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광장' 김보솔 감독 “북한이란 세계, 내가 모르는 건데 함부로 그리게 될까 자문과 조언 구해”

“꼭 다시 오자 했던 안시영화제에서 수상, 특별한 기억” “북한 내부 변화 없이는 남한의 대화 시도도 의미 없겠다 느껴”

〈광장〉
〈광장〉

겨울, 이 살갗에 스미는 겨울에 딱 맞는 애니메이션 한 편이 극장에 찾아온다. 김보솔 감독의 〈광장〉은 지난 6월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콩트르샹 부문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아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작품이다. 김보솔 감독이 5년간 소수의 스태프들과 고군분투하며 완성한 작품이 그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이후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한차례 한국 관객들 앞에 선 〈광장〉은 이제 오는 1월 14일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북한 평양을 배경으로 스웨덴 외교관 보리와 북한 교통경찰 복주의 사랑, 그리고 이들을 남몰래 지켜보는 통역관 명준의 이야기는 관객들의 마음에 불씨를 남겨줄 것이다. 씨네플레이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광장〉의 연출과 각본 등을 맡은 김보솔 감독을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광장〉을 연출한 김보솔 감독
〈광장〉을 연출한 김보솔 감독

국내 개봉에 앞서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고 부천국제애니메이션 등에서 상영했다. 그리고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소감이 궁금하다.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신경이 쓰인다. 왜냐하면 영화제 관객과 일반 관객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제 관객들은 워낙 영화를 좋아하고 관심이 있어서 찾아온 분들이라 어느 정도 호의적인 마음이 있다. 하지만 일반 관객분들은 그런 전제 없이 솔직한 평가를 할 수도 있어서, 많이 신경 쓰지는 않으려 하지만 조금 두려운 생각도 든다.

혹시 안시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을 때와 부천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 차이 같은 것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관객층이 글로벌한 쪽과 국내 관객으로 달랐을 것 같은데.

안시는 2023년도에 오유진 감독의 단편 〈유니크 타임〉(Unique Time)으로 초청받아 갔었는데, 그때 개인적으로 되게 힘든 시기였다. 이미 번아웃이 온 상태에서 〈광장〉 작업을 하던 중이라, 그냥 빨리 작업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운 좋게 오유진 감독의 단편이 안시에 초청되면서 갔는데, 우리 작품이 되게 창피하게 느껴졌다. 완성도가 다른 단편들에 비해 낮아 보였고, 여러 섹션의 세계 수준의 작품들 사이에서 사이에 끼어 있으니 그 차이가 선명하게 보였다. 제작비 규모도 그렇고 작화도 그렇고. 그래서 영화제 마지막에 픽사와 디즈니의 BBQ 파티가 있었는데 가지 않았다. 그냥 우리끼리 선착장에 앉아서 보트를 보며 둘이 맥주인지 와인인지 마시면서 각오를 다졌다. “우리 〈광장〉으로 여기 다시 오자”라고. 그래서 안시 영화제를 다시 방문했을 때 특별함이 있었다. 안시 초청작 발표가 나던 2025년 초순, 다른 상업 영화 스토리보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저랑 오유진 감독 둘이 작은 작업실에 있다가 그 소식을 듣고 끌어안고 춤을 췄다. 안시영화제는 워낙 크고 기대를 많이 했던 곳이고 애니메이션 하는 사람들에게 ‘애니메이션계의 칸영화제’라고 불릴 정도니까. 그러다보니 부천이 오히려 마음이 조금 편했다. 부천의 감회는 남달랐다. 제 단편 〈홈〉을 처음 상영한 영화제였고 〈광장〉을 처음 상영한 곳이라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다. 그리고 국내 관객을 처음 만나는 자리여서 GV 질문도 궁금했다. 그런데 사실 기억은 잘 안 난다. 어떻게 영화가 시작되었나, 자료 조사는 어디서 했나, 왜 북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나 같은 질문들이었던 것 같다.

