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태어나 유년을 보냈고, 무자헤딘이 고국을 장악하자 목숨을 걸고 도망쳤다. 가족은 모두 죽었으며, 홀로 미성년 난민 신분으로 덴마크에 정착했다. 동급생들 사이에선 그가 아프가니스탄에서부터 걸어서 탈출한 거라는 소문도 돌았다. 최대한 말을 아끼고 살아왔다는 그의 이름은 아민, <나의 집은 어디인가>의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덴마크 출신 영화감독 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이 그의 오랜 친구 아민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과 기록 영상으로 재구성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다. 둘의 우정은 20년을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유지됐지만, 그렇다고 영화 제작이 수월했던 건 아니다. 끔찍한 기억을 삼킨 채 살아온 아민에게는 과거를 말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큰 어려움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아민이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 털어놓은 때로부터 꼬박 8년이 지나서야 완성될 수 있었다.
영화는 현재 시점에서 출발한다. 편안하게 누운 아민의 얼굴을 카메라 한 대가 정면에서 찍고 있다. 인터뷰 현장이다. 어둑한 방 안에는 아민과 감독 둘뿐이다. “너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 것 같아?” “네 얘기를 남에게 해본 적 있어?” 상담 치료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와 질문들로 인터뷰가 시작되면, 아민이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영화는 멈칫거리고 회피하며 뭉뚱그리는 그를 따라 불균질한 기억을 여행한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고 있던 1980년대부터 피난민들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유럽 전역으로 흩어졌던 1990년대까지 10여 년의 기간을 조명하면서, 소년 아민이 역사의 풍랑에 휩쓸리며 남들보다 빨리 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들여다본다.
부유하진 않지만 다복한 가정의 막내아들인 아민은 누나들의 원피스를 입고 거리에 나가는 걸 좋아하는 소년이다.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팝 음악을 들으며 마음껏 놀다 집에 들어가면 머리가 희끗희끗한 엄마와 형, 누나들이 반겨준다. 이것이 어른이 된 아민이 떠올리는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그의 기억 속에는 처음부터 아버지가 없다. 내전 중 정부에 의해 3천 명이나 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체포됐고, 감옥에서 행방불명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족들은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서로 보살피며 정답게 지내왔다. 하지만 유년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소련군이 철수한 1989년, 아민의 가족이 살던 카불은 탈레반에게 공격받으며 함락될 위기에 놓인다. 전쟁을 피해 도망가야만 한다. 아민은 이때 처음 집을 떠난다. 그가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 머물러도 되는 곳, 임시적이지 않은 곳”을 다시 찾는 건, 그로부터 훨씬 오랜 후의 일이다.
피난길의 고난은 범박한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쫓기듯 올라탄 비행기로 모스크바에 도착하지만, 막 공산주의가 붕괴한 소련의 모습은 아비규환이나 다름없다. 모두가 굶주리고 있는 그곳에서 아민의 가족은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되어 유럽으로 떠날 날만 숨죽여 기다린다. 살기 위해 떠나는 것인데, 가족의 탈출기는 죽음과 더 가깝다. 그들은 다른 난민들과 함께 작은 컨테이너에 갇혀 바다를 건너고, 혹독한 겨울 숲을 끝없이 걷는다. 가까스로 탄 밀항선이 발각되어 수용소에 갇힌다. 그 과정에서 아민은 인간성의 바닥을 본다. 끝없는 무기력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힘겹게 당시의 기억을 꺼내놓는 현재의 그의 말속에서, 놀랍게도 “가족이 모두 죽었다”는 진술이 실은 거짓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안전하게 망명하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이후로도 쭉 비밀을 감춘 채 살아왔다. 영화는 이처럼 아민의 말하기를 끌어내며, 비밀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감춰진 진실을 길어 올리는 도구가 된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아민에게 “현재와 과거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다. 물론 그 연결을 전적으로 긍정적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수도 있다. 참혹한 과거, “우리가 살던 미친 인생”은 아민의 현재에 지속해서 영향을 주어 그를 움츠리게 했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그는 온전히 편치는 않은 모습이다. 어린 나이에 피난을 갔던 경험은 그를 누구도 마음 편히 믿지 못하게 했고, 모든 감정을 담아두고 억누르게 했다. 하지만 아민은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놓으며 그제야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조금씩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고향을 잃은 난민으로서 줄곧 과거를 숨기기 위해 애썼고 그로부터 도망치고자 노력했던 그는, 역사의 횡포와 비극의 화염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오히려 자신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얻는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정체성에 관한 탐구이기도 하다. “나답게 살 수가 없었어. 너무 고통스러웠지.”라는 아민의 말처럼, 머물지 못하고 떠도는 이들에게 정체성을 찾는 일은 유달리 크고 무거운 과제다. 영화는 자신이 ‘알맞은 곳’에 있지 않다고 여기는 감각을 예민하게 구현하면서, 아민의 일상적 순간을 통해 관념적인 난민의 이미지를 돌파한다. 한편, 영화에는 아민의 성적 지향 역시 드러나 있다. 영화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현재와 아민이 회상하는 과거가 계속해서 교차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는데, 현재의 그는 동성 연인과의 결혼을 꿈꾸며 둘이 함께 살 집을 알아보는 중이다. 어려서부터 장 클로드 반담의 남성미에 반했고, 함께 러시아를 탈출했던 청년에게 섹시함을 느꼈던 아민의 성적 지향 탐험기는 어둠이 많은 영화에서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담당한다. 아민이 처음으로 게이 클럽에 발을 들이는 순간은 예상치 못한 감동을 선사하는 잊지 못할 대목이다.
애니메이션을 택한 첫 번째 이유로 라스무센 감독은 익명성을 꼽았다.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운 주인공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의 주관적 경험과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하는 적절한 수단이 된다. 감독은 “현실적으로 보이려는 게 아니다. 애니메이션은 솔직해지는 데 도움이 된다.”며 영화가 지향하는 시각적 스타일에 관해 말한 바 있다. 특히 거친 선으로 쓱쓱 그려진 피난 행렬과 악몽을 구현한 듯한 그림들은 애니메이션의 표현력을 적절히 사용한 예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푸티지, 실사 영상의 점프 컷을 흉내 낸 편집 등을 통해 자신이 다큐멘터리 계열에 속한 작품이라는 것을 드러내려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창작자와 대상의 관계, 영화로 인한 대상의 변화 등을 세심하게 반영한 결과물이라는 측면에서 독창적 다큐멘터리라고 불러도 무방하고 충분하다.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으며, 지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비롯해 3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리버스 reversemedia.co.kr
글 손시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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