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의 세계〉, 6살 클레오는 모르는 글로리아의 세계

<클레오의 세계>는 분명 따뜻한 영화이다. 영화는 6살 꼬마 클레오와 보모 글로리아의 유대와 사랑을 담는다. 티 없이 맑은 클레오의 웃음소리와 부드러운 파스텔 색감의 애니메이션으로 영화는 더욱 포근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클레오의 세계>에는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클레오가 보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돌봄 노동자이자 경제 이민자인 흑인 여성 글로리아의 세계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건 보도자료에 적힌 한 줄 때문이다. ‘오랫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휴식기를 보낸 마리 아마슈켈리 감독은…’ <클레오의 세계>를 연출한 아마슈켈리 감독은 2014년 영화 <파티걸>로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했다. <파티걸>은 제67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과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앙상블상을 수상했다. 장편 데뷔작으로 영화계의 인정을 받은 아마슈켈리 감독은 경제적 위기로 인해 차기작 <클레오의 세계>로 돌아오기까지 9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것이 현실이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에도 놓치지 쉬운 ‘현실’이 있다. 감독 마리 아마슈켈리는 자신의 현실을 솔직히 밝혔듯 영화에서도 이를 감추지 않는다. 때문에 <클레오의 세계>는 ‘어린아이의 가슴 뭉클한 성장기’에 머물지 않는다. 마리 아마슈켈리가 <클레오의 세계>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불편한 진실을 슬쩍 들추어보고자 한다.

클레오의 세계에서 글로리아의 세계로

<클레오의 세계>에는 두 세계가 있다. ‘클레오’의 세계와 ‘글로리아’의 세계. 클레오의 세계는 온통 글로리아로 가득하다. 글로리아는 6살 클레오의 기억이 살아있는 그 순간부터 늘 함께했고 한결같은 사랑을 주었다. 그러나 모친상을 당한 글로리아가 고향인 카보베르데로 떠나면서 이야기는 변화한다.

아프리카 카보베르데가 고향인 글로리아는 돈을 벌기 위해 딸과 아들을 두고 프랑스로 건너왔다.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클레오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해 아이를 돌보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것을 계기로 글로리아는 프랑스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곳이 그가 본래 있어야 할 곳, 글로리아의 세계이다.

클레오는 여름방학을 맞아 카보베르데를 찾는다. 이때부터 클레오는 글로리아의 세계에 편입된다. 자신이 글로리아의 전부인 것 같았던 프랑스와는 달리 카보베르데에서는 글로리아에게 중요한 것들이 많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는 글로리아의 현실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다. 어찌 된 일인지 글로리아의 딸은 홀로 출산 준비를 하고 아들은 엇나가기만 한다. 마을 사람들 사이 글로리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고 그중에는 마음을 나누는 사내도 있다. 한편으로는 휴가철을 노려 짓던 호텔 공사가 진척되지 않아 골머리를 앓는다.

“신기해요. 난 글로리아랑 함께한 추억밖에 없는데”라는 클레오의 대사에는 스스로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던 아이의 쓸쓸함이 묻어있다. 클레오는 카보베르데에서 자신의 작은 존재감을 확인하고 받아들이며 비로소 성장한다. 마리 아마슈켈리 감독은 <클레오의 세계>가 ‘독립’에 대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이 영화는 고국으로 돌아가 더 이상 누군가의 직원이 아닌 독립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는 한 여성의 해방과, 성장하여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방법을 배우는 한 아이의 해방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독립을 향한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지만, 그 독립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바로 사랑입니다”라고 전했다.

우습지 않은 보모영화

마리 아마슈켈리 감독은 코미디가 아닌 보모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1994), <메리 포핀스>(1975) 등 과거 보모영화는 주로 코미디이거나 해당 캐릭터가 극에 재치를 더해주는 역할을 했다. 즉, ‘보모’라는 직업을 가진 인물이 극의 중심에 서지 못한 채 다른 이를 자극하는 요소의 캐릭터로 소비된 것이다. 반면, <클레오의 세계>는 극의 초반부터 보모 글로리아의 퇴직을 보여준다. 보모영화에서 보모가 사라지게 되면서 ‘보모였던’, ‘보모 일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저는 여러 번 질문을 던집니다. 사랑에 돈을 지불하면 진짜 사랑일까요? 그냥 직업일까요, 아니면 진심 어린 소명일까요?” 글로리아는 돌봄 노동자이다. 돈을 벌기 위해 아이를 돌보는 일을 선택했다. 마리 아마슈켈리 감독은 “돌봄 노동자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그 정서적 유대감이 때때로 미리 정의된 업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사회가 신성시하는 ‘모성’의 개념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을 제시한다. 단순한 사회 기능적 의미로 존재하던 보모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에 대한 그의 사랑이 부모의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 나라와 가족을 떠나는 여자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클레오의 세계> 대본 작업 중 읽은 리타 라우라 세가토 (Rita Laura Segato) 작가의 에세이 『블랙 오이디푸스』를 언급했다. 『블랙 오이디푸스』 표지에는 19세기 화가 장-바티스트 드브레의 그림이 있는데, 흑인 여성이 백인 아이를 자랑스럽게 안고 있는 모습이다. “이 그림의 제목은 ‘유모의 품에 안긴 돈 페드로 2세’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하인'으로 변화했다. 수년에 걸쳐 보모의 지위는 하인으로 축소된 것이다”고 말한 감독은 돌봄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흑인 보모와 백인 아이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은 <클레오의 세계>뿐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영화 <헬프>(2017)가 있다. 2009년 출간된 캐스린 스토킷 작가의 소설 『헬프』를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1960년대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는 백인 가정에서 일하는 흑인 가정부들의 고통을 담는다. 각종 멸시와 거친 언행이 오고 가는 중 흑인 보모 에이블린(비올라 데이비스)의 손에 자란 스키터(엠마 스톤)만이 그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인다.

“전 세계 곳곳에서 매일 자신의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감독이 글로리아를 돈을 벌기 위해 타국으로 건너온 ‘경제 이민자’로 설정한 이유는 그에게 낯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로리아 역을 맡은 배우 일사 모레노 제고(Ilça Moreno Zego) 역시 본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을 했던 이주 노동자였다.

일사 모레노 제고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대본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었다는 감독은 경제 노동자의 자녀들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세자르 역을 맡은 고메스 타바레스 또한 어머니가 프랑스에 살고 있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페르난다 역의 아브나라 고메스 바렐라도 그렇고요.” 극 중 글로리아의 딸과 아들 역을 맡은 배우들 역시 실제로 어머니가 경제 이민자로 떠나면서 돌봄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의 아이를 두고 타국의 아이를 돌보는 경제 이민자 여성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엄마를 빼앗기는 그들의 자녀들. 이것이 현실 속 수많은 글로리아의 세계이다.

<클레오의 세계>에는 양립해야 하는 두 세계가 있다. 이별 직전 글로리아가 클레오에게 하는 “서로를 떠나 행복해지자”라는 말은 다소 매정하게 들릴 수 있다. 클레오는 마지막까지 돌아보지 않는 글로리아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지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사랑하는 거 잊지마”와 “맹세해요”로 이어지는 모든 순간, 두 사람의 진심이 느껴지고 그들이 서로를 떠나 행복하기를 바라게 된다. 클레오 역시 가려진 등 뒤로 눈물을 쏟아내는 글로리아를 언젠가는 이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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