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레트로 무비투어 ③ '구룡성채: 무법지대' 구룡채성공원 세트장, 되살아나는 홍콩영화의 추억

1993년 철거되어 ‘구룡채성공원’으로 남아 있는 구룡성채는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암울한 불법 집단 거주지역이었다.

구룡성채 세트장 (사진=주성철)
구룡성채 세트장 (사진=주성철)

2024년 홍콩 개봉 당시, 역대 홍콩 박스오피스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정바오루이 감독 〈구룡성채: 무법지대〉(이하 〈구룡성채〉, 2024)는 1980년대 홍콩 장르영화 유산을 적극적으로 끌어온다. 사실상 그것 자체가 목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이제는 사라진 ‘구룡성채’(九龍城寨)라는 공간 자체가 그를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다. 왕가위 감독 〈아비정전〉(1990)의 마지막 장면, 담배를 입에 문 양조위가 외출을 준비하는 낡은 집 장면이 바로 구룡성채에서 촬영됐다. 홍콩으로 건너와 은행강도를 벌이던 중국 본토 친구들의 비극을 그린, 맥당웅 감독 〈성항기병〉(1984)에서 출구 없는 미로에 갇혀버린 주인공들이 최후를 맞이한 곳도 바로 구룡성채였다. 홍콩 장르영화의 열렬한 팬이었던 뤽 베송 감독이 〈성항기병〉의 이 마지막 액션 시퀀스에서 영감을 얻어, 〈레옹〉(1994)의 클라이맥스 아파트 탈출 장면을 연출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이다. 감독 겸 배우 주성치도 구룡성채를 본따 〈쿵푸 허슬〉(2004)의 주무대인 ‘돼지촌’을 만든 바 있다.

〈구룡성채: 무법지대〉
〈구룡성채: 무법지대〉

1993년 강제 재개발에 들어가 이제는 ‘구룡채성공원’으로 남아 있는 구룡성채는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암울한 불법 집단 거주지역이었다. 역사가 청나라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곳은,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가 된 뒤에도 외지인과 삼합회가 가득한 채, 영국과 중국 두 나라의 통치를 전혀 받지 않는 치외법권 무법지대가 됐다. 1984년 중영공동선언이 체결되어 홍콩의 중화인민공화국 반환이 결정됨에 따라, 영원히 치외법권일 것 같던 구룡성채도 철거 수순에 돌입했다. 1986년에는 영국령 홍콩 정부가 원래 주인인 중국 정부의 암묵적 동의 하에 경찰을 동원하여 범죄자를 싹쓸이했다. 중화기로 무장하고 버티던 삼합회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것. 영국령 홍콩 정부는 구룡성채에 살던 33,000여명의 주민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면서 1991년과 1992년에 걸쳐 주민들도 강제 이주했다. 철거 작업은 1993년에 시작되어 1994년 4월에 완료됐다. 이처럼 철거된다는 소식을 접한 왕가위 감독이 구룡성채에 들어가 〈아비정전〉을 촬영한 것이다.

〈구룡성채: 무법지대〉 세트장 내부 (사진=주성철)
〈구룡성채: 무법지대〉 세트장 내부 (사진=주성철)
〈구룡성채: 무법지대〉 세트장 내부 (사진=주성철)
〈구룡성채: 무법지대〉 세트장 내부 (사진=주성철)

이후 구룡성채는 영화적으로 완전히 잊혀진 공간이 되었다가 유덕화, 견자단 주연 〈추룡〉(2017) 시리즈를 시작으로 다시 홍콩영화계에 부활했다. 뒤이어 정바오루이 감독과 구룡성채의 만남은 필연이었을까. 〈구교구〉(2006), 〈군계〉(2007) 등 ‘어둠의 액션’에 관한 한 남다른 스타일을 보여준 정 바오루이 감독이, 어쩌면 그 어둠의 끝판왕이라 불러도 좋을 구룡성채를 무대로 〈구룡성채〉를 내놓은 것.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초청을 시작으로 2024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구룡성채: 무법지대〉
〈구룡성채: 무법지대〉
〈구룡성채: 무법지대〉
〈구룡성채: 무법지대〉

1980년대,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동시에 사회, 경제적으로 혼돈의 시대를 보내고 있던 홍콩을 배경으로, 찬록쿤(임봉)이 빅보스(홍금보)가 이끄는 갱단에게 쫓기던 도중 우연히 구룡성채로 몸을 피한다. 구룡성채는 사이클론(고천락)이 이끌고 그 뒤를 받치는 세 남자 신이(류준겸), 십이소(호자동), AV(장문걸)의 조직이 지배하고 있다. 그들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함부로 구룡성채에 발을 들일 수 없다. 이들의 도움으로 찬록쿤은 구룡성채 생활에 적응하게 되나, 그를 잡으려고 구룡성채로 진입하려는 악당들의 위협은 점점 더 거세진다.

