해당하는 33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기록했다. <사랑을 위한 죽음>의 네덜란드 자국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은 근 40년이 지난 현재도 깨지지 않고 있다.

** 19세기 암스테르담의 노동자 계급의 생활을 그린 시대극 <캐티 티펠>(1975)을 만들 당시, 프로듀서 롭 하우어와 제작비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예산을 아끼기 위해 대규모 시위 신을 덜어내는 등 사회적인 이슈를 피하고 개인의 드라마에 초점을 맞추길 요구했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티 티펠>은 당시 네덜란드 영화 중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입됐고, 1975년 흥행 1위를 차지했다. 모니크 판 더 벤(Monique van de Ven)이 연기한 주인공 캐티 티펠은 이후 버호벤 영화 속 강인한 여성상의 원형 같은 캐릭터다. 버호벤은 셀프 리메이크 하고 싶은 유일한 작품으로 <캐티 티펠>을 손꼽은 바 있다.

<캐티 티펠>

<오렌지 군단>

** <캐티 티펠>의 제작비 기록을 깬 건 버호벤의 다음 작품 <오렌지 군단>(1977)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오렌지 군단>은 230만 유로로 제작돼 전작과 마찬가지로 그해 네덜란드 최고 흥행작이 됐다. 프로듀서 롭 하우어는 버호벤에게 알리지 않은 채 거의 1시간 분량을 덜어내 액션 신만 남긴 해외판을 유통하려고 계획했는데, 시애틀 영화제를 운영하는 댄 아일랜드(Dan Ireland)가 원본을 상영해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보여줌으로써 미국 배급업자들도 원본을 요구하게 됐다. 버호벤은 아직도 댄 아일랜드 덕분에 자신이 미국영화계에 제대로 알려질 수 있었다고 공을 돌린다.

<스펫터스>

** 노트르담 외곽에 사는 청춘들의 좌절을 극단적으로 그려낸 청춘영화 <스펫터스>(1980)는 당시 네덜란드 평자로부터 반 여성, 반 동성애자, 반 크리스찬적인 작품이라는 혹평을 마주해야 했다. 이와 같은 반응이 버호벤에게 자국을 떠나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만들었다. 카톨릭 신자이자 양성애자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강연을 위해 온 작은 도시에서 사고로 남편을 잃은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의 젊은 애인까지 사랑하게 되는 스릴러 <포스 맨>(1983)이 네덜란드 자국뿐만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도 성공하게 되면서, 버호벤은 할리우드행을 결심한다.

<포스 맨>

** <아그네스의 피>(1985)는 버호벤의 첫 영어 영화다. 일찌감치 할리우드에 진출해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 “모든 순간들이 금세 사라질 거야, 빗속의 눈물처럼”이라는 명대사를 남긴 루트거 하우어가 주인공 마틴 역을 맡은 <아그네스의 피>는 버호벤과 하우어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 헤라르트 소트만이 처음 협업한 TV시리즈 <플로리스>의 설정을 일부 빌려왔다. 여러 국적의 스탭들, 너무나 모진 날씨, 통제되지 않는 배우들 등 <아그네스의 피> 현장은 버호벤에게 커리어 통틀어 최악의 경험이었다. 버호벤과 하우어가 현장에서 수차례 네덜란드어로 말다툼을 해서 스텝들은 알아들을 수 없으니 영어로 싸워달라 부탁했다고. 650만 달러가 투입됐지만 미국에서 그에 1/50에도 못 미치는 수익을 거둘 만큼 크게 실패했다.

<아그네스의 피>

** <로보캅>(1987) 시나리오는 온갖 할리우드 감독들에게 거절당한 후에야 버호벤에게 도착했다. 버호벤 역시 시나리오를 몇 장만 읽고 머저리 같은 액션영화라 판단해 거절하려 했는데, 그의 아내가 <로보캅> 속 교묘히 짜여진 풍자적인 요소를 간파하고 설득했다. 로보캅이 머피의 버려진 집에 와 그의 과거를 돌이켜보는 대목을 마음에 들어 한 버호벤은 <로보캅>을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선택했다.

<로보캅>

** 스케줄 지연과 초과된 예산 때문에 머피가 죽는 장면을 찍지 않았다. 프로덕션을 마치고 제작자들에게 촬영분을 보여주고는 그 대목을 찍지 않았다고 알리니, 결과물에 깜짝 놀란 제작자들은 제작비를 더 보태 머피의 죽음을 찍을 수 있었다.

