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쿵푸 허슬〉은 이소룡과 홍콩 무협영화의 전통에 끊임없이 애정을 바쳐온 주성치가 감독으로서 완성한 꿈의 세계다. 홍콩영화 역사 전체에 대한 주성치의 재해석이랄까. 그래서 가장 진지한 표정의 주성치를 엿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주성치 특유의 황당무계한 개그, 낙오자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감독으로서의 절대적인 비전, 그 모두가 한데 어우러진 주성치 최고 걸작 중 하나다.

혼돈의 1940년대 상하이로 간 주성치
1940년대 중국 상하이. 난세를 틈타 어둠의 세력을 평정한 도끼파의 잔인함에 신음하고 있던 시기, 가난한 하층민들이 평화롭게 모여 사는 저룡성채(돼지촌)에 소심한 건달 싱(주성치)이 흘러 들어온다. 그는 특유의 허세로 저룡성채를 굴복시켜서 도끼파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남다른 힘을 지닌 주민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러다 그로 인해 도끼파와 저룡성채 주민 간에 전면 대결이 펼쳐지고, 저룡성채의 주인 부부 양과(원화)와 소용녀(원추)는 물론 찐빵가게 주인(동지화)와 양복점 주인(조지릉), 짐꾼(석행우) 등 복잡한 강호를 떠나 저룡성채에 숨어있던 강호의 고수들이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예상치 못한 고수들의 등장에 당황한 도끼파는 급기야 정신이 이상해져 강호를 떠난 것이나 다름없던 전설 속의 고수인 야수(양소룡)를 정신병원에서 꺼내와 저룡성채를 정복할 음모를 꾸민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싱은 과거 사랑했던 여인(황성의)을 다시 만나게 된다.

먼저 〈쿵푸 허슬〉이 ‘구룡성채’에 대한 오마주를 복원하기까지 무려 20년이 걸렸다는 얘기부터 해야 겠다. 무슨 얘기냐면, 거의 20년만인 올해 2026년 재개봉한 〈쿵푸 허슬〉에는 결정적으로 달라진 번역이 눈에 띈다. 〈쿵푸 허슬〉은 악랄한 조직 폭력배 ‘도끼파’가 평범한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돼지촌’을 접수하려 하자, 그 돼지촌의 은둔 고수들이 그들만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나선다는 내용이다. 최초 개봉 당시 돼지촌이라 불렸던 거대 연립주택은 재개봉과 함께 ‘저룡성채’라는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아마도 홍콩 사람들은 저룡성채라는 이름을 듣지 않고도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마다 장대에 빨래가 걸려 있고, 수돗가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는 초고밀도 공동체의 풍경을 보면서 즉각적으로 구룡성채를 떠올렸을 것이다. 주성치는 사라져가는 옛 홍콩의 향수를 담아 구룡성채(九龍城砦)의 첫 글자를 ‘돼지 저’(豬)(돼지 저)로 바꿔 저룡성채(豬龍城砦)를 등장시킨 것.


구룡성채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이제는 사라진 홍콩의 옛 건축물이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95)의 도시 이미지가 구룡성채로부터 유래했다는 사실도 유명하다. 1993년 강제 재개발에 들어가 이제 ‘구룡채성공원’으로 남아있는 이곳은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암울한 불법 집단 거주지역이었다. 역사가 청나라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곳은,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가 된 뒤에도 계속 중국의 통치하에 남겨뒀고, 결국 외지인들과 삼합회가 가득한 채, 영국과 중국 두 나라의 통치를 전혀 받지 않는 무법지대가 됐다. 그렇게 점점 건물이 덕지덕지 붙고 늘어나, 그렉 지라르의 사진집인 「City of Darkness: Revisited」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됐다. 그는 구룡성채가 강제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에 들어가 사람들의 생활상을 기록했다. 그 소식을 듣고 구룡성채에 들어가 촬영한 영화 중에는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1990)도 있다. 양조위가 말없이 외출을 준비하는 〈아비정전〉의 마지막 장면이 바로 구룡성채에서 촬영됐다.

