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어른이 되어 돌아보면 꼭 그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겠지만 살얼음판같이 위태롭고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불공평한 세상에 홀로 선 지금은 절대 알 수 없는 일이다.
광호(정재광)는 포기할 수 없는 하나만 붙들고 살아왔다. 그게 바로 야구다. 그런데 실력을 인정받고 당당히 프로구단과 계약할 줄 알았던 광호는 드래프트에 탈락했다. 신고선수 제안을 거부하고 드래프트에 임했던 광호는 이제 야구를 그만둬야 할까 봐 다급해졌다. 대학팀으로 진학해 야구를 계속하며 다시 프로구단에 도전하려 하지만 이마저도 많은 난관에 부딪히고 급기야 광호는 위험한 일에까지 가담하게 된다.
배우 정재광은 광호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과연 어떤 마음이 광호를 극단적인 상황까지 끌고 갔는지에 집중했다고 한다. 광호처럼 훈련하고 광호처럼 먹으며 손에 박힌 굳은살이 자신의 것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는 정재광의 말에 진심과 애정이 느껴졌다.
지난 5월 24일 언론시사 직후 만난 정재광 배우와의 대화를 전한다
전주국제영화제 배우상 수상 축하한다. 많은 분들의 축하 인사가 있었겠다.
너무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셨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 더 실감이 안 난다. 아직 트로피가 집에 안 왔다. (웃음) 만져만 봐서 그런지 아직 현실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정곤 감독이 정재광 배우를 생각하며 <낫아웃>을 구상했다 들었다.
2016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내가 출연한 <수난이대>라는 단편영화를 보시고 뒤풀이날 야구 관련된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제작을 하게 된다면 나와 함께 하자고 하시더라. 당시엔 그냥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런데 4년 동안 연락 없이 지내다가 갑자기 감독님이 본인 결혼 소식을 알려왔다. 언제 하시냐 물었더니 당장 내일이라고 하셨다. 알겠다고 말씀드리고 축하의 말씀을 전했는데 문득 우리집으로 찾아오시겠다고 하더라. 원래 청첩장을 집으로 직접 가지고 오시나 의외였는데 만났더니 시나리오를 쓱 주셨다. 4년 전 내가 했던 말 기억하냐고 하시며 지금 투자받았으니 같이 하자고 하셨다. 시나리오를 직접 대면해서 처음 받아봤다. 마치 프러포즈 받는 기분이 들 만큼 행복하고 감사했고 감동적이었다.
흔쾌히 승낙했나.
거절할 수가 없지 않나. 결혼식 전날 와서 시나리오를 주는데 어떻게 하기 싫다고 하겠나. (웃음)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초고엔 100신이 넘더라.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내가 이 산을 넘어야 그릇이 넓은 배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결정했다. <버티고>(2018)가 끝난 시점이라 여러 드라마의 섭외가 들어왔었다. 삭발을 하고 태닝에 증량까지 해야 하니까 회사 입장에서는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흔쾌히 나를 믿고 응원해 주셔서 잘 촬영할 수 있었다.
야구 선수 역할이다. 평소 야구에 관심이 있었나.
전혀 없었다. 관심도 없고 보지도 않아 룰조차 몰랐다. 내가 예전에 <스카우팅 리포트>(2015)라는 단편으로 야구 영화를 찍었지만 그때는 그냥 흉내내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낫아웃>을 통해서 그나마 보는 재미는 생긴 것 같다.
정재광 배우가 연기한 광호는 야구 유망주다. 무엇보다 야구 연습이 제일 중요했겠다.
전국 고교야구대회를 보러 다니며 내가 상상하는 인물과 맞닿는 친구를 찾아봤다. 그러다 어떤 한 선수를 발견했는데 상대팀 선수를 관찰하고 있는 눈빛이 에너지가 넘치고 절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실력도 좋고 근육도 커서 이미 몸은 다 큰 어른이구나 했는데 자기 또래 친구들과 떠들 때는 마냥 순수한 아이였다. 그러다가도 집중할 땐 또 집중하고. 내가 상상하던 친구가 바로 저 친구라고 확신이 생겼다. 일단 피지컬만큼은 저 정도는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해서 오전엔 근력운동하고 하루 네다섯 끼를 먹어가며 몸을 키웠다. 그러면서 한 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야구 훈련을 다녔다. 처음에는 느리게 날아오는 공도 무서웠는데 나중엔 160km/h의 구속으로 날아오는 공도 쳐 내게 되더라. 훈련 자체가 광호를 이해하는 과정이 되었다. 훈련에 몰두하다 보니 손에 굳은살도 생기고 피도 나고 정말 고통스럽고 힘들었는데 광호는 이런 훈련을 초등학교 때부터 해왔던 것 아닌가. 광호의 오랜 노력도 한순간의 드래프트 발표로 끝이 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그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되더라.