〈광장〉
〈광장〉

〈광장〉의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신기했다. 처음엔 정말 최인훈 작가님의 「광장」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줄 알았다. 물론 모티브로 삼았다고 하지만, 또 다른 내용이었다. 정규 교육을 받은 한국관객이라면 모두 그 소설을 떠올릴 법하다. 그 소설과 실제 평양에서 근무한 스웨덴 외교관의 인터뷰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이번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이젠 웹툰이자 넷플릭스 드라마 〈광장〉도 있지 않나. (일동 웃음) 제목이 〈광장〉이 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스웨덴 외교관 인터뷰를 읽어보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북한에서의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텅 빈 고속도로에 나가 혼자 자전거를 탔다는 내용이 있다. 그 이미지가 트리거가 됐다. 기사 내용은 고속도로지만 내 머릿속에 그려진 공간은 ‘광장’이었다. 이미 소설 「광장」에 대한 정보가 있다 보니 연결이 됐다. 「광장」은 소설 속 주인공 이명준이 진리를 찾아 떠난 젊은 청년으로 등장한다. 우리 영화 속 리명준도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래서 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모티브로 리명준이라는 이름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광장〉 시나리오를 쓸 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최인훈 작가님 특강이 있었다. 최인훈 작가님의 아들이자 그의 모든 작품 지적 재산권을 물려받으신 최윤구 칼럼니스트님이 진행했다. 그분이 “문학 평론가들이 최인훈 작가를 평가하는 것보다 작가 자신이 자신의 작품을 평가한 것이 가장 좋은 평론”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광장」은 해가 바뀌어 인쇄를 다시 할 때마다 서문이 새로 찍히는데 그 서문들이 참 좋다고 하더라. 기억에 남는 문장이 초판본 서문에 있는 “우리는 참 많은 풍문 속에 삽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라는 말이었다. 최인훈 작가님의 생애를 생각하면, 50~60년대 냉전 시기를 겪으며 어디는 자본주의가 옳다, 어디는 공산주의가 옳다며 사람들이 풍문에 휩싸여 싸우고 피 흘리는 것을, 그 시대를 관통한 인물로서 너무 슬퍼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진심으로 슬퍼하는 마음으로 토해내듯 소설을 쓰신 것 같다는 말이 영화를 만들 때 도움이 많이 됐다. 나 역시 잘 모르는 공간인 북한을 그리는 것이지 않나. 미디어에서 북한을 소비적으로 쓰는 것처럼 접근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었는데, 최윤구 선생님 말씀을 듣고 결국 창작자의 태도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재현하는 순간 객관성은 잃어버리기 마련이니 남는 건 창작자의 태도뿐이라는 생각을 제작 과정 내내 견지하려 했다. 그런 영향 때문에 제목이 〈광장〉으로 정해진 건 너무 자연스러웠다. 소설도 다시 읽어봤는데 너무 훌륭하다. 최인훈 작가님이 이 소설을 26살에 썼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나의 26살과 비교하면, 그 통찰력으로 폭넓게 시대를 읽고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군대에서 썼다는 것도 대단하고. 서울대 법학과를 나왔는데 그것도 친구들 따라갔다는 말을 하셨으니 내가 봤을 땐 천재셨던 것 같다. 그렇게 조사하면서 최인훈 작가님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봤다. 일산에 사실 적에 아침에 눈을 뜨면 유명한 사람들이 집 앞에 줄을 서고 있었다던가. 작가님의 조언 한마디 들으려고 그렇게까지 했다고 하더라. 최윤구 칼럼니스트님과 조세희 작가님(「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아드님이 친구여서 통화를 할 때 서로 통화음질이 너무 안 좋았다는데, 나중에 최인훈 작가님이 “우리 집 도청이 되고 있어서 그렇다”라고 하셨다는 얘기도 들었다.

영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모티브에 달걀이 있다. 그것도 소설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한데.

소설에 달걀이 나오던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난다. 〈광장〉에서 달걀은 여러 상징성이 있다. 〈광장〉을 하나의 이미지로 형상화하자면 두꺼운 콘크리트 장벽이 있는데, 시간이 오래되어 미세하게 가느다란 실금이 가고 있다. 저렇게 실금이 가는 걸 포착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미세한데, 그 크랙(Crack)이 가는 순간을 포착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결국 불가능의 가능성을 표현하는 영화다. 달걀이 그 상징성을 갖고 있다. 영화 안에서 달걀은 일부러 비논리적인 형태로 등장한다. 보리가 명준의 주머니에 넣어주는데, 사실 겉주머니가 아니라 안주머니에 있다. 창문을 뚫고 들어온 달걀도 날달걀이라면 그렇게 3쿠션으로 맞고 떨어지는 게 불가능한데, 나중에 깨보니 날달걀이다. 삶은 달걀은 생명성을 잃은 상태고 날달걀은 부화의 가능성이 있는 상태인데, 깨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명준이 달걀을 깨면서 확인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장치다. 콘크리트 장벽의 크랙, 유리창이 깨지는 크랙, 계란이 깨지는 크랙. 이 이미지를 계속 일치시키려 했다.

