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엔 많은 약속을 하고 다녔다. ‘이 사람만을 영원히 사랑할거야’, ‘이번엔 진짜야’. 그 약속을 했던 과거의 ‘나’들은 지금 어디쯤을 헤매고 있을까. 약속했을 땐 진심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그 약속들은 지나가는 말이 되어 버렸다. 영원할 거라 생각했던 사랑과도 언젠가는 이별을 한다. 그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잘 지내다가도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이별의 고통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오늘은 이별 많이 해 본 인턴 기자가 이별 후 보기 좋은 영화 5편을 소개한다. 이별의 순간이 반복 재생되는 사람들은 영화로 펑펑 울고 털어 내는 시늉이라도 해보자. 혹시 모른다, 기분이 정말로 나아질지.
처음부터 혼자였다면 외로움을 몰랐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 온기를 나눈 순간 사람은 외로움을 배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에서 이별을 직감한 조제는 츠네오에게 “딱히 외롭지는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단지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야. 난 다시 그 장소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언젠가 네가 떠나고 나면, 길 잃은 조개처럼 혼자서 바다 밑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게 되겠지. 그것도, 나쁘지 않아”라고 말한다.
동정이 아닌 사랑이었기 때문에 츠네오는 이별을 택했고, 조제 역시 사랑했기 때문에 이별을 받아들였다. 사랑했던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진실했다. 그렇기에 충분히 아파한 뒤, 추스른다. 조제는 츠네오와의 만남을 통해 변한다. 이전까지 매번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던 그는 이별 후 깨끗해진 방 안에서 자신을 위해 요리한다. 츠네오는 떠났지만 조제의 인생이 끝난 건 아니다. 그와 했던 사랑을 통해 장애인이 아닌 인간으로서 살게 된 조제는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알게 된다. 좋은 사랑을 했다면 어느샌가 자신도 좋은 사람이 되어 있다. 충분히 사랑했다면 조제처럼 스스로를 돌볼 차례다.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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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누도 잇신
출연 츠마부키 사토시, 이케와키 치즈루, 아라이 히로후미, 우에노 주리
개봉 2004.10.29. 2016.03.17. 재개봉
<이터널 선샤인>은 전혀 다른 두 남녀가 서로 사랑에 빠졌다가 이별하고, 서로를 잊고, 그럼에도 다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조엘에게 클레멘타인은 너무 경박하고 버거운 여자였고 클레멘타인에게 조엘은 너무 지루하고 잔소리가 심한 남자였다. 이 둘은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로 한다. 헤어질 땐 미친 듯이 싫었어도 사랑했을 땐 그 모습이 좋았을 것이다. 경박스러운 말투도 활기차 보였을 것이고 지저분한 머리도 개성 있게 보였을 것이다. 조엘은 몇 가지 안 좋은 기억에 가려져 있던 자신의 사랑에 대해 깨닫는다.
많은 연인들이 과거를 깨끗이 지우고 싶어한다. ‘과거로 돌아가 그를 만나지 않고 싶어’라며 지난날들을 후회한다. 그러나 나쁜 기억들을 조금 치우고 나면 빛났던 두 사람이 있다. 결국 과거로 돌아가도 다시금 그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끝을 알지만 그 과정을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에 한 번 더 믿고 싶어진다. 추억이 사라지게 돼 어떡하냐고 묻는 조엘에게 클레멘타인은 ‘그냥 음미하자’라고 답한다. 잊겠다고 발버둥 치고, 잊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고, 결국엔 추억에 작별 인사를 건네는 게 이별이다.
