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부다페스트를 지나 파리로 향하는 유럽 횡단열차 안. 대학생인 제시(에단 호크 분)와 셀린느(줄리 델피 분)는 좁은 공간에서 첫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곧 식당 칸으로 옮긴 그들은 시간이 흐르는 걸 느끼지 못할 만큼 즐거운 대화를 나누죠. 서로에게 강하게 끌린 이들은 헤어짐이 아쉬워 중간역인 비엔나에 내려 하룻밤 데이트를 즐깁니다. 전차 맨 뒷자리에 앉아 진실게임을 하고 레코드 숍에 들려 LP를 듣고, 놀이공원 관람차에 올라 키스를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날이 밝고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각자 갈 길이 다르니 일단 연락처를 나누고 헤어져야겠죠? 하지만 그들은 연락처를 교환하는 대신 6개월 후 다시 이곳에서 만날 것을 약속합니다. 이런!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예요.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는 건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절호의 기회인데! 물론 당시에는 이들의 운명적인 만남과 쿨한 헤어짐이 오히려 영화에 힘을 보태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십 대는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하고, 오히려 그 불확실함이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할 때도 있으니까요.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비포 선라이즈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에단 호크, 줄리 델피

개봉 1995 오스트리아,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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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9년 뒤. 영화<비포 선라이즈>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영화<비포 선셋>이 찾아왔습니다. 다시 찾아온 감독과 배우들이 너무 반가웠고, 영화 속 제시와 셀린느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그들은 6개월 후에 비엔나에서 만났던 걸까요? 아쉽게도 그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6개월 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고 이후에도 엇갈림이 한 번 더 반복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서로 떨어져 있던 지난 9년간 그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제시는 한 아이의 아빠이자 소설가가 되어 뉴욕에 살고 있고 정치와 경제, 역사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셀린느는 환경운동가가 되어 파리에 머물고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각자의 삶을 살던 이들이 재회할 수 있던 건 제시의 소설 덕분이었죠.

서로 떨어져 있던 시간 때문일까요? 예전엔 눈빛만 봐도 모든 걸 알고 같았던 두 사람의 대화는 사사건건 충돌하고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 부질없는 공방 끝에 매번 확인하게 되는 건 서로 다른 공간에서 흘려보낸 세월의 위력뿐이죠. 하지만 영화 말미에서 서로의 진심을 알아챌 것 같은 분위기가 무르익습니다. 그들은 난 내 평생보다 그 하루를 더 잘 기억해라고 말하는 운명의 상대니까요.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하기에 9년이라는 공백은 무겁게 느껴집니다. 이제는 세월의 힘이 만만하지 않다는걸, 그리고 선택 뒤에는 어떤 식으로든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아는 나이가 됐으니까요. 이번에도 제시와 셀린느의 미래는 열린 결말로 끝이 납니다.

비포 선셋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에단 호크, 줄리 델피

개봉 200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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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9년 후, <비포 미드나잇>으로 찾아온 그들은 함께였습니다. 그래서 기뻤고 그래서 걱정했습니다. 그들 사이에 이전까지는 없었던 현실이라는 묵직한 녀석이 끼어있었거든요. 아들을 두고 이혼한 제시는 방학을 맞아 아빠에게 놀러 왔다 떠나는 아들을 보내기 아쉬워하고, 제시와의 사이에서 쌍둥이 딸이 생긴 셀린느는 일과 가사에 치여 고민하죠. ‘하면 할 것처럼 누구보다 죽이 잘 맞았던 이들은 당신은 가끔 헬륨을 마시고 난 산소를 마시는 것 같아.”라는 대화를 나눌 정도로 서로에 대한 불평과 원망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틈만 나면 서로의 입장을 내세우며 지지 않기 위해 각자의 말을 멈추지 않는 부부가 됐습니다. 사랑의 판타지는 이렇게 끝나는 걸까요? 하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던진 비난의 말 뒤로 아직 남아있는 사랑이 느껴집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제시와 셀린느는 각자가 지켜온 사랑이 변할까 봐, 상대가 나로 인해 진저리를 칠까 두려웠을 뿐이죠.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셀린느는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이번에도 기차에서 내릴 거야?”라고 묻고, 제시는 대답합니다. “그럼! 그게 내가 지금까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인데!”

비포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 관객과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겁니다. 영화 속 제시와 셀린느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18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관객인 나의 삶도 그만큼의 무게로 흘러갔으니까요. <비포 선라이즈>에서 풋풋하게 사랑을 고백하던 에단 호크의 얼굴에서 부쩍 늘어난 주름을 발견할 때, 요정처럼 해맑게 웃던 줄리 델피의 얼굴에서 중년의 수다쟁이 아줌마의 모습을 볼 때 관객들은 그들도 우리처럼 나이 들고 있음을 느낍니다. 세월의 무게를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다는 동질감을 주는 거죠.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영화이고, 사랑했던 시간에 관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9년 뒤, 다시 제시와 셀린느가 찾아와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비포 미드나잇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에단 호크, 줄리 델피, 샤뮤스 데이비 핏츠패트릭

개봉 201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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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메뉴 따라하기

영화 <비포 미드나잇> 첫 장면은 그리스의 칼라마타Kalamata 공항입니다. 그들이 여름휴가지로 선택한 이곳은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지방, 메시니아 주의 주도로 올리브가 무척 유명한 곳입니다. 이 올리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올리브 품종 중 하나죠. 칼라마타 올리브는 지방 함량이 높고 고소한 터라 시중에 판매하는 올리브를 고를 때 칼라마타가 붙은 제품을 사면 실패할 일이 적답니다.

영화 초반,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장면과 그리스 식탁을 차려놓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에선 젊은 커플, 중년의 부부인 제시와 셀린느, 노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함께 등장하는데 각각 연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비포 시리즈를 한데 모아둔 것처럼요! 가끔 <비포 미드나잇>영화가 떠오를 때면 영화의 배경이 됐던 그리스를 떠올리며 칼라마타 올리브를 넣어 그리스식 샐러드를 만들어 먹곤 합니다. 그 레시피를 공개할게요.

그리스식 샐러드

재료
페타치즈 50g, 방울토마토 5, 칼라마타 올리브 7, 샐러드 채소 적당량, 오이 1/2
드레싱 : 다진 양파 1 큰 술, 다진 케이퍼 1 작은 술, 디종 머스터드 1 작은 술, 화이트 와인 발사믹비네거 3 큰 술, 1/2 큰 술, 올리브오일 6 큰 술, 소금과 후춧가루 조금씩
파메산 튀일 : 파메산 치즈 간 것 20g


▶ 만들기
1. 방울토마토는 씻어서 2등분 하고 오이는 씻어서 2등분 한 뒤 필러로 얇고 길게 썬다.
2. 샐러드 채소는 흐르는 물에 씻어 한입 크기로 뜯는다. 올리브는 씨가 있으면 제거한다.
3. 드레싱 재료 중 올리브오일을 제외한 나머지를 잘 섞은 뒤 마지막에 올리브오일을 넣어 다시 한 번 섞는다.
4. 곱게 간 파메산치즈를 오븐 팬에 올린 뒤 180도 오븐에 치즈가 녹을 때까지 굽는다.
5. 접시에 샐러드 채소와 페타치즈, 다른 재료들을 얹고 드레싱을 곁들인다


파란달 /  요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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