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너브러더스가 프랜차이즈를 시작할 영화로 슈퍼맨의 솔로 무비를 고른 것은 꽤 당위성이 있는 선택이었다. DC 코믹스 실사화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대중이 가장 기대하는 캐릭터이기도 하고, '저스티스 리그'로 나아갈 대망의 아젠다를 생각할 때도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슈퍼맨 없는, 혹은 슈퍼맨 서사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의 저스티스 리그는 상상하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맨 오브 스틸>은 대중이 익히 알고 있는 슈퍼맨 스토리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잭 스나이더의 손을 통해 화려하고 리얼하면서도 슈퍼히어로 무비의 스케일에 걸맞은 영상미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전설적인 영웅이자, 히어로의 대명사인 슈퍼맨에 어울리는 영화였던 셈이다. 하지만 아쉬운 스토리라인-전형적인 영웅담이었다-과 더불어 멋진 장면을 돋보이게 할 강약조절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 뭔가 아쉬운 뒷맛을 남겼던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이러니저러니 해도 프랜차이즈를 시작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대답이었다. 영화 자체로만 보면 스토리 구성과 전개에 불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으나... 이후의 타이틀 라인업을 쭉 보고 있노라면 급격히 선녀가 강림하는 느낌이 없지 않다는(...) 얘기. 이렇게 평가도 호불호도 갈렸던 <맨 오브 스틸>이었지만 어쨌든 프랜차이즈를 스타트하는 데는 성공했고, 주연 배우 헨리 카빌에게도 상당한 기회가 되었다. 주로 TV 시리즈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아 가던 배우였던 헨리 카빌은 이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 스타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외모와 정돈된 분위기는 슈퍼맨이라는 정통성 있는 히어로 캐릭터를 맡기에 완벽한 조건이었고, 실제로도 스크린 속에서 보여준 모습 역시 대중이 기대하는 슈퍼맨의 모습과 흡사했다.
이대로 무난하게 솔로 무비 시리즈가 이어졌으면 좋았으련만, 헨리 카빌이 연기하는 DC 확장 유니버스의 슈퍼맨이 등장한 다음 타이틀은 슬프게도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었다.
개인적으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영화관에서 관람한 그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도 상당히 기억에 남는 타이틀 중 하나였다. 정말 화려하고, 돈 쓴 티 나고, 연기도 좋고, 나름 흥미진진한 구석도 있는데 결론적으로 재미는 없었기 때문이다. 있을 거 다 있고, 넣을 건 다 넣었는데, 뭔가 맥빠지는 그 기분. 영화를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는가에 대해 짙은 고민을 하게 했던 바로 그 영화가 바로 헨리 카빌 슈퍼맨이 두 번째로 등장한 이 작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로튼토마토 지수는 급격히 하락했으며 국내 평가도 그리 좋지 못했다. 기대작이었던 이 작품의 망조로 인해 많은 커뮤니티에서 성토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이었던 이 영화가 참패하면서 DC 실사화 유니버스 전체에 대한 기대치는 하락하다 못해 우려로 번지기 시작한다. DC 코믹스의 실사화를 한다고 했을 때 팬들이 기대할 수 있는 다양한 이슈와 사건들을 너무 빠르게 소진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영화의 완성도가 비극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장점이 없지는 않지만, 전개는 산만했고 관객이 가장 기대했던 사건들은 미숙하게 끝나고야 말았다. 영화는 원작 팬들의 기대감도, 순수하게 재미가 있느냐로 평가를 먼저 하게 될 일반 관객들의 기대감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관객은 언제나 그랬듯 냉정하고, 오랜 팬들이라 하더라도 원작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평가는 가차없기 마련이기에.
DC 코믹스에서 슈퍼맨이 갖고 있는 위상을 차치하고서라도 실사화 프랜차이즈에서 헨리 카빌이 연기한 슈퍼맨 캐릭터의 역할은 꽤 크다. 새롭게 실사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저스티스 리그로 향하는 원대한 여정의 첫걸음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저스티스 리그를 상징하는 캐릭터들 중 가장 대표적인 히어로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헨리 카빌의 슈퍼맨은 어쩌면 새로운 DC 실사화 프로젝트의 개국공신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관객들이 저스티스 리그로 이어질 이 거대한 세계관에 익숙해질 틈도 없이 수많은 대형 사건들이 한 편의 영화에서 벌어져 버렸다. 이 임팩트 넘치는 이슈들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팬들도, 알지 못하는 관객들도 의아해할 만큼 갑작스러웠다.