<로보캅> 촬영 현장의 폴 버호벤

** 버호벤은 나이트클럽 신에서 리온이 로보캅의 낭심을 찬 바로 다음 쇼트에 미친 듯 몸을 흔드는 남자로 짤막하게 얼굴을 비춘다. 계획된 카메오가 아닌, 클럽 안 군중들에게 어떻게 춤을 춰야 하는지 시범을 보이다가 찍힌 걸 그대로 쓴 것. 버호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카메라 앞에 선 장면이다.

** 로보캅/머피 역을 맡을 유력한 배우였던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로보캅>을 아주 좋아해서 직접 <토탈 리콜>의 감독으로 폴 버호벤을 지목했고, 늘 슈왈제네거와 작업해보고 싶었던 버호벤은 흔쾌히 승낙했다. <로보캅>이 개봉하고 1년이 지난 1988년 가을 계약했다. 버호벤이 <토탈 리콜> 연출을 맡기로 정해지기 전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감독으로 내정돼 있었다.

<토탈 리콜>

** 슈왈제네거와 버호벤은 <토탈 리콜>을 만들면서 중동십자군에 관한 영화를 계획했다. 나중에 시나리오, 세트, 등 거의 준비를 마쳤지만, 캐롤코(Carolco) 스튜디오의 수장 마리오 카서(Mario Kassar)는 거대 프로젝트를 둘이나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해 당시 준비 중이던 <컷스로트 아일랜드>(1995)만 만들기로 결정했다. <컷스로트 아일랜드>의 완전한 실패로 캐롤코는 파산했다.

폴 버호벤과 아놀드 슈왈제네거

** <토탈 리콜>의 이야기가 꿈인가 현실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버호벤은 초반 20분까지는 모두 현실이라고 밝혔다.

** 버호벤과 특수효과 감독 롭 보틴(Rob Bottin)은 <로보캅> 제작 당시 여러 차례 의견 차이를 보였는데, 알렉스 머피(피터 웰러)가 헬멧을 벗는 신이 대표적인 사례다. 버호벤이 자기 뜻을 고집하자 이후 보틴은 촬영 내내 버호벤과 상의하지 않았지만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그는 아주 감탄해 흔쾌히 버호벤의 다음 작품 <토탈 리콜>에서도 특수효과를 담당했다. 버호벤 역시 <토탈 리콜> 속 화성을 구현하는 것에 있어서 전적으로 보틴의 뜻을 따랐다.

<토탈 리콜>

** 멕시코에서 촬영 중 버호벤을 비롯한 수많은 제작진이 식중독에 걸려 현장에 앰뷸런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틈틈이 수액과 약을 투여하면서 가까스로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토탈 리콜> 현장

** <람보 3>(1988)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토탈 리콜>은 총 2억 6000만 달러를 벌어들여 <사랑과 영혼>, <나홀로 집에>, <귀여운 여인>, <늑대와 춤을>에 이어 1990년 다섯 번째로 많은 수익을 기록한 작품이 됐다. <토탈 리콜>을 제작한 캐롤코 스튜디오는 이 성공에 힘입어 샤론 스톤과 마이클 더글라스 주연의 에로틱 스릴러 <원초적 본능>(1992)의 연출도 버호벤에게 맡겼다. <원초적 본능>은 <토탈 리콜>보다 더 큰 수익을 올리며 <알라딘>, <보디가드>, <나홀로 집에 2>를 잇는 1992년 최고 흥행작이 됐다.

<토탈 리콜> / <원초적 본능> 포스터

** 마이클 더글라스는 주인공 캐서린 역에 킴 베이싱어, 줄리아 로버츠, 멕 라이언 등을 제안했고, 버호벤의 1순위 캐스팅은 데미 무어였다. 버호벤은 전작 <토탈 리콜>에서 샤론 스톤이 보여준 사랑스러움과 사악함을 단숨에 오가는 역량을 믿고 결국 스톤을 섭외했다.

<원초적 본능>

** 그 유명한 샤론 스톤의 다리 꼬기는 시나리오 작가 조 에스터하즈(Joe Eszterhas)가 쓴 시나리오엔 없었다. 촬영 중이었던 버호벤이 대학 시절 파티에서 어떤 여자가 똑같이 행동해서 당황했던 걸 떠올리고 추가된 설정이다.

** <원초적 본능>은 버호벤의 데뷔작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부터 <사랑을 위한 죽음>, <캐티 티펠>, <포스 맨>, <아그네스의 피> 등을 함께 한 촬영감독 얀 드 봉과의 마지막 작품이다. 드 봉은 산드라 블록,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액션 영화 <스피드>(1994)의 감독으로 데뷔했다.

