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

벌써 다섯 번째 작품이다. 걸그룹 EXID의 리드보컬 ‘하니’의 옷을 잠시 벗어 던지고 배우 안희연으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지 2년 만이다. 멈추기 위해 떠난 여행지에서 이환 감독의 메시지를 받고 욕심보다 호기심으로 뛰어들었다는 연기자의 길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엄청난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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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1일 공개된 웨이브(WAVVE) 오리지널 드라마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은 발기부전으로 고개 숙인 31세 공시생 도용식(윤시윤)이 우여곡절 끝에 인생의 주인공으로 다시 우뚝 서는 섹시 발랄 코미디다. 드라마에서 안희연은 첫사랑 도용식을 비뇨기과 의사로 재회한 이루다를 연기했다.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를 시작으로 2020년 드라마 <엑스엑스> <SF8 – 하얀 까마귀>, 2021년 <아직 낫서른>을 지나면서 어떤 목표, 무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니 연기에서 재미와 설렘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하니’를 잠시 숨긴 ‘배우 안희연’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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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이루다는 어떤 인물로 느껴졌나.

누군가의 성장 혹은 회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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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전문드라마는 아니지만 의사 캐릭터에 대한 준비는 필요했을 것 같다.

드라마를 보면 내가 실제로 해야 하는 검사도 있다. 현장에 비뇨기과 의사 선생님이 와주셔서 이런저런 자문을 주셨다. 여성 비뇨기과 의사 선생님들의 인터뷰도 찾아봤다. 한 여성 비뇨기과 선생님의 인터뷰에서 세상의 편견 같은 것을 깨고 싶어 이 진료과목을 선택했다는 말이 많이 와닿았다.

(왼쪽부터) 윤시윤, 안희연

도용식 역의 윤시윤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내가 연기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부족한 점이 많다. 그래서 함께하는 배우들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윤시윤 배우도 그렇고 루다의 현재 애인 도지혁을 연기한 박기웅 배우도 그렇고 옆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윤)시윤 오빠는 주인공으로서 갖고 있는 책임감 같은 게 보이더라. 다른 동료 배우를 대하는 태도, 현장에서의 역할. 선배 배우를 떠나 인간적으로도 존경스러웠고 대단하다 생각했다. 내가 지금 다른 현장에서 촬영 중인데 거기서는 내가 주인공이다. 그곳에서는 내가 시윤 오빠를 따라 하고 있더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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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하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을까.

재미있었던 거… 다 재미있었는데… 우리가 키스신이 좀 많았다. 멜로신도 많았고. 부끄러운지 자꾸만 연기 동선을 맞출 때 ‘여기선 마운트 걸고, 암바 걸고, 또 헤드록 걸어서…’ 이런 격투기 용어를 막 쓰면서 (일동 웃음) 서로 편한 분위기를 만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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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다의 도용식에 대한 태도는 단순히 첫사랑이었다는 부분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도용식과 이루다에겐 엄청난 전사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

루다에게 용식이는 슈퍼히어로 같은 존재였다. 촬영을 하면서 든 생각은 루다가 단지 어떤 특별한 사건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도 있지만, 루다가 믿고 싶은 어떤 세상, 어떤 가치 이런 것들이 용식에게 투사되었던 것 같다. 그게 루다를 움직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유 레이즈 미 업> 안희연

다소 자극적인 소재로 보일 수 있지만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잃어버린 두 주인공의 자존감을 회복’하자는 의미로 읽힌다.

발기부전을 앓고 있다는 것, 사실 그게 자극적으로 비치는 게 조금 안타깝다. 대사에 보면 그건 감기 같은 거라고 하지 않나. 너무 쉬쉬하는 경향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 병원에 못 가는 이런 내용이 극에 나온다. 고칠 수 있는 병이고, 살면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게 왜 부끄러워야 하는지 의문이다. 남보다 조금 괜찮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내적으로도 충만하고, 안정적이며 자존감이 높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루다도 지혁도 특별히 용식과 대비되는 캐릭터가 아닌 거다. 이들 모두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극복해가는 과정들이 이 드라마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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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대로 유능한 의사에 외모와 집안까지 모든 것을 갖춘 이루다에게도 늘 부족한 점이 있다. 가창력, 연기, 진행 능력 등 다재다능한 현실의 안희연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부족한 게 너무 많다. 뭔가 잘하는 것처럼 보인 것은 그렇게 되고 싶은 강박이 만들어 낸 거다. 그냥 겉으로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중요한 게 뭔지 잘 몰랐던 때가 있었다. 그것도 부족함이라면 부족함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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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진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행 간 거다. 내가 나를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거.

그 과정에서 무언가 얻은 게 있나.

배우가 돼야지 해서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돌 활동 7년의 계약이 끝났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더라. 내가 뭘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내게 묻고 또 물어도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잠시 멈춰서 내가 잃었던 것을 찾아보자는 생각을 했다. 앞을 보지 않고 멈춘 것, 그리고 떠난 것, 제일 잘한 일이었다.