결국 지난 솔로 무비의 성공과 무관하게 팀업 무비가 차례로 하락세를 겪으면서 DC 확장 유니버스는 방향을 선회했다. 섣부른 팀업 무비 대신,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적 재해석을 하는 데 충실한 솔로 무비를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한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닌 블록버스터 히어로 무비 대신 캐릭터 하나의 내면 서사(그건 워너브러더스 산하 DC 실사화가 가장 잘 하는 일이었다)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한 것인데,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정답이었다. 하지만 헨리 카빌에게는 마냥 기쁜 선택은 아니었다.
이미 솔로 무비 한 편을 그럭저럭 중박으로 성공시키고도 팀업 무비에서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슈퍼맨 헨리 카빌에 대한 아쉬움은 컸다. 크리스토퍼 리브로 대표되는 지난날의 슈퍼맨 실사화 타이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할 만큼 고전적인 슈퍼맨의 분위기를 잘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헨리 카빌이라는 배우가 총체적인 기획과 연출의 문제로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대놓고 하차한 적도 없고 은퇴 의사를 밝힌 적도 없는데 헨리 카빌의 슈퍼맨 하차설은 잊을 만하면 언론에 보도되곤 했다. 루머가 반복되자 플래시 역의 에즈라 밀러가 사실 무근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으며 헨리 카빌 본인 역시 슈퍼맨 역할을 계속하고 싶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으나 이렇다 할 만한 슈퍼맨 재등장 소식은 여전히 들려오지 않았다.
<샤잠!>에 슈퍼맨 캐릭터가 카메오로 등장하는 와중에도 캐릭터로서의 슈퍼맨만 등장했을 뿐 헨리 카빌 본인은 영화에서 도무지 볼 수가 없었다. 내년 개봉 예정인 <더 플래시>에도 카메오 등장 이야기가 있지만 에즈라 밀러의 파행으로 플래시 무비의 향방 자체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헨리 카빌이 실제로 이 영화에 등장한다고 해도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을 것은 어쩐지 예상되는 일이다.
프랜차이즈의 미래가 어둡고 애매할 때에도 헨리 카빌이 계속해서 캐릭터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바 있고, 하차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이라고 언급했기 때문에 아직 희망의 끈을 놓기는 이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솔직히 이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팀업 무비가 성공했으면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으련만 별개의 이야기인 <조커>가 대성공을 거두고 나니 기존의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이 등장하는 기존 그대로의 모습은 이제 과거의 영상 속에 남겨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배우로서의 헨리 카빌이, 필모그래피에 성공작만 가득 차 있는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근 작품들에서는 호평을 받아왔기에 아쉬움은 더 크다. 특히 동명의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위처>에서는 캐릭터 이해를 위해 게임을 '다시' 한번 플레이했다고 언급하기도 하는 등, 원작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를 가지고 한숨소리마저 완벽히 재현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이와 별개로 흥행 성공 측면에서 헨리 카빌의 슈퍼맨이 다시금 솔로 무비로 제작된다 한들 그 이상을 기대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모를까, 그러려면 지금까지 쌓아 온 실사화 프로젝트 속에서의 슈퍼맨 캐릭터의 많은 설정이 뒤바뀌어 혼란스러운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리스크가 많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 카빌이 ‘좋은 영화’에서 슈퍼맨으로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건 사실이다. 워너브러더스 측에서 헨리 카빌의 하차를 원한다는 루머가 있는 가운데, 헨리 카빌이 새로운 슈퍼맨 무비 계약서에 사인했다는 루머 역시 있는 상태다. 어차피 진실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 슈퍼맨의 이야기가 히어로답게 마무리되기도 전에, 소위 어른의 사정으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건 흥행 실패만큼이나 비극적이지 않은가.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