〈광장〉
〈광장〉

한국은 북한과 기존의 관계가 있으니 자료를 찾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인터뷰에서 탈북민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하지만 시각적인 이미지나 생활 문화에 대한 자료는 어떻게 구해서 작품에 녹여냈는지 궁금하다.

1차는 구글링(검색엔진 구글을 활용한 검색), 2차는 인스타그램(Instagram)을 굉장히 많이 활용했다. 스웨덴이나 중국 관광객, 가이드들이 여행객을 모집해서 북한에 들어간다. 그때 찍은 사진들이 주민들의 실제 생활상에 가깝다. 그걸 영화에 직접 묘사하진 않았지만 실제 평양 시민들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굉장한 도움이 됐다. 거리 보수 상태, 가정집 소품, 차량 수준, 자전거와 오토바이, 의복 등을 많이 참고했다. 보면 전기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고, 전체적으로 의복도 알록달록하다. 자료 자체가 노출이 안 되다 보니 계속 파고들어야 접할 수 있는 게 많아 프리 프로덕션에서 한 달 정도 이미지 자료 조사만 모아주는 스태프가 있었다. 그다음엔 말하신 것처럼 오진아 예술감독님께 자문을 구했다. 평양에 계셨던 분이라 아주 디테일한 것들을 여쭤봤다. 예를 들어 군인이 등장하면 견장의 색깔, 계급에 따른 견장 위치, 특기병 표시, 군복색 등등. 이 계급이 국군으로 치면 어느 정도의 계급인지 같은. 특히 언어 자문을 많이 받았다. 그게 큰 도움이 됐다. 평양 말은 서울 말과 거의 비슷하다. 악센트나 옛날 조선시대의 특정 발음들이 살아있어 차이가 있을 뿐이다. 미디어에서 자주 나오던 “했습니까, 했습네다” 같은 말투는 50년대 말이나 쓰던 것이라고 하더라. 오히려 옛날 서울말 같은 느낌에 가깝다. 여담이지만 오진아 감독님도 나처럼 북한말 고문을 구하는 분들이 많아서 일부러 그 말투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미디어에서 북한 말투를 흉내 내는 걸 보면 거부감이 든다.

처음 〈광장〉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오진아 감독님의 반응은 어땠나?

자료 조사를 통해 보리와 복주의 관계를 만들었다. 내국인이 외국인을 만나면 안 된다는 건 자료를 봐도 보인다. 관광객이 북한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면 웬 남자가 와서 떼어놓는다고 한다. 감시원인 거다. 그렇지만 오진아 감독님께 제일 먼저 여쭤본 게 “이게 가능한가요? 만나면 안 되는 거죠?”였다. 이게 안 돼야만 영화를 만들 수 있으니까.(웃음) 감독님 첫 말씀이 “연구 많이 했네, 공부 많이 했네”였다. 사실 자문을 구하러 갔을 때가 영화 공개할 때보다 더 떨렸는데, 그런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나도 너무 무서웠다. 북한이란 세계는 내가 모르는 건데 함부로 그리게 될까봐. 의외로 고친 건 별로 없다. 말투나 대사 정도만 교정해 주셨다. 감독님도 북한 보위부 예술 파트에서 배우 생활을 하시다가 선택받는 입장이 싫어서 감독으로 전향하신 분이다. 한국에서도 영화 세 편 정도 연출하셨고. 창작자를 잘 이해하고 존중해 주셨다.

〈광장〉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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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복주, 보리, 명준

영화를 이끄는 보리, 복주, 명준 세 명의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

스웨덴 대사관의 기사를 통해 보리가, 자료 조사를 통해 복주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두 인물을 만들었지만 이 영화는 외국인이 나오지만 남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합적이었다. 당시 남북한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 「광장」의 영향도 있었고, 이제 북한을 다룰 때 군인이나 특수 요원만 나오지 통일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사라졌지 않나. 그래서 그런 얘기를 다시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봤다. 그래서 북한을 상징하는 명준이 만들어졌다. 보리는 남한, 명준은 북한, 복주는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우리가 만나고 싶어 하거나 이루고 싶어 하는 통일 같은 상징성을 인물로 치환한 것이다. 그렇게 주요 인물 3명을 세팅하니 로맨스의 외피를 쓴, 명준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준비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편견이 없어진 부분도 있나?

