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레트로 무비투어 ① 양조위의 '첩혈가두', 삼수이포 메이호 하우스에서 홍콩 역사 공부

1953년에 ‘섹킵메이 대화재’ 이후 지어진 대규모 공공주택 '메이호 하우스'는 〈첩혈가두〉의 무대가 됐다.

메이호 하우스 외부 (사진=주성철)
메이호 하우스 외부 (사진=주성철)

씨네플레이와 하우스트래블이 함께 하는 홍콩 무비투어, 그 다섯 번째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투어의 핵심 테마는 영화를 통한 홍콩의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었다. 19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한 오우삼 감독, 양조위 주연의 〈첩혈가두〉(1990), 홍콩의 고즈넉한 해변 마을 섹오비치를 배경으로 스타를 꿈꾸는 단역배우 주성치의 일상을 그린 〈희극지왕〉(1999), 그리고 1980년대 홍콩을 상징하는 혼돈의 무법지대 구룡성채를 재현한 〈구룡성채: 무법지대〉(이하 〈구룡성채〉, 2024)에 이르기까지, 옛 홍콩의 향수를 깊이 느끼고 돌아온 ‘홍콩 레트로 무비투어’라고나 할까. 각각 양조위와 주성치, 그리고 류준겸에 이르기까지 홍콩영화계의 세대교체를 느낄 수 있는 여정이기도 했다. 홍콩의 더위가 막 시작될 즈음인 지난 5월 15일부터 17일까지 2박 3일의 여정을 전한다.


메이호 박물관 사진 (사진=주성철)
메이호 박물관 사진 (사진=주성철)

홍콩 구룡반도, 삼수이포의 매력에 빠져든 순간 ‘내가 왜 그동안 구룡반도를 멀리 했던가’ 하는 후회가 밀려든다. 1967년에서 시작하는 오우삼의 〈첩혈가두〉에서 동네 친구 양조위, 장학우, 이자웅이 우정을 키우며 뛰어놀던 곳이다. 지금도 홍콩을 여행하면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인데, 영화에서도 발코니 이곳저곳으로 빨래를 내걸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 세 친구가 살던 아파트는 현재 ‘메이호 하우스 유스호스텔’(YHA Mei Ho House Youth Hostel)이라는 이름으로 딱 한 동만 남아 있다. 바로 1954년 대규모로 지어진 공공주택의 흔적이다. 홍콩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당시 위에서 내려다보면 H 모양을 유지하고 있던 한 개 동을 남겨 유스호스텔로 만든 것. 복도식 H 구조의 아파트이기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는 아무런 비밀이 없다. 늘 따뜻한 표정으로 친구들을 걱정하는 양조위 입장에서 늘 불만 가득한 얼굴로 집에 있는 이자웅이나, ‘어디서 이런 놈이 태어난거야!’ 라며 늘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는 장학우를 보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그렇게 세 친구는 서로 하루종일 뭘 하고 지내는지 다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첩혈가두〉
〈첩혈가두〉

메이호 하우스의 역사는 이렇다. 1950년대 들어 중국 본토에서 무수히 많은 이주민들이 홍콩으로 밀려들기 시작했고, 삼수이포와 그 옆 동네인 섹킵메이에 광범위한 판자촌이 형성됐다. 그런데 1953년에 ‘섹킵메이 대화재’라 불리는 참사가 일어났고,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졸지에 집 잃은 난민이 되면서, 홍콩 정부는 1954년에 그들을 수용함과 동시에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공공주택을 지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구조적으로 ‘H’ 블록 모양을 하고 있고 연속적인 발코니가 이어진 모더니즘 건축 양식의 아파트 건물들이 수십 개 지어진 것이다. 최소한의 공간을 활용해 최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구조 설계 및 시공으로 빠르게 화재 참사 희생자들에게 다소 저렴한 거주 공간을 제공할 수 있었다.

메이호 하우스 박물관 (사진=주성철)
메이호 하우스 박물관 (사진=주성철)
메이호 하우스 박물관 (사진=주성철)
메이호 하우스 박물관 (사진=주성철)

메이호 하우스에는 1946년 중국 광저우에서 태어난 오우삼 어린이도 살고 있었다. 〈첩혈가두〉 속 삼수이포는 바로 청년 오우삼이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하던 제2의 고향이었던 셈이다. 그만큼 〈첩혈가두〉는 오우삼의 혼란스런 청년기의 기억이 양조위라는 배우의 몸을 빌려 담아낸 반(半)자전적 영화다. 게다가 메이호 하우스가 매력적인 이유는, 건물 뒤편으로 등산하듯 오르면 나오는 가든힐(Garden Hill)이 홍콩 사람들의 SNS 인증 사진을 찍는 성지가 됐기 때문이다. 요즘 홍콩에서 가장 핫한 케네디 타운 사진이나 오래도록 인기 있는 익청빌딩 사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야경 사진을 SNS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양조위와 장학우가 영화에서 밤낮으로 패싸움하던 동네 뒷산 가든힐이 알고 보니 굉장히 멋진 곳이었다.

