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는 한파에 움츠러든 마음을 따스히 보듬을 영화다. 뭐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도심에서의 삶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의 이야기를 담았다. “배가 고파서”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혜원은 직접 키운 농작물로 정성스레 밥을 지어먹으며 사계절을 보낸다. 그곳에서 온전히 제 자신과 마주하고, 마음 깊은 곳 침체되어 있던 것들을 느끼며 새로운 싹을 틔운다.

‘김태리의 삼시세끼’, ‘태리네 민박’ 등 개봉 전부터 가지각색 별명을 지녔던 <리틀 포레스트>는 온전히 ‘김태리의 영화’다. 선배들 사이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과시했던 <아가씨>, <1987>과 달리, <리틀 포레스트>는 그녀만의 힘으로 끌어가야 했던 영화라 의미가 더 남달랐을 터. 영화 속 혜원처럼 한 뼘 성장한 김태리를 만나 <리틀 포레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태리와 똑 닮은 캐릭터

‘혜원’

<리틀 포레스트>는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만화 <리틀 포레스트>를 원작으로 한다. 2014년 일본에서 동명의 제목으로 스크린화된 작품이기도 하다. 전작 <아가씨>에서와 같이, 원작 속 캐릭터를 그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김태리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리틀 포레스트> 시나리오를 읽기 전 원작 만화책부터 먼저 읽었어요. 원작이 있다면 원작을 먼저 보는 편이지만, 원작 속 캐릭터를 똑같이 따라가려고 노력하진 않아요.”

그녀의 말처럼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김태리만이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 혜원을 만나볼 수 있다. 원작 속 ‘이치코’보다 다부진 면모를 지닌 혜원은 임순례 감독과 김태리가 직접 함께 만들어나간 캐릭터라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 혜원이 지닌 고민, 고향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혜원의 서울 생활들을 많이 상상해봤다는 그녀는 혜원을 본인의 실제 모습과 가장 닮은 캐릭터로 꼽았다.

“혜원을 연기하며 가장 중점을 뒀던 건 자연스러움이었어요. 일상을 연기하자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기 때문에 제 모습이 많이 들어갔을 것 같아요.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은 저니까. 그래서 저와 많이 닮아있지 않을까요?”

만화 <리틀 포레스트> / 일본 <리틀 포레스트> / 한국 <리틀 포레스트>


사계절 내내

<리틀 포레스트>와 함께하다

<리틀 포레스트>는 네 번의 크랭크인과 네 번의 크랭크업을 거쳤다. 꼬박 1년의 촬영 기간을 거친 <리틀 포레스트>엔 보다 선명한 혜원의 사계절이 담겼다. 일정 기간을 정해두고 촬영에 임하는 보통의 현장과는 확연히 다른 환경. 매 계절마다 다시 캐릭터와 촬영 현장에 동화돼야 하는 어려움이 따랐다.

“계절마다 적응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긴 했어요. <리틀 포레스트>를 촬영하는 동안 촬영장에서 쭉 지냈는데, 시골에 고립되어 있다 보니 적응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웃음)”

동시에 매 계절의 한가운데에서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조우했던 기억은 김태리에게 더욱 확장된 <리틀 포레스트>를 남겼다. 영화를 보면서는 스크린 속 장면뿐만 아니라 스크린 밖 풍경까지 확장되어 보였다고.

“영화 속 모든 장면이 특별했어요. 사계절이 주는 느낌, 사계절마다 다시 만나는 배우와 스태프들…, 영화의 모든 장면들이 정말 다 확장되어 보이는 거예요. 카메라 주변, 감독님, 스태프 분들이 다 떠올라서 영화를 더 좋게 본 것 같아요(웃음).”

1년이 담긴 촬영 현장은 소소한 추억도 많이 남겼다. 촬영 초반엔 스태프들과 함께 ‘장작 패기’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고. “(장작 패는 게) 요령만 파악하면 되게 쉽거든요” 가볍게 장작 패기 모션을 취하며 와하하 웃던 김태리는 실제로 촬영장에서 장작 패기 에이스로 꼽혔다. 연출팀과 제작부가 정성스레 숙성시킨 장작이 소비될까, 직접 혜원의 집 뒤편에 마련된 작은 밭에서 장작 패기를 연습했다고.

뿐만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감자, 고추, 토마토 등 작물을 키우는 과정에도 직접 참여했다. 뚝딱뚝딱 체화된 듯 농사를 짓는 혜원이지만, 알고 보면 김태리는 서울 토박이. 1년 내내 고향에서 지낸 혜원의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선 계절별로 의상과 헤어에 차별을 뒀다. 청바지를 입다 몸뻬 바지를 입은 혜원의 모습으로 “점점 편안함을 찾아가는” 모습을 비췄고, 계절별로 다른 높이로 묶은 헤어스타일을 선보이며 혜원의 변화를 표현했다.