언급한 대로 고교야구 선수들은 졸업 시점에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더라. 드래프트로 프로에 가든가 대학팀으로 진학하든가. 드래프트나 대학팀 진학에 실패했다고 다음 해에 다시 도전할 수도 없다.
야구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다. 야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게 아니라 고등야구부 드래프트를 준비하다 떨어진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는가 하는 내용이다. 광호와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을 눈여겨봤다. 또 선수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없이 청탁 같은 부당한 일에 대한 기사도 찾아봤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들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해봤다.
아버지의 가게를 처분해달라고 하거나, 가짜 휘발류 판매에 뛰어드는 드는 모습은 광호의 절박함을 잘 드러내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마냥 응원하기도 미워하기도 어렵다.
도덕적으로 옳은가 그른가를 염두에 두고 연기하지는 않았다. 그냥 광호의 마음에 집중했다. 과연 광호의 마음은 어떤 것이기에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갈 수 있었을까 하는 점에 말이다. 많이 고민해봤는데 결국엔 야구가 바로 광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를 못 하게 된다면 나라는 사람도 없고, 또 갈 곳도 없다는 두려움이 절박함이 된 것 같다.
영화 제목인 ‘낫아웃’은 삼진 상황이지만 아직 아웃되지 않고 1루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말한다. 고의로 져줘야 하는 게임에서 광호는 낫아웃 상황을 맞이하고 전력 질주하여 세이프가 된다. 불공정한 세상에 던지는 광호의 이야기 같았다.
이 장면은 영화의 변곡점이 된 장면이란 생각이 든다. 광호가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불법 휘발류 판매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이유가 생긴 장면이기 때문이다.
민철역의 이규성 배우와 케미가 돋보인다. 이규성 배우와는 어땠나.
나는 예전에 치킨 배달 같은 아르바이트도 했기 때문에 오토바이를 탈 줄 안다. 또 영화에서 오토바이 타는 역할도 했고. 그런데 영화 속 장면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규성씨는 정작 오토바이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영화 촬영 전 한 2주 정도 만나 오토바이 타는 연습도 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집에도 가끔 놀러 오고 하면서 친해졌다. 처음 규성씨를 만났을 때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2019) 까불이로 한참 화제가 될 때였다. 진짜 배우고 연예인 같다 했는데 자주 만나니까 이제는 귀엽고 착한 동생처럼 느껴진다.
광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다. 어떻게든 계속 야구를 하는 것. 배우 정재광이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 자신을 잘 지키고 싶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연연하지 않고 내 발걸음의 속도에 맞춰 나가고 싶다.
대학에 간 광호는 꿈을 이루었을까.
꿈을 이뤘을 것 같다. 나는 긍정적인 측면을 봤다. 광호가 그렇게까지 하면서 대학에 갔고 또 이 일을 통해 아버지와 관계도 좋아졌으니 말이다. 광호가 꿈에 대한 갈망도 컸지만 부모님의 사랑 결핍에서 온 강박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관계가 회복되었으니 괜찮아지지 않았을까. 혹여 꿈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또 어떤 역할에 도전하고 싶나.
장르물을 다 해보고 싶다. 액션, 코믹, 멜로 다 하고 싶다.
몸 쓰는 연기를 잘하더라.
초등학교 때부터 춤을 췄다. 춤을 추다 보니까 몸을 움직이는 것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다. 그래서인지 액션을 제일 해보고 싶다. <본> 시리즈 같은 것 말이다.
<파이프라인>과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한다. jtbc 드라마 <알고있지만,>도 곧 방영 예정이고, <범죄도시2> 촬영도 끝났다고 들었다.
<범죄도시2>는 아직 베트남 분량이 남았다고 들었다. 이르면 내년에 개봉을 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나는 신입 형사 역할을 맡았다. 전편에서는 하준 배우가 신입 형사였는데 그는 이제 승진하고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간다. 드라마 <알고있지만,>에서는 조소과 학생들을 챙겨주는 오지랖 넓은 조교 선생님으로 출연한다. 원작 웹툰에는 없는 캐릭터다. 조금 색다른 내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다.
글 · 씨네플레이 심규한 기자
사진 · kth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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