〈구룡성채: 무법지대〉 세트장 내 과거 재현 스크린 (사진=주성철)
〈구룡성채: 무법지대〉 세트장 내 과거 재현 스크린 (사진=주성철)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이곳 구룡채성공원에는 〈구룡성채〉 세트장이 마련됐다. 영화에서 본 놀라운 프로덕션 디자인을 그대로 옮겨와 믿기 힘든 풍경을 보여준다. 천장을 가득 채운 전선과 수도꼭지부터 벽지에 이르기까지 영화 속 모습 그대로다. 제작비의 절반을 영화 미술에 투자했다는 얘기가 거짓이 아닐 정도로 구석구석 놀랍다. 이곳에서 촬영된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의 무드를 온전하게 살려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에 더없이 어울린다. 실제로 구룡성채를 철거하다 일부 남겨둔 옛 흔적도 함께 볼 수 있다.

실제 구룡성채의 남겨진 흔적 (사진=주성철)
실제 구룡성채의 남겨진 흔적 (사진=주성철)

홍콩영화 팬들에게 〈구룡성채〉는 홍콩 액션영화의 ‘부활’과 ‘향수’ 모두를 느끼게 해준다. 구룡성채를 배경으로 삼은 것도 그렇고 성룡, 유덕화, 장국영, 홍금보, 이소룡에 이르기까지 홍콩영화 팬들로 하여금 단숨에 추억 버튼을 누르게 만든다. 액션 연출은 더더욱 놀랍다. 지난 시간 특수효과에 매몰되어 본질을 도외시했던 여러 홍콩영화들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 그를 최소화하고 쉼 없는 액션의 연쇄로 도파민을 폭발시킨다. 2000년대 이후 특수효과가 주도하던 홍콩 장르영화들과 달리 그런 아날로그적 발상이야말로 과거 홍콩 장르영화의 향수를 짙게 머금고 있다. 구룡성채 내부의 이곳저곳을 최대한 활용하고 맨손 액션에 더해 다양한 무기류에 이르기까지, 1980년대 최전성기 홍콩 장르영화의 활력으로 가득하다. 리얼한 액션의 경연장으로서 무수한 고수들이 득시글대는 ‘무림’이나 ‘강호’처럼 구룡성채를 묘사한다.

〈구룡성채: 무법지대〉 세트장 내부 (사진=주성철)
〈구룡성채: 무법지대〉 세트장 내부 (사진=주성철)
〈구룡성채: 무법지대〉 세트장 내부 (사진=주성철)
〈구룡성채: 무법지대〉 세트장 내부 (사진=주성철)

‘홍콩 액션영화의 화려한 부활’이라는 평가를 단박에 수긍하게 만드는 작품이지만, 정바오루이 감독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서의 환기이다. 홍콩의 축소판이라고 불러도 좋을 구룡성채에 대한 묘사를 통해, 결국 그곳을 묵묵히 채우고 살았던 ‘홍콩 사람’들을 따뜻하게 묘사한다. 구룡성채에는 삼합회의 조직원들만 살던 곳이 아니었다. 당시 구룡성채에는 아침마다 누들 반죽을 하고 에그타르트를 만들며 돼지고기를 삶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엔딩 장면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구룡성채: 무법지대〉
〈구룡성채: 무법지대〉
〈구룡성채: 무법지대〉
〈구룡성채: 무법지대〉

당시 2024년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아 관객과의 대화(GV) 시간을 가진 정바오루이 감독은 그 엔딩 장면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1980년대 홍콩의 치외법권 지대로 남아 있던 구룡성채라는 공간의 어두운 면에만 집중하고 싶지 않았다. 많은 범죄가 일어나는 장소였지만, 한편으로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추억이 깃든 장소이기도 했다. 그런 점을 중요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제작비의 절반 가까이 구룡성채 세트를 제작하는 프로덕션 디자인 비용으로 썼고, 직접 그곳에서 살았던 원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작품을 준비했다. 〈구룡성채〉에 홍콩을 향한 나의 변함없는 사랑을 담고 싶었다.” 그 사랑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구룡채성공원의 〈구룡성채〉 세트장이다.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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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와 하우스트래블이 함께 하는 홍콩 무비투어, 그 다섯 번째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투어의 핵심 테마는 영화를 통한 홍콩의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었다. 19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한 오우삼 감독, 양조위 주연의 〈첩혈가두〉(1990), 홍콩의 고즈넉한 해변 마을 섹오비치를 배경으로 스타를 꿈꾸는 단역배우 주성치의 일상을 그린 〈희극지왕〉(1999), 그리고 1980년대 홍콩을 상징하는 혼돈의 무법지대 구룡성채를 재현한 〈구룡성채: 무법지대〉(이하 〈구룡성채〉, 2024)에 이르기까지, 옛 홍콩의 향수를 깊이 느끼고 돌아온 ‘홍콩 레트로 무비투어’라고나 할까. 각각 양조위와 주성치, 그리고 류준겸에 이르기까지 홍콩영화계의 세대교체를 느낄 수 있는 여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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