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은 지치지도 않고 진일보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라는 걸출한 작품의 리메이크로 생애 첫 뮤지컬 영화 연출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1957년 첫 공개 후 1961년 영화로 제작됐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2022년, 원작의 감성을 유지하되 훨씬 더 세련된 모습으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2021년 12월에서 2022년 1월 12일로 개봉일이 미뤄진 지금, 기다림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게 제작진과 배우들의 발언을 가져왔다. 주연 배우 안셀 엘고트·레이첼 지글러와의 인터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토니 쿠슈너 각본가·배우 리타 모레노의 기자회견 발언들을 만나보자.
지난 70년 넘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1950년대 미국 배경으로 옮겨 이민자의 갈등과 사랑을 그린다. 지휘자로 유명한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 스티븐 손드하임(<스위니 토드> 작곡·작사)이 작사, 제롬 로빈스가 안무를 맡은 이 작품은 아름다운 음악과 화려한 군무,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내세워 미국인이 사랑하는 뮤지컬로 자리 잡았다. 1961년 영화 또한 그해 흥행과 비평 모두 성취를 거두며 아카데미 10관왕(작품상, 감독상, 남녀조연상 포함)을 수상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어린 시절 이 작품의 모든 가사를 외웠다고 말하는 열성 팬으로서 마침내 리메이크까지 선보이게 됐다.
기자는 인터뷰를 위해 지난 11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봤다(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먼저 본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단도적입적으로 말하면 이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스필버그 감독의 건재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완성도의 영화다. 이번 영화는 1962년 판의 아날로그적 감수성은 그대로 유지하되 몇몇 장면을 각색하거나 순서를 바꾸는 식으로 이야기 구성을 더욱 튼튼하게 했다. 1961년 판에서 과하게 '무용에 가까운' 안무 중 일부를 장면에 알맞게 변경한 부분은 (일부 팬에겐 아쉬울 수 있겠으나) 훨씬 세련되다는 느낌을 준다. 상영이 끝나고 무조건 극장에서 다시 보리라 다짐한 기자야말로 이번 개봉 연기가 가장 아쉬운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영화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원작을 사랑하는 팬이든 처음 접하는 관객이든 이번 작품을 꼭 만나보길 권하고 싶다.
"스티븐 손드하임은 3주동안 5일 내내 내 옆에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작사가 스티븐 손드하임은 영화 개봉이 2주 남짓 남은 11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고 소식에 기자회견에서도 손드하임에 관한 질문이 가장 먼저 나왔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스위니 토드> 프리미어 때 손드하임을 처음 만났고, 그 뒤로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리메이크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한다. 그러다 토니 쿠슈너의 초고를 주며 마침내 얘기를 꺼냈고, 손드하임은 쿠슈너와 얘기하며 각본 개발을 도왔다. 스필버그는 손드하임이 가장 도움을 준 부분은 사전 녹음을 했던 순간이라며 손드하임이 3주 동안 5일 내내 스튜디오에 와서 조언해줬다고 회상했다. 스필버그마저도 엄청난 영광이었다고 할 정도. 신기한 건 1961년 판의 '아니타'였던 리타 모레노도 이번 사전 녹음에서 손드하임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지?"
토니 쿠슈너가 리메이크 각본 의뢰에 한 말
토니 쿠슈너는 스필버그의 전작 중 <뮌헨>, <링컨>의 각본을 맡았었다. 그런 그도 스필버그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각본 각색을 부탁했을 때, 그의 파트너 마크 해리스(기자 겸 작가)에게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지?"라고 말했단다. 워낙 유명한 뮤지컬인 데다 자신도 굉장히 아끼는 작품이어서 잘할 수 있을까 부담이 됐기 때문. 그러나 해리스는 쿠슈너에게 무조건 해야 한다며 권유하며 아이디어도 하나 제공했다. 해리스는 원작의 '캔디가게 아저씨' 대신 그의 미망인이자 푸에르토리코인 여성을 넣고 리타 모레노에게 맡기면 어떻냐고 제안했다. 쿠슈너에게 이 말을 들은 스필버그는 이 아이디어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고, 리타 모레노 또한 이 '발렌티나' 역을 흔쾌히 수락했다. 2021년 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만의 특징이 탄생한 순간이다.