〈첩혈가두〉
〈첩혈가두〉
〈첩혈가두〉
〈첩혈가두〉

〈첩혈가두〉는 당시 삼수이포 주변, 그러니까 구룡반도 내륙의 정경을 굉장히 잘 담아내고 있는 기록영화로서도 큰 의미가 있다. 삼수이포 공공저택의 이곳저곳을 면밀하게 담아낸 것은 물론, 당시 하나둘 철거되기 시작하던 주변 제조업 공장들의 모습도 잘 담겼다. 그때까지 정말 많은 홍콩영화들을 봐왔지만 ‘공장 굴뚝’을 본 것은 〈첩혈가두〉가 처음이었다. 삼수이포 일대는 1970년대까지 섬유산업으로 융성한 공업단지였는데, 영화에서 양조위의 여자친구가 일하던 공장이자 파업이 벌어지던 공장이 바로 그런 섬유공장일 것이다. 당시 〈첩혈가두〉를 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장 굴뚝과 더불어 홍콩영화에서 처음으로 노동자들의 ‘시위’를 봤다는 것이다. 영화 속 시위 장면은 홍콩 역사에서 이른바 ‘67 폭동’이라 불리는 1967년 홍콩의 반영 시위다. 처음에는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구룡반도 공장의 노동쟁의로 시작하여, 만연한 빈부 격차에 대한 불만을 포함하여 관료의 부정부패와 결합한 영국의 홍콩 식민정부의 억압과 독재에 항거하는 대규모 시위로 번져 나갔다. 오우삼도 당시 사회운동에 열렬히 참여했던 청년이었다. 영국군과 경찰의 과잉 진압이 계속되는 가운데 사제 폭탄까지 만든 시위대는 결사항전의 자세로 맞섰다. 쉽게 치유되기 힘든 막대한 재산상의 피해와 인명피해를 낳았지만, 1960년대 들어 급격하게 성장하던 분위기 속에서 영국이나 중국 모두와 차별화되는 홍콩만의 정체성이 성립되는 계기가 됐다. 그로부터 50여 년 뒤 일어난 반중 시위와 우산혁명을 그와 연결 짓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일이다.

메이호 하우스 박물관 (사진=주성철)
메이호 하우스 박물관 (사진=주성철)
메이호 하우스 박물관 (사진=주성철)
메이호 하우스 박물관 (사진=주성철)

현재 메이호 하우스에서 가장 관심가지고 볼 것은 박물관이다. 당시 이곳 공공주택의 역사를 알려주고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박물관이 몇 개 층에 걸쳐 풍성하게 꾸려져 있다. 그걸 다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홍콩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다. 그중에서 좁은 입구 앞에 역시나 조그만 테이블과 등받이 없는 의자가 재현된 방을 보자마자 눈물이 났다. 바로 거기 앉아 홀로 담배를 피우던 양조위는 창밖으로 “평생 구걸이나 하고 살아라, 이 쓸모없는 놈아!”라는 말을 들으며 집에서 쫓겨나는 친구 장학우를 만나 집을 나간 뒤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앞서 결혼하는 친구 양조위에게 목돈이라도 쥐어주고 싶었던 장학우는 검은 돈을 만질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큰 부상을 입고 말았다. 바로 자기 때문에 집에서 구박받고 부상까지 입은 친구를 모른 척 할 수 없는 양조위는 복수에 나섰고,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뒤 “우리 나중에 성공해서 벤츠 타고 다시 돌아오자”는 이자웅과 함께 한창 전쟁 중이던 베트남으로 떠났다. 그처럼 오우삼은 자신이 청년기에 겪었던 홍콩 사회의 혼란과 비슷한 시기 베트남전을 통해, 앞으로 닥칠 1997년 홍콩의 본토 반환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난민이 된 베트남 사람들처럼 미래의 홍콩 사람들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근심으로, 액션 일변도의 홍콩 누아르의 의리가 구체적인 역사의 시간 속에 놓이게 된 것이다. 홍콩을 향한 오우삼 감독의 변함없는 애정이랄까.

▶ 홍콩 레트로 무비투어 기사는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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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홍콩 개봉 당시, 역대 홍콩 박스오피스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정바오루이 감독 〈구룡성채: 무법지대〉(이하 〈구룡성채〉, 2024)는 1980년대 홍콩 장르영화 유산을 적극적으로 끌어온다. 사실상 그것 자체가 목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이제는 사라진 ‘구룡성채’(九龍城寨)라는 공간 자체가 그를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다. 왕가위 감독 〈아비정전〉(1990)의 마지막 장면, 담배를 입에 문 양조위가 외출을 준비하는 낡은 집 장면이 바로 구룡성채에서 촬영됐다. 홍콩으로 건너와 은행강도를 벌이던 중국 본토 친구들의 비극을 그린, 맥당웅 감독 〈성항기병〉(1984)에서 출구 없는 미로에 갇혀버린 주인공들이 최후를 맞이한 곳도 바로 구룡성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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