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 크로닌의 미이라〉을 보면서, 죽어버린 〈미이라〉 시리즈도 살려내는 제작사 블룸하우스의 미친 괴력을 느낄 수 있었다. 배우 보리스 칼로프의 카리스마에 힘입은 최초의 〈미이라〉(1932)는 이른바 ‘유니버셜 호러’의 대표작이었다. 이후 브랜던 프레이저의 〈미이라〉(1999)와 〈미이라2〉(2001), 급기야 이연걸과 양자경까지 끌어들인 〈미이라3: 황제의 무덤〉(2008), 그리고 이를 리부트한 톰 크루즈의 〈미이라〉(2017)까지 〈미이라〉 시리즈는 그저 그런 ‘오락 블록버스터’의 대명사였다.

장편 데뷔작 〈홀 인 더 그라운드〉(2019)로 팡고리아 체인소 어워즈에서 최우수 신인감독상을 수상하고, 샘 레이미 감독이 직접 ‘픽’하여 〈이블 데드〉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인 〈이블 데드 라이즈〉(2023)를 연출한 바 있는 리 크로닌 감독은 〈엑소시스트〉(1973)를 모티브 삼아 〈유전〉(2018)까지 한 스푼 더해, 1분 1초도 한눈팔 수 없는 정통 B급 호러의 향연을 펼쳐낸다. 신체훼손과 사지절단 등 하드고어의 수위가 높아서 134분이 누군가에겐 천국일 테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반대일 것이다. 즉, 리 크로닌과 블룸하우스는 오래전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고전 IP와도 다르게, 그리고 대중에게 익숙한 오락 블록버스터의 길과도 다르게, 그저 그들만의 화법과 스타일로 2시간 넘게 몰아붙인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이더스〉 시리즈, 혹은 그가 제작을 맡아 코넌 도일의 추리소설 「셜록 홈즈」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는 발상에서 출발한 베리 레빈슨 감독 〈피라미드의 공포〉(원제: Young Sherlock Holmes, 1985)가 그랬던 것처럼,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등장하면 언제나 빠지지 않는 게 바로 전갈이다. 〈리 크로닌의 미이라〉도 기존 〈미이라〉 시리즈와 완전히 톤앤매너를 달리 하면서도 그 ‘전갈의 공포’는 외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목이 길어 슬픈 짐승 기린처럼 전갈은 독이 있어 슬픈 짐승이다. 단지 독을 지녔다는 이유로 피라미드의 이집트를 비롯해 사막 지대가 등장하는 수많은 공포영화에서 전갈은 ‘악령의 메신저’처럼 등장했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무려 고생대 실루리아기에 등장한 전갈은 절지동물로서, 거미강 전갈목(Scorpiones)에 속하는 모든 종들을 통틀어 이르는 명칭이다. 큰 집게발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얼핏 보기에는 가재나 바닷가재와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머리가 작고 맹독을 지녔다는 이유로 지금과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됐을 것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시리즈의 자상하고 다정한 바닷가재 세바스찬과 비교해보라(물론 많은 이들이 바닷가재로 잘못 알고 있는 세바스찬의 정확한 종 이름이 ‘트리니다드 게’라고 하지만 어쨌건).


전갈이 가장 먼저 거대 괴물로 등장한 영화는 무려 1957년 영화 〈블랙 스콜피온〉이다. 화산 폭발로 인해 지하에 잠들어 있던 거대 전갈들이 깨어나 도시를 습격한다는 내용으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전갈의 움직임이 놀라웠다. 탱크와 맞서 싸우고 헬리콥터의 양끝을 집게발로 콕 집는 거대 전갈이라니. 이후 한참 세월이 흘러 〈미이라〉 시리즈의 스핀오프 작품으로 드웨인 존슨 주연 〈스콜피온 킹〉(2002)이 만들어졌다.


홍콩영화로 가면 그 특유의 모양과 움직임으로 인해 꽤 큰 영감을 불어넣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킬 빌〉 시리즈를 만들며 설정을 그대로 가져간 영화인 장철 감독 〈오독〉(The Five Venoms, 1978)이라는 영화가 있다. ‘오독문’이라는 문파에는 다섯 명의 무술 고수가 있는데 각각 지네, 뱀, 전갈, 도마뱀, 두꺼비 권법을 연마했고 신분을 숨긴 채 세상에 나가 살고 있다.


전갈권법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바로 한국 액션 배우 원진이 출연해 전갈의 움직임을 그대로 묘사해 만든 골든하베스트 제작 〈가자왕〉(Operation Scorpio, 1992)이다. 〈귀천도〉(1996), 〈조폭마누라〉(2001) 등의 무술감독을 맡고 〈용의자〉(2013), 〈검치호〉(2022) 등에서도 멋진 액션 연기를 선보인 바 있는 그는 한때 홍콩과 한국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 〈가자왕〉에서 전갈처럼 다리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화려한 발차기 액션을 구사한다.


문득 전갈을 떠올리게 된 계기는, 지난 4월 16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 시즌2를 보면서다. 리조트를 관리하며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며 싸우는 조시(오스카 아이작)와 린지(캐리 멀리건) 부부를 보며, 그들이 15년 전 역시 부부로 출연한 영화 〈드라이브〉(2011)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사이드 르윈〉(2013)에서도 연인으로 출연했던 그들이 15년 만에 다시 부부로 만났다는 사실이 묘했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 〈드라이브〉에서 이웃 사이인 한 남자(라이언 고슬링)와 아이가 하나 있는 아이린(캐리 멀리건)이 애틋한 감정을 키워가던 중, 교도소에 있던 아이린의 남편 스탠다드(오스카 아이작)이 출소하며 묘한 관계가 형성된다. 범죄 조직 사이에서 프리랜서 드라이버로 활동하던 그 이름없는 남자는 아이린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물론 영화 〈드라이브〉에 직접 전갈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라이언 고슬링은 등에 커다란 황금전갈이 수놓아진 재킷을 입고 나온다. 영화속 그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있어 한없이 어울리는 동물이었다. 〈드라이브〉의 장도리 신을 두고 박찬욱 감독 〈올드보이〉(2003)의 영향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장도리가 마치 전갈의 집게발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드라이브〉의 전갈 재킷은 영화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었으나 이를 구매하고자 하는 팬들이 많아, 그나마 가까운 재질과 형태로 제작되어 아마존에서 ‘Ryan Gosling Scorpion Jacket’라는 이름으로 판매 중이다.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