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바이 더 씨> 메인 예고편

리 챈들러(케이시 애플렉)는 과묵한 사내다. 아파트 잡역부로 일하는 그는 업무에는 아주 능숙하지만, 무뚝뚝하고 불손하다는 컴플레인을 받기 일쑤다. 문제는 그런 항의를 참고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 세입자가 과하게 틱틱거리자 그에 욕설을 섞어 응수하고, 매니저의 나무람에도 그래서 뭐 어쩌라는 식이냐는 태도로 일관한다. 일터 바깥에서도 트러블은 계속된다. 심드렁한 얼굴을 하고 홀로 술을 마시는 리는 옆에 앉은 여자가 대놓고 추파를 던져도 무관심하더니만, 저 멀리 맞은편의 무리가 자기를 힐끔대자 구태여 거기에 가서 주먹질을 하고야 만다.

도대체 이 남자는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주인공 리를 따라가며, 꽁꽁 닫힌 마음의 원인과 증상을 차분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여느 때처럼 업무를 보던 리는 갑작스럽게 고향 맨체스터에 사는 형 조(카일 챈들러)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그곳으로 향한다. 2시간 남짓의 거리. 하지만 결국 리는 형의 임종을 보지 못한다. 영화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는 리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그의 무기력과 죽음의 관계를 확정한다.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은 상황에서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비로소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리는 형의 아들 패트릭(루카스 헤지스)의 후견인이 되어야 한다. 알코올중독으로 가족을 떠난 형수가 오랜만에 연락해오고, 패트릭 역시 당연히 어머니의 품을 택하려고 하지만, “인간 같지도 않은” 이에게는 절대 조카를 맡길 수 없다며 고집을 부린다. 그렇다고 리에게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학교 하키팀에서 활동하고, 여자친구를 둘이나 두고 있으며, 아버지를 따라 배(船)를 좋아하는 패트릭에게 자신을 따라 보스턴에 가자고 우기기만 할 뿐이다. 정작 보호가 필요해 보이는 건 고향 맨체스터에서의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기만 한 리다.

영화는 리에게 철저히 구심점을 맞춘 채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패트릭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리는 패트릭을 보스턴으로 데려가는 것에서부터, 형이 생전에 바라던 대로 국립묘지에 그를 묻기 위해 냉동고에 두는 문제까지, 자기만큼 자란 조카와 신경전을 벌인다. 하지만 초점은 ‘갈등’보다는 ‘이해’에 맞춰져 있다.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을 감내해야 하는 비슷한 처지의 두 사람은 틈만 나면 티격태격하지만, 그 슬픔을 끝내 참아내지 못한 순간이 올 때는 곧장 달려가 곁을 내어준다. 두 사람 사이 마음의 거리는 시시각각 변하지만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그 거리의 변화를 보여주는 과정이 아주 자연스럽다.

또 다른 축은 리의 과거다. 시작부터 맨체스터에서 살던 당시의 순간들이 간간이 플래시백으로 따라붙는다. 그리고 그가 다시 돌아온 맨체스터에서 억지로 시간을 보낼수록 플래시백은 점점 더 빈번하게 등장하고, 리가 저 지경이 된 그날의 사건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간다. 이윽고 결정적인 순간을 기어코 떠올려야 할 때, 거의 영화의 리듬을 헝클어놓을 기세로 그때의 기억이 막무가내로 침입해온다. 영화에서 리는 단 한번도 마음의 부침을 토로하지 않지만, 말없이 어떤 생각에 빠져 있는 듯한 그가 그렇게 어마어마한 비탄을 때마다 곱씹고 있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관객들은 한껏 가까이 리의 마음 곁에 서게 된다.

케이시 애플렉과 케네스 로너건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조용한 영화지만,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연출은 대화가 펼쳐지는 순간에서 빛을 발한다. 가벼운 말장난으로도 관계의 어긋남을 보여주는 동시에 영화의 텁텁한 분위기에 기묘한 유머를 더한다. 대화가 오가는 찰나의 타이밍을 세밀하게 조절해 굳이 표정을 비추지 않고도 상황의 어색한 공기를 자아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리가 패트릭 여자친구의 엄마와 독대하는 신이나 패트릭이 엄마와 그의 남편을 만나는 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독식하고 있는 사실이 증명하듯,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속 케이시 애플렉은 리 그 자체처럼 보인다. 억울해 보이는 그의 얼굴에 묻어나던 무기력과 그걸 찢고 주먹을 던지는 듯한 폭압적인 에너지는 리의 황량하고 불안정한 심리가 담기는 완벽한 그릇이라 할 만하다. (다만 그 폭력적인 이미지에서 최근 애플렉을 둘러싼 성추문이 상기된다.) 이렇다 한 감정 표현 없이 결코 짧지 않은 러닝타임에 걸쳐 마음의 풍경을 온전히 풀어헤치고야 마는 기운을 좀처럼 외면하기 어렵다. 비록 비중은 적지만 몇 신의 등장만으로 리를 뒤흔드는 전 부인 랜디를 연기한 미셸 윌리엄스의 조역도 좋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클라이막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감정을 감출 줄 모르는 캐릭터인 랜디가 온몸이 시뻘개진 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보는 이의 심장을 헤집는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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