그렇다. 북한의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생겼다. 미술과 영화를 해서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는데 북한을 들여다보면서 조금 보수적으로 바뀌기도 했다. 북한이 정말 변하기 힘든 상황이구나 싶었다. 남한에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하게 됐지만, 한편으론 남한에서 아무리 대화를 시도해도 북한 내부의 변화가 없으면 크랙이 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 속 CDP가 중요한 소재다. 내가 생각하는 통일관, 즉 '문화적 침투'를 의미한다. 북한이 문화적 침투를 금지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만들어둔 세계관이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서인데, 탈북민 인터뷰를 해보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한다. 지금 북한의 젊은 세대는 '장마당 세대'라고 불린다. 원래 공산주의라고 하면 생산한 자원을 회수한 후 분배하는 시스템이지 않나. 그러나 이제는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장이 조금씩 활성화됐다고 한다. 이제는 시장을 당국에서 막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런 시장을 장마당이라고 부르고 이 장마당이 자리 잡은 시점의 세대를 장마당 세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 상품뿐만 아니라 미디어와 정보도 유통이 되고 있으니 젊은 세대들은 남한의 미디어 등을 다 안다고 한다.

〈광장〉
〈광장〉

새삼 〈광장〉에서 나오는 시장 장면이 무척 의미가 있었구나 깨닫는다. 우리에겐 시장이란 공간이 익숙하니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다시 편견에 관한 얘기로 돌아가자면,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란 거다. 우리가 미디어에서 보는 북한이면 하나만 실수해도 즉결처분하고, 총살하고 그럴 것 같지만 인간관계로 해결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극중 명준의 상사 진철이 명준에게 처분을 내리는 것도 굉장한 선처다. 보위부 인원들은 관계가 끈끈하기도 하고. 이제 평양이란 도시를 그리는데, 사실 평양은 유럽 같은 곳이다. 한국도 서울과 지방의 인프라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북한 내에서 평양과 타 지역은 차이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또 평양에 거주하려면 출신 성분도 많이 따진단다. 부모님이 뭐 하는지, 혹은 조부모님이 뭘 했는지 그런 걸로 당을 향한 충성심을 따지고 당국에서 직접 거주지를 정해준다. 그러다보니 '평양 추방'이란 처벌이 생긴 것이기도 하고. 이것도 고증한 것이다. 탈북하신 기자님 중에 당에서 나온 수첩이었나 물품을 함부로 관리하다가 평양 추방형을 받았다고 했다. 이런 부분을 알고 진철의 모습을 보면 또 다를 것이다.

배경이 그러니 목소리를 맡아줄 배우들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말투나 어투를 지도하는 과정도 그렇고.

처음 기획할 때부터 성우는 어렵겠다 싶었다. 북한말을 연습해야 하는 것 때문에 해주실 성우님이 있으실까 걱정도 됐고. 그래서 연극 베이스의 발성 훈련이 된 배우를 찾았다. 이제 필름메이커스(영화 제작 관련 구인구직 커뮤니티)에 짧은 스크립트와 구인글을 올렸더니 오디션에 250명 정도 지원했다. 처음엔 남자 배우를 구하려고 올렸는데 250명 중 가장 독보적인 배우가 있었다. 이가영 배우였다. 그래서 바로 복주 역으로 캐스팅했다. 배우 경험이 많은 분은 아니었지만 목소리만으로도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주요 스태프들과 탈북민 관련 영화를 보는데 한 분이 눈에 확 들어왔다. 같이 보던 스태프들도 이 배우 너무 괜찮다 해서 지원자도 아닌데 연락드렸다. 그게 리명준 역 전운종 배우였다. 보리 목소리가 가장 난항이었다. 원래 북한말도 아니고 스웨덴어를 하는 실제 스웨덴 사람을 구하려고 했다. 그런데 영화를 준비하던 시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해 웬만한 외국인들은 다 자국으로 돌아간 상황이었다. 그래도 구해보자 싶어 외국인 구인 사이트에 글을 올려보니 이케아 직원, LG 엔지니어 등 일반인들이 샘플을 보내주셨다. 너무 감사했지만 샘플을 들어보니 배우로 마음이 굳어졌다. 보리를 한국어 구사자로 바꾼 후 배우를 찾던 중 서울독립영화제 배우 프로젝트를 보다가 이찬용 배우를 보고 캐스팅했다. 북한말은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3개월은 해야 얼추 비슷하게 들린다는 오진아 감독님의 말에 따라 배우들이 착실하게 준비했다. 오진아 감독님이 중간중간 대사를 녹음해서 주시면 배우들이 개인 연습으로 준비했다.

