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을 내려놓은 임기 마지막 날.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노무현의 모습은 더없이 후련해 보였다. 더는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 위해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되며, 9시 뉴스를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 노무현의 모습을 담으며 영화는 시작된다. <시민 노무현>은 주변 지인들과 그를 기억하는 보통 사람들의 증언으로 채워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454일간의 이야기다.
귀향을 택한 최초의 퇴임 대통령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귀향을 선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결심은 이미 계획된 것이었다. 소외된 농촌을 되살리고, 환경을 복원하며, 국토를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은 그의 소신이자 철학이었기 때문이다. 말뿐이 아닌 실천의 행위가 봉하행에 담긴 것이었다. 봉하마을로 돌아간 그는 주민들과 함께 쓰레기와 각종 폐수로 오염된 화포천을 복원하고, 친환경 오리 농법과 우렁이 농법을 도입했다. 그 결과 화포천에는 멸종 위기의 황새가 돌아오고, 봉하마을에서 생산된 쌀은 친환경 인증을 받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변화를 이루는 것. 그가 바라는 세상을 만드는 작은 불씨가 피어난 것이다.
투사가 아닌 시민의 삶을 위해
“다 못한 것은 시민으로서 잘하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에 돌아온 감회를 통해 이런 결심을 전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인권변호사로 독재에 항거했고, 정치인이 되어서는 지역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박해받고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 서 있었고, 늘 어려운 길로 자신을 내몰았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시련은 마찬가지였다. 현실 정치의 벽은 순수한 열정으로 극복하기엔 너무 높았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기득권은 여전히 견고했으며, 보수 언론의 펜 끝은 조롱과 비난의 언어로 춤췄다. 이루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과 성급한 정책들에 대한 후회에 대한 무게를 내려놓고 천천히 돌이켜볼 시간이 그에게 필요했을지 모른다.
세상은 여전히 그에게 묻는다
노무현은 돌아온 첫날의 환영인파가 돌아가면, 한적한 여유를 즐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시민의 품으로 돌아간 최초의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은 예상 밖으로 컸다. 정치적 동료의식이나 신념으로 그를 찾는 것만이 아니었다. 소풍 가듯 찾아가 전직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경험은 역사상 처음으로 누리는 장면이었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대화가 쌓여갈수록 태생이 정치인이었던 그도 세상일에 무관심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세상이 답답하게 흘러갈수록 사람들은 그의 시원한 대답을 듣고 싶어 했고, 봉하마을 밖의 일이 흘러 들고 나가는 동안 보수 정권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 세력화에 대한 우려는 노무현에 대한 압박으로 돌아왔다.
왜 아직 노무현인가
“대통령 일 할 때는 그렇게 욕을 하더니, 이제 노니까 좋대요.” 봉하마을을 찾은 시민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말에는 서운함과 아쉬움이 담겨있다. 보수에게는 그의 모든 일이 위협이었고, 진보에게는 그의 모든 일이 배신이었다. 임기 내내 그는 어느 쪽에도 환영받지 못했고 언제나 외로웠다. 우리는 이제 그 외로움이 노무현의 신념에 기인한 것임을 안다. 그리고, 삶의 과정 속에서도 변하지 않던 그 신념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반칙과 특권이 여전히 만연한 지금 그 단단한 마음이 떠오른 것이다. 영화는 그가 보냈던 봉하마을에서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주며 그의 진심을 발견하게 한다.
백재호 감독이 만든 <시민 노무현>은 투쟁적이지도 추모에 머물지도 않은 관조적 태도를 유지한다. 이것은 정치인 노무현이 아닌 평범한 시민의 노무현을 조명하고 싶다는 연출 의도 때문이다. 격정적인 행보보다 일상의 모습을 통해 그의 생각을 전하면서도 이것이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미래를 위한 이야기임을 잊지 않게 만든다. 4:3 비율의 화면이 영화 말미에 시원하게 넓어지며 봉하마을을 비추는 장면과 정치 인생을 막 시작하던 노무현의 모습에서 영화가 바라는 희망을 읽을 수 있다.
씨네플레이 심규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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