<어른들은 몰라요> 안희연, 이유미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하며 처음 맞이한 작품이 <어른들은 몰라요>(2020)다. 제안이 들어오기 전에 배우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은 상태는 아니었다고 했다.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른 파격이 느껴졌는데 첫 작품으로 <어른들은 몰라요>를 선택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내가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선택하지 못했을 작품이다. 아무것도 정한 게 없이 여행을 갔고, 그냥 막연히 앞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거라는 생각뿐이었던 때다. 그러다 이환 감독님께 DM을 받았다. 궁금했고 해보고 싶었다. 그게 동기였다. 그렇게 뛰어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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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몰라요>의 현장은 어땠나.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 자극을 주고 배우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는 영화 현장에서 연기를 처음 경험해 볼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감정이 끓어오르면 이렇게 연기해라 이런 말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감독님과 함께 한 배우들 덕분에 조금씩 무언가 찾아가는 경험을 했던 것 같다.

EXID의 <위아래> 역주행은 그룹 활동 동안 가장 짜릿한 모멘텀이었을 것 같다. 연기를 하며 배우 안희연이 느낀 이런 짜릿한 순간이 있다면.

다른 짜릿함일 수도 있는데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같다. 루다라는 역할을 통해서 내가 기존에 있던 시각이 아니라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고 타인을 볼 수 있게 된 것. 그게 제일 먼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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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의 첫사랑은 언제였나.

초등학교 때 같이 철인삼종경기 하던 오빠다.

초등학교 때라면 로맨틱한 기억 같은 건 아니겠다.

그 오빠가 찬 축구공에 맞아서 눈 밑이 찢어졌다. (웃음) 그 오빠가 최근 <뭉쳐야 찬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깜짝 놀랐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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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영상에서 관전 포인트로 수영장, 호텔, 마사지라고 했는데 좀 더 힌트를 준다면.

우리 드라마는 소재가 독특해 이야기 자체가 딱 OTT에서 할 수 있을 재미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상황들과 이 상황이 연출되는 색다른 장소들이 많이 등장한다. 내가 말한 장소들은 이런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되는 곳이다. 이 세 군데에서 일어나는 장면들을 눈여겨 봐주셨으면 좋겠다.

<유 레이즈 미 업> 안희연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나.

예전에는 굉장히 미래 지향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었는데 그 여행 이후로 조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장기적인 목표, 무언가 되고 싶다는 생각 이런 게 없다. 그냥 지금 느끼는 설렘, 그걸 계속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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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계정에 ‘하니 혹은 안희연’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EXID에 대한 애정도 여전해 보인다. 가수로서의 행보도 병행할 생각이 있나.

하고 싶으면 할 생각이다. 지금은 연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연기에 좀 집중하고 싶다. 그런데 또 내일 일은 내일 가봐야 아는 거니까 하고 싶은 거 하지 않을까 싶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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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레이즈 미 업>은 8월 31일 시청자들을 만났다. 비슷한 시기에 걸스데이 방민아의 <최선의 삶>(9/1 개봉)도 관객들과 만난다. 서로 비슷한 길을 걷고 있어 동료애 같은 것도 있겠다.

힘이 된다. 동료라는 느낌도 있고, 방민아 배우와는 지난번 부산국제영화제와 씨네플레이가 함께 한 인터뷰를 줌으로 했었지 않나. 그때 대화하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나와 비슷한 일을 겪으며, 함께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든든하고 반가웠다. 응원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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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터뷰 말미에 방민아 배우와 성수는 족발이라며 만남을 기약했다. 실제로 만났나.

서로 바빠서 아직 만나지는 못했다. 방민아 배우의 어느 인터뷰를 보니까 정말 멋있는 거다. ‘예전에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 항상 웃었다. 근데 이제는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내용이었는데 너무 공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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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몰라요> 이후 드라마 <엑스엑스> <SF8-하얀까마귀>(2020) <아직 낫서른>(2021), 그리고 오늘 공개되는 <유 레이즈 미 업>까지 지난 1년을 가장 바쁘게 지냈을 것 같다.

감사하게도 계속 기회가 왔다. 계속 연기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행복했다. 많이 즐거웠고, 많이 배웠다.

어떤 작품들이 안희연 배우에게 전달되고 있나.

전문직 여성? 그러니까 좀 똑 부러지고 도시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많이 들어온다. <어른들은 몰라요>의 이환 감독님이 나를 처음 봤을 때 ‘굳세어라 금순이’ 같은 느낌이라고 하셨다. (웃음) 정말 그런 느낌의 캐릭터도 제안이 많이 들어오는 것 같더라. 기회가 된다면 좀 세거나 흑화된 캐릭터도 해보고 싶다. (웃음)


글 · 씨네플레이 심규한 기자

사진 · 웨이브(WAVVE)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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