성찬얼 어제 시사회를 봤는데 사운드가 좀 독특했다. 특정 장면에서 사운드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명준이 자기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물속에 잠긴 듯 답답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앰비언스를 뺐다. 진공 상태 같은 느낌을 주려 했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이 바뀌는 시점이다.

〈광장〉
〈광장〉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있었는지

깨진 창문으로 카메라가 넘어가면서 눈이 딱 정지하는 컷이다. 영화 속 눈은 직접 그린 건 아니고 물리 엔진을 썼는데 눈이 계속 내리게 세팅된 엔진이라 연출을 위해 그렇게 정지시키면 눈 알갱이 하나가 자꾸 튀거나 사라졌다. 그걸 없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41번인가 계속 시도했던 기억이 난다. 인물들이 자전거 타고 가는 장면도 각도가 그리기 어려워서 힘들었다.

자전거를 타는 장면 중 명준이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이 내가 생각하는 클라이맥스다. 보신 분들은 지하철 신을 뽑으실 것 같지만 나는 거기다. 명준이 자유를 느끼게 만드는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 사실 그 장면에서 눈에서 별로 이미지가 이어지는 연출이 있는데, 원래는 눈 알갱이 하나하나가 다 별빛으로 바뀌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연출로 풀었다. 보리가 심적으로 무너지는 장면은 스타일이 무척 다른데 실제로 다른 작가님이 작업하셨다. 같이 작업한 오유진 감독이 서양화 전공이라 주변 작가분께 부탁드렸다. 아무래도 한정된 예산에서 완성해야 했기에 힘을 줄 수 있는 부분을 힘을 줬다. 사실 돈보다는 시간의 문제이기도 해서 시간을 쏟아야 하는 장면에 쏟자 생각했다. 오유진 감독이 좋아하는 〈진격의 거인〉을 예시로 들자면,(웃음) 그것도 대화 장면과 액션 장면에서 액션 장면에 확실히 돈을 많이 쓴 것이 보인다.

5년이 걸렸다. 돌이켜보니 그 5년이 딱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 시작됐다. 외로움이란 영화 소재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그건 아니다. 5년이 걸린 건 중간중간 제작비를 조달해야 해서 작업을 멈췄기 때문이다. 외주 작업을 해서 돈을 벌어 스태프 인건비를 확보하고. 그런 식이었다. 중간에 오유진 감독의 단편 작업도 하느라 멈췄던 것도 있다. 사실 돈만 있으면 돈으로 시간을 치환할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다작을 하고 싶은데 〈광장〉이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그렇다면 지금 다음 작품 계획은?

세 자매가 광화문 광장에서 귀신이랑 싸우는 이야기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아니다.(웃음) 역시 애니메이션으로 할 생각이다. 실사로 하기 힘든 것도 있지만 이번에 쌓은 노하우로 애니메이션 파이프라인과 제작 시스템을 구축해 보고 싶다. 실사는 기술 스태프가 작품마다 바로바로 투입될 수 있다. 애니메이션은 다르다. 제작사마다 다르겠지만. 〈이별에 필요한〉 한지원 감독님과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한지원 감독님은 본인 팀과 외부 제작사를 같이 운용하시더라. 그래서 난도가 있거나 소통이 많이 필요한 장면은 팀에서 해결하고 속도가 중요한 장면은 외부 제작팀을 하고. 이런 식으로 우리 역시 앞으로 모였다 흩어졌다 할 수 있지만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장〉
〈광장〉

영화를 보다가 마지막 지점에서 혹시 다른 엔딩을 생각하신 적이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다른 옵션은 없었다. 이 영화는 무조건 긍정적으로 끝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명준이 보는 장면이 사족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렇지만 판타지로나마 긍정적으로 끝내고 싶었다. 명준이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러면서 동시에 명준의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광장〉을 찾아올 관객들에게 인사를 부탁한다.

추운 겨울 연인들이 보기 좋은 영화다. 로맨스 영화인 줄 알았는데 보다 보면 끌리는 인물이 하나 더 생길 거다. 그 인물이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 모든 영화에 해당하는 말이지만(웃음) 큰 스크린을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니, 극장에서 보고 감흥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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