스페인어에 자막이 없는 것, 존중의 표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굉장히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 극중 스페인어에 영어 자막을 달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통 외국어에 영어 자막을 넣는 건 당연한 절차인데, 스필버그와 쿠슈너는 자막을 넣지 않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극중 샤크파의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이 "영어를 써라"라고 경찰에게 강요받기 때문. '무조건 영어를 써라'라는 강압적 태도가 차별임을 그리는데 영어 자막을 다는 것이 모순적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리타 모레노 또한 이렇게 자막을 달지 않으면 관객들은 그들이 말할 때 주의를 더욱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고로 토니 쿠슈너는 각본을 쓰면서 "끔찍한 구글의 스페인어 번역으로 대사의 위치만 채워 넣었다"고 한다.
"<이티> 이후 처음으로 가족 같은 분위기를 느꼈다"
스티븐 스필버그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번 영화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자신이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것인 데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출연진과 유대감을 가졌기 때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촬영 전 네 달하고도 보름간 리허설을 했는데, 안무가 저스틴 펙을 비롯해 출연진, 안무팀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스필버그는 이렇게 가족 같은 유대감은 <이티> 이후 처음이라고 회상했다. 특히 가족의 중심이 아닌 일원이 된 기분이었다고. 토니 쿠슈너는 저스틴 펙과 댄서들이 리허설할 때 스필버그가 아이폰으로 그 모습을 찍고 있었는데, 펙의 동료가 의자를 밀어주자 스필버그가 마치 달리 카메라(트랙을 깔고 쓰는 이동식 카메라)처럼 여러 각도에서 영상을 찍는 광경도 봤다고 한다.
스필버그가 사비까지 쓰려고 했던 사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가장 화려한 장면 중 하나는 '아메리카' 시퀀스일 것이다. 베르나르도(데이비드 알바즈)와 아니타(아리아나 데보스)를 중심으로 푸에르토리코 남녀가 미국에 대해 노래하는 이 장면은 경쾌한 리듬과 군무가 인상적이다. 스필버그는 이 장면을 찍을 때 날씨가 너무 더워서 출연진들이 엄청 힘들어했다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총 3일 중 첫날 촬영이 끝났을 때, 그는 프로듀서를 따로 불러내 내일도 오늘처럼 더우면 촬영을 미루자고 제안했다. 촬영을 미뤄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은 자신이 모두 부담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다행히 다음날부터 온도가 낮아져 '아메리카' 시퀀스 촬영을 모두 끝낼 수 있었다. 여기서 스필버그가 밝힌 한 가지 비밀. 촬영 당시 너무 더운 날씨 탓에 배우들이 땀을 꽤 많이 흘렸는데 후반작업에서 이 땀 자국들을 모두 지웠다고 한다.
"다시 어려져서 다시 하길 바랐다"
리타 모레노
리타 모레노는 1961년 판에서 아니타를 연기해 그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에미(<더 머펫 쇼>, <록포드 파일스>), 그래미(<더 일렉트닉 컴퍼니>), 토니(<더 리츠>)까지 수상해 EGOT를 달성한 전설적인 배우 중 한 명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캔디가게 아저씨' 포지션의 캐릭터 발렌티나를 맡았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다시 젊어져 작품에 참여하고 싶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쿠슈너의 각본에서 아름다운 대사와 장면을 얻었기에 이 영화 안에서의 자신을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아니타와 함께 한 장면이 딱 하나 있는데 그 장면을 할 때 무척 소름 끼쳤다며, 데보스도 이상한 기분이었겠지만 본인도 몰입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원작을 봤거나 영화를 본다면 어떤 장면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토니' 안셀 엘고트와 '마리아' 레이첼 지글러와의 대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운명적 사랑의 주인공 토니와 마리아는 각각 안셀 엘고트와 레이첼 지글러에게 돌아갔다. 이번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하는 레이첼 지글러는 과거 무대에서 마리아 역을 맡은 바 있어 그의 캐스팅이 화제가 됐었다. 5분이란 짧은 시간이었지만 열성적으로 답변하는 모습에서 두 사람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얼마나 애정을 가졌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거장과 함께한 소감은?