얀 드 봉 / 폴 버호벤과 요스트 바카노

** 독일 출신의 촬영감독 요스트 바카노(Jost Vacano)와도 여러 작품을 함께 했다. 서독의 범죄물 <슈퍼마켓>(1974)을 통해 바카노의 실력을 알아봤고, <오렌지 군단>으로 협업을 시작했다. 특히 할리우드에선 <원초적 본능>을 제외한 모든 작품을 바카노가 찍었다. 버호벤은 바카노가 촬영한 <특전 U보트>(1981)를 최고의 전쟁영화로 언급한 바 있다.

조 에스터하즈

** 캐서린과 록시의 레즈비언 섹스 신을 두고 버호벤과 에스터하즈 사이에 의견 대립이 있었다. 에스터하즈는 지나치게 선정적으로만 보일 걸 염려해 언급으로만 처리되길 원했고, 버호벤은 두 여자의 정사를 닉이 훔쳐보고 있는 것까지 담아내려고 했다. 그게 영화의 페이스를 망칠 거라고 깨달은 버호벤은 에스터하즈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버호벤과 에스터하즈는 <쇼걸>(1995)로 다시 뭉쳤다.

<쇼걸>

** <쇼걸>은 <로보캅>, <토탈 리콜>, <원초적 본능> 등 버호벤의 할리우드 탄탄대로에 제동을 걸었다. R 등급보다 더 높은 NC-17 등급으로 개봉한 <쇼걸>은 <원초적 본능>과 비슷한 제작비를 들였지만 그 수익의 10%밖에 거두지 못했고, 평단은 개봉 당시 악평을 쏟아냈다. 극장 개봉엔 맥을 못 췄지만 비디오 시장에선 1억 달러를 벌어 결국 흑자를 남길 수 있었다. 버호벤은 ‘노미 더즈 할리우드’라는 제목의 속편을 만들고 싶어 했지만, 아무도 투자하려 들지 않았다.

** 오스카 시상식 전날 열려, 매해 최악의 작품을 선정하는 ‘골든 라즈베리 어워드’에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인) 13개 부문 후보에 올라 최악의 작품상, 최악의 감독상, 최악의 여자배우상 등 7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감독 개런티를 일부 포기하면서까지 창작의 자유를 고집해 <쇼걸>을 완성한 버호벤은 시상식에 참석해 아주 유쾌하게 감독상을 받아가는 진풍경을 남겼다. 완성한 후엔 자기 작품을 다시 보지 않는 그는 <쇼걸>은 스무 번 넘게 다시 보면서 참으로 우아하게 만들어졌다 생각했다고. 일부 눈 밝은 평론가들과 자크 리베트, 쿠엔틴 타란티노, 짐 자무쉬, 애덤 맥케이 등 감독들이 <쇼걸>을 명작이라 추켜세우는 등 재평가 받았다.

폴 버호벤과 에드워드 누마이어

** 버호벤은 <로보캅>의 각본을 쓴 에드워드 누마이어(Edward Neumeier)와 10년 만에 다시 만나 SF 액션 <스타십 트루퍼스>(1997)를 작업했다. 누마이어는 어릴 적부터 원작소설의 팬이었지만, 버호벤은 원작을 두 챕터 정도 읽다가 너무 지루한 우익 소설이라며 더 이상 읽지 않았다. 그는 2014년에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왜 파시스트 영화를 만들었냐는 질문에 “모두가 아름답고, 모두가 빛나고, 모두가 거대한 총과 화려한 전함을 갖고 있지만 그게 고작 엿같은 버러지들이나 죽이는 데에 유용하다는 보여주는 완벽한 파시스트 세계를 만들고자 했다”고 대답했다.

<스타십 트루퍼스>

** 자신이 감독한 작품들 가운데 <스타십 트루퍼스>를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꼽았다. 아켈리언 모래벌레를 해부하는 신을 특히 좋아한다고.

** 디지(디나 마이어)와 쟈니(캐스퍼 반 디엔)가 같이 샤워 하는 장면을 찍을 때, 버호벤은 배우들에게 “패션이 없는 패션쇼”처럼 해달라고 요청했다. 버호벤이 옷 벗는 게 뭐 벌거냐는 식으로 말하자 디나 마이어는 별 것도 아니라면 당신도 한번 벗어보라고 대답했고, 버호벤과 촬영감독 요스트 바카노는 즉시 옷을 벗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촬영을 마쳤다.