- 이터널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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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미셸 공드리
출연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개봉 2005.11.10. 2015.11.05. 재개봉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 단숨에 빠져들고 모든 걸 희생하고 영원히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연인은 드물다. 대부분의 연인들이 평범하게 호감을 느껴서 사랑을 하고 다투고 결국엔 이별한다. <블루 발렌타인>은 널리고 널린 연인들의 사랑을 포장하지 않고 보여준다. 사랑했던 추억 때문에 아직 이별을 하지 못하고 힘들어만 하고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너무 잔인한 처방전일 수도 있지만,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엔 오히려 자신과 비슷한 이야기가 위로를 줄 수도 있는 법이다.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딘은 낭만적이지만 어린 아이같다. 누구보다 사랑을 원하는 신디는 슬프게도 현실적이다.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이 둘은 서로의 다른 점을 보고 사랑에 빠졌지만 수많은 커플처럼 현실에 지쳐버렸다. 많은 사랑을 줬지만 받질 않는 신디에게 지친 딘, 안정적인 삶을 원했지만 사랑‘만’ 주는 딘에게 지친 신디. 연애는 결코 사랑만으로 되지 않음을 영화는 잔인하게 보여준다. 안정적인 연애는 사랑을 유지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디와 딘은 잘못하지 않았다. 다만 이 사실을 알기엔 아직 어렸을 뿐이다. 정말로,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 블루 발렌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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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데릭 시엔프랜스
출연 라이언 고슬링, 미셸 윌리엄스
개봉 2012.05.31.
오래된 연인일수록 완벽하게 이별하기 어렵다. 그간의 정도 있고, 단순히 연인이라기보단 친구, 가족과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별을 한다 해도 자꾸만 지지부진하게 관계를 이어나가게 된다. <러브, 비하인드>는 로맨틱 코미디지만 기존의 로코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주인공 셀레스티와 제시는 부부이기 전에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 때문에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중에도 여전히 연인처럼 행동한다. 셀레스티는 이성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제시를 사랑은 하지만 그와의 미래는 불안정하다고 생각해 먼저 이별을 꺼냈다. 그는 제시와 헤어지긴 했지만 그가 없는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제시가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갖게 된다.
영화는 셀레스티의 성장에 주목하고 있다. 제시와의 관계가 무너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는 아이가 생겼다는 제시의 말에 큰 충격을 받는다. 현실적으로 연애를 보던 그는 드디어 자신이 제시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흔한 로코였다면 이제 서로의 소중함을 확인하고 재결합 하겠지만 <러브, 비하인드>는 그러기엔 너무 현실적이다. 이별은 그 사람 없는 인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어렵고, 서러운 것이다. 만약 오래된 연인과 이별을 해 그 사람 없는 인생을 감당하기 어려운 이라면 <러브, 비하인드>를 추천한다.
- 러브,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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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리 톨랜드 크리거
출연 라시다 존스, 앤디 샘버그, 일라이저 우드
개봉 2014.08.14.
<500일의 썸머>은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톰과 사랑 자체를 믿지 않는 썸머가 만나 서로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이야기로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하느냐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 있는 영화다. 톰은 우연히 썸머를 만나게 되고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다. 자신의 취향을 이해해주는 썸머가 운명의 상대라고 믿는 톰은 썸머에게 열심히 구애를 하지만 썸머는 사랑 같은 건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서로의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한 채 시작하게 된 둘의 관계가 끝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톰은 자신과 할 것(!) 다 해놓고 친구라고 말하는 썸머를 원망했다. 썸머는 자신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 톰을 보며 사랑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누군가’의 ‘뭔가’가 되는 것이 편하지 않다고 말한 썸머는 어쩌면 열렬한 사랑보다 이해와 존중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톰은 그걸 이해하기엔 너무 서툴렀다. 여유가 없던 그는 오로지 사랑을 퍼주는 것 외엔 할 줄 몰랐다. 이별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욕하고, 지질하게 굴었던 톰은 결국 썸머의 행복을 빌어주며 조금쯤 성장한다. 사랑은 계절처럼 흘러간다. 지금은 이별에 구차하게 굴고 있는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더 나은 모습으로 사랑을 한다. 뜨겁기만 하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듯이 말이다.
- 500일의 썸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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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크 웹
출연 조셉 고든 레빗, 주이 디샤넬
개봉 2010.01.21. 2016.06.29. 재개봉
씨네플레이 김명재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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