<리틀 포레스트>의 핵심 키워드,

‘음식’ 그리고 ‘엄마’

혜원이 고향에서 보내는 1년은 자신을 두고 홀연히 떠난 엄마를 이해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혜원은 엄마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요리를 하고, 음식을 먹으며 구체적이지 않은 고민으로 들뜬 마음을 잠재운다. 요리를 좋아하고 그와 가까이 지내온 혜원을 연기하기 위해 김태리는 “어느 정도 능숙해 보여야 한다는 점에 가장 중점을 뒀다. 촬영 전 푸드 스타일리스트팀과 함께 직접 영화 속 음식을 만들었고, 레시피를 외우기보단 전문가들의 손동작과 같은 디테일을 유심히 살폈다.

영화 속에서 그녀가 가장 부담스러워했던 장면도, 가장 좋아하는 장면도 음식과 관련된 것. 고향으로 막 내려온 혜원은 스스럼없이 눈밭을 헤쳐 텃밭의 배추를 뜯고, 한줌 남은 쌀로 밥을 짓는다. 끓는 물에 된장을 풀어 휘휘 저어 배추된장국을 만든 혜원은 단출하게 차려진 한상을 후루룩 비운 뒤 바닥에 드러눕는다. 스크린 속 혜원은 늘 그래왔다는 듯 자연스럽지만, 그를 연기하는 김태리에겐 가장 부담스러운 장면이었다. 집밥을 먹는 행위만으로 고향에 내려온 혜원의 복잡한 속내를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했던 것. 맛있게 먹는 연기도 고심해야 했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간단했다. “그냥 먹는 것.”

“어떤 인터뷰에서 정우 선배님이 ‘먹방을 잘하는 비결이요? 그냥 먹는 것 같아요’라 하신 적이 있는데, 저도 그냥 먹었어요. <리틀 포레스트> 속 음식들이 모두 맛있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아달란 질문엔 긴 고민 없이 ‘고등학생 혜원이 엄마와 함께 토마토를 먹는 장면’을 꼽았다.

“대사 하나, 표정 하나, 작은 디테일이 굉장히 많은 것을 설명할 때, 그게 좋은 대사, 좋은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토마토 장면’은 어떤 방점같이 엄마와 혜원의 관계를 선명하게 그려내요. 엄마와 혜원이 주고받는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많은 텍스트가 읽히죠. 그런 점이 좋았어요.”

혜원을 연기하며 가장 깊게 탐구한 대목도 엄마와의 관계였다. 처음엔 혜원을 두고 떠난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느 순간부턴 혜원의 삶에 엄마의 삶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고. 엄마의 대사는 그녀에게 큰 위로로 닿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턴 엄마가 늘 말하던, ‘모든 것은 타이밍’이란 말에 완전히 공감할 수 있었어요. 영화의 후반부, 엄마가 혜원에게 쓴 편지를 읽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김태리와 혜원이 완전히 겹쳐진 순간이다.


나만의 답을 찾아서

김태리는 <리틀 포레스트>의 어떤 점에 매료됐을까. “실패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요. 혜원이 고향에서 보내는 사계절이 누군가에겐 ‘낙오된 순간’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사실 혜원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어요. 생각을 조금만 달리해보면 실패는 실패가 아니에요. 고통받고 있는 순간도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거죠. ‘아주심기’하는 과정일 수도 있는 거고요.” 겨울을 겪은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 더 달고 단단하게 여물어진다는, ‘아주심기’ 내레이션은 <리틀 포레스트>가 전하는 위로의 핵심이다.

김태리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리틀 포레스트>로 스크린 원톱에 도전하고, <미스터 션샤인>으로 드라마 신고식을 치르는 김태리의 올해 목표는 ‘더 단단해지는 것’이다. “연기를 하는 게 늘 재미있었는데,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좋은 작품과 좋은 배우들이 너무 많고, 그를 보며 연기에 대한 이상은 높아져가는데 제 성장은 더디고….” 제 고민에 대한 답을 천천히 짚어가는 혜원처럼, 그녀 역시 배우로서 고민 어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작품 선택을 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제 신념과 가치 판단이 중요하다”는 대답에선 스스로를 굳건히 믿는 뚝심이 느껴진다. 앞으로 만날 작품과 캐릭터에 대해 “모든 것을 열어놓고 생각 중”이라는 김태리. 작품마다 눈에 띄게 성장한 모습을 보이는 이 배우의 무궁무진할 세계가 궁금해진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유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