<할로우 맨>

** <스타십 트루퍼스>를 만든 뒤 버호벤은 섹스와 폭력의 정도를 조금 낮춘 “전형적인 상업 블록버스터” 같은 작품을 만들기를 원해 <할로우 맨>(2000)의 메가폰을 잡았다. 평단의 반응은 좋지 않았지만 제작비 9500만 달러의 2배를 웃도는 수익을 기록했다. 훗날 버호벤은 “<할로우 맨>은 내가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은 유일한 작품”이었고, 그 이후 오랫동안 좌절에 빠져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블랙북>

** <할로우 맨> 이후 6년 동안 멈춰 있던 버호벤의 필모그래피는, <아그네스의 피> 이후 21년 만에 고국 네덜란드에서 만든 영화 <블랙북>(2006)으로 다시 가동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파이로 활동한 유대인 여성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헤라르트 소트만과 21년 만에 작업한 시나리오로 알려져 있지만 두 사람은 15년 동안 틈틈이 <블랙북> 시나리오를 작업해왔다. 보통 네덜란드 영화들의 3배가 넘는 자본이 투입돼 2006년 네덜란드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트릭>

** 2012년 발표한 영화 <트릭>은 작가가 3분 분량의 시나리오를 온라인에 올린 후 39주 동안 3만 5천 명의 네티즌이 그 다음 이야기를 써서 완성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50분짜리 중편이다. 버호벤은 자신이 시나리오에 5~60% 정도 관여했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를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1963)을 빌려) ‘14와 1/2’이라 칭했다.

<엘르>

** 프랑스 소설가 필립 지앙(Philippe Djian)의 소설 <“오...”>를 바탕으로 한 <엘르>(2016)는 어느 날 자기 집에서 강간당한 중년여성 미셸(이자벨 위페르)의 욕망을 파격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줄리앤 무어, 니콜 키드먼, 샤론 스톤, 샤를리즈 테론, 마리옹 코티아르 등 배우들에게 제안이 갔지만, 호감을 보인 미국 배우는 (<아그네스의 피>에 출연한 바 있는) 제니퍼 제이슨 리가 유일했다. 본래 보스턴이나 시카고에서 촬영하려고 했지만 미국에선 만들 수 없겠다고 판단해, 프랑스에서 제작하기로 방향을 틀고 원래 원작소설을 영화화 한다는 소문을 들었던 이자벨 위페르가 먼저 관심을 보여 미셸을 연기하게 됐다.

<엘르> 촬영 현장

** <원초적 본능> 이후 14년 만에 칸 영화제 경쟁부문을 통해 처음 공개된 <엘르>는 수많은 매체와 평론가의 2016년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칸 영화제에 참석한 이자벨 위페르와 폴 버호벤

** 첫 프랑스어 영화인 <엘르>를 촬영하면서 미국이나 네덜란드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창작의 이점을 톡톡히 누린 버호벤은 다음 작품 역시 프랑스에서 만들기로 결정했다. 튀니지 출신의 프랑스 제작자 세이드 벤 세이드(Saïd Ben Saïd)는 <엘르>에 이어 최신작 <베네데타>(2021)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 헤라르트 소트만은 주디스 브라운(Judith Brown)의 책 <수녀원 스캔들: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한 레즈비언 수녀의 삶>을 접하고 금세 트리트먼트를 써내 버호벤에게 전했다. 남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여성이 권력 투쟁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소트만의 버전과 달리, <엘르>의 시나리오를 작업한 데이비드 버크와 버호벤이 쓴 <베네데타> 시나리오가 섹슈얼한 요소에 무게가 실린 데에 유감을 표하며 크레딧에 자기 이름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베네데타>

** <베네데타>의 히로인 베네데타를 연기한 비르지니 에피라(Virginie Efira)는 전작 <엘르>에도 출연한 바 있다. 미셸의 이웃 파트릭(로랑 라피트)의 아내 레베카를 연기했다.

<엘르>

** <베네데타>는 2018년 7월부터 두 달 만에 촬영을 마치고, 2019년 칸 영화제에서 처음 선 보이기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버호벤이 둔부에 통증을 느껴 후반 작업이 미뤄지고, 결장에 구멍이 생기는 위급한 상황까지 생기면서 지연은 계속됐다. 2020년엔 코로나19로 인해 칸 영화제가 개최되지 않아,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열띤 반응을 얻었다.

칸 영화제 <베네데타> 포토콜

** 올해로 83세인 버호벤은 여전히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알려진 작품은 둘. 기 드 모파상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TV 시리즈 <벨 아미>와 에로틱 스릴러 <영 시너>다. 버호벤의 과거 작품들의 시나리오를 쓴 두 작가 헤라르트 소트만과 에드워드 누마이어가 각각 각본을 맡는다. 벤 사이드 벤이 프로듀서를 맡고 프랑스에서 촬영될 <벨 아미>는 여덟 개 에피소드 모두 버호벤이 연출할 예정이다. 한편 할리우드 시절 버호벤의 시나리오 파트너였던 누마이어가 쓴 <영 시너>는 미국 워싱턴 DC를 배경으로 한 정치 스릴러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