‘돼지촌’에서 ‘저룡성채’로,
홍콩을 향한 주성치의 진심
〈쿵푸 허슬〉에서 주인공 주성치가 저룡성채의 입구에 처음 도착했을 때, ‘豬龍城砦’라는 표지판이 등장함에도 과거에는 ‘돼지촌’이라 번역했었지만, 최근에는 구룡성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저룡성채라는 본래 이름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쿵푸허슬〉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던 중국 무술의 고수들, 그리고 더 나아가 홍콩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영원한 아이콘 이소룡처럼 변신한 주성치가 저룡성채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다. 저룡성채, 아니 구룡성채를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은 언젠가 사라지게 될 운명의 홍콩을 바라보는 마음과도 같다. 같은 마음을 가진 홍콩 감독 중에는 〈구룡성채: 무법지대〉(2024)를 만든 정바오루이도 있다. 〈구룡성채: 무법지대〉의 에필로그에는 아침마다 누들 반죽을 하고 에그타르트를 만들며 돼지고기를 삶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일과가 끝나면 각자 열심히 일하던 그들이 모여 TV 앞에 둘러앉아 시간을 보낸다. 그를 통해 “홍콩을 향한 나의 변함없는 사랑을 담고 싶었다”는 게 정바오루이 감독의 얘기였다. 그렇게 구룡성채는 사라졌지만, 또한 사라지지 않았다.

〈쿵푸 허슬〉의 주무대가 중국 본토의 상하이라면, 그 안의 저룡성채는 홍콩의 다른 모습이다. 1940년대 상하이는 중국 대륙을 집어삼키려는 열강들의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진 장소였다. 일본은 중국의 거의 모든 도시를 점령하고 마지막으로 상하이를 손에 넣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렇게 세계의 절반이 전쟁 중이었던 1940년대, 상하이는 바로 그 열강들의 다툼을 축소시켜놓은 도시였고, 열강들의 식민 지배를 반대하는 저항군들의 주요 활동무대가 됐다. 또한 이러한 혼란을 틈타 돈을 벌고자 하는 온갖 상인들과 암흑가 세력이 군부와 결탁해 매춘, 도박, 아편 등 밤의 경제가 만연해 있었다. 혼돈의 시대였던 만큼 이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는 많았다. 오우삼의 〈첩혈가두〉(1990)의 무대를 상하이로 옮겨놓은 진혁리 감독의 〈천당구〉(2007)와 리안 감독의 〈색, 계〉(2007)는 물론 존 쿠색과 공리, 그리고 주윤발이 출연한 미카엘 하프스트롬 감독의 〈상하이〉(2010) 역시 이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192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삼았던 위가휘의 〈화평본위〉(1995)도 떠오른다. 전설의 킬러 아평(주윤발)은 화려한 과거를 뒤로하고 ‘화평반점’이라 불리는 자신만의 도시를 건설한다. 이곳에는 ‘모든 도망자를 보호하며 일체의 숙식을 제공한다. 그러나 아무도 이곳에서 떠날 수는 없다’는 절대적인 불문율이 지배하는 곳이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밤무대 가수가 피신해오면서 피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처럼 당시를 영화화한 영화들은 하나같이 저항군, 혁명가, 스파이 등이 등장했다. 하지만 〈쿵푸 허슬〉은 가상의 범죄조직 도끼파 외에는 그러한 정치적 색채가 깊이 드러나지 않는다. 철저히 영화 속 무대를 돼지촌으로 한정시켜 시대적 배경과는 무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성치는 ‘혼돈의 상하이’라는 설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오히려 돼지촌이라는 공간을 상하이 혹은 홍콩으로 치환시켜 볼 때, 자신의 오랜 터전을 중국 무술의 힘으로 지켜내려는 주성치식 무협 판타지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20년 만의 재개봉 〈쿵푸 허슬〉, 두 번째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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