안셀 엄청난 영광이다.
레이첼 안셀 대답의 메아리는 아니지만(웃음) 정말 엄청난 영광이다. 촬영장에서의 매일매일이 축복과도 같았다. 감독님은 실력이 빼어난 제작진으로 팀을 꾸렸고, 우리 주위를 놀라운 출연진들로 채워줬다. 그런 것들이 영화 내내 빛이 난다. 다 같이 함께 하는 환상적인 그룹 프로젝트 같았고, 하루가 끝날 때 무척 아름답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연기와 춤, 음악이 함께 하는 작품이다. 가장 힘들었고 가장 뿌듯한 장면이 있다면?
안셀 육체적으로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 춤을 추는, 넘버 '쿨'(Cool)의 장면처럼. 서머타임 때의 뉴욕은 진짜 덥다. 우리는 계속 테이크에 테이크를 거듭하면서 요란스럽게 굴어야 했다. 스크린 속 장면뿐만 아니라, 카메라가 돌기 전 휴식 때도 팔굽혀펴기나 팔 벌려 뛰기를 하면서 기다렸다. 우리가 땀에 흠뻑 젖은 느낌을 내기 위해서. 언제나 바로 갈 수 있도록 땀에 젖은 상태로 대기했다. 마이크 타이슨이 경기장에 오르기 전부터 땀을 흘리고 몸에 열을 내고 있던 것처럼. 그래서 무척 힘들었지만 보람도 느끼는 장면이었다.
레이첼 내가 맡은 마리아의 감정적인 변화가 어려웠다. 마리아는 엄청나게 큰 감정적 변화를 겪는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넘버 '아이 필 프리티'(I Feel Pretty) 다음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마리아는 오빠의 소식을 알게 되고 집에 돌아왔을 때 토니가 비상계단에 앉아있는 걸 본다. 그리고 나는 안셀을 때렸다. 그날 정말 진짜로 때렸다(일동 웃음). 그날 정말 많이 때리고, 때렸는데, 내가 기억나는 건 테이크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고 그게 온몸으로 와닿는 것 같았다. 그날 촬영이 끝났을 때 육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소모했다고 느껴졌다.
안셀 그 장면을 촬영하기 전에 감독님과 함께 걸으면서 얘기한 적이 있다. 뭔가 촬영했었는데 레이첼은 없는 날이었다. 그렇게 얘기하다가 감독님은 '토니가 마리아 아파트에 나타나는 장면을 월요일에 찍을 예정이다'라면서 그 장면이 정말 생생하고 감정적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감독님은 내게 준비를 시킨 것이다. 너는 그날 그런 에너지를 가져와야만 한다고. 그래서 나 또한 그 장면 촬영 날 굉장히 감정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레이첼 심지어 안셀은 그날 오전 내내 내게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웃음).
개봉이 팬데믹 때문에 1년 정도 연기됐다. 오랜 시간 기다렸을 관객들에게 영화를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팁을 준다면.
안셀 친구들과 함께 보세요. 사람들이 많은 극장, 여러분이 손뼉을 치거나 호응을 해도 편안하게 느껴질 극장에서 보세요. 뮤지컬 극장이나 아니면 춤과 음악이 함께 하는 훌륭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이요. 이 영화는 관객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런 영화이기에 많은 관객들과 함께 보세요. 아니면 적어도 여러분의 친구를 관객으로 만드시거나요.
레이첼 맞아요. 그리고 극장에서 보시는 게 정말 중요해요. 사운드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색감과 아름다운 촬영이 있으니까요. 친구들, 가족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세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과 같이 볼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니까요.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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