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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명화] MBTI 시대 이전엔〈B형 남자친구〉가 있었다

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우리 남편의 MBTI는 INFP다. INFP가 무엇이냐? 철자 하나하나 뜯어 소개하기 보다 이 한마디면 정리가 된다. 속칭 ‘찐따’로 분류되는 MBTI. 물론 INFP로 분류되는 독자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이 글을 가장 먼저 읽은 편집자부터 INFP임을 덧붙인다-편집자 주) 하지만 이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남편의 MBTI가 꼭 필요하다.


MBTI가 유행하기 이전에는 바야흐로 ‘혈액형의 시대’가 있었다. A형은 소심하고, B형은 자유분방하며 O형은 성격 좋다는 분류. 아차차 AB형이 빠졌다. AB형에게 다시 한번 위로를 전하자면 이들의 성격은 ‘또라이’로 분류된다. 혈액으로 성격을 구분 짓다니. 이게 무슨 얼토당토않는 이야기냐고 하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때는 심지어 태어난 날짜로도 성격을 구분 지었다.

 

B형 남자라고 들어봤니

영화 <B형 남자친구>야말로 그 시대에 딱 맞는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영화는 운명 같은 사랑을 믿는 여대생 하미(한지혜)가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영빈(이동건)에게 첫눈에 필이 꽂히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훤칠한 키에 탄탄한 몸매, 게다가 사슴처럼 큰 눈망울과 오똑한 콧날까지. 반하지 않을 래야 않을 수 없는 조건이다. 하지만 영빈에게는 큰 단점이 있다. 바로 ‘B형 남자’. 혈액형에 무지한 이들은 이게 왜 단점이냐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그때의 B형 남자는 만나서는 안 될 남자의 고유명사와도 같았다.


솔직하고 독창적이지만 자기중심적이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기로 유명한 B형 남자. B형 남자를 사귀어봤거나 사귀고 있는 여성들은 급기야 자신들의 경험담을 인터넷 블로그나 미니홈피 등에 쏟아내며 서로를 위로하기 시작했었다. 특히 그녀들은 B형 남자들의 몇몇 특이한 행동들에 서로 공감을 표시했으며, 나름대로 B형 남자 다루는 법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른바 B형 남자는 나쁜 남자로 손꼽히게 된 것.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 나쁜 남자에 끌린다.

 

B형 남자가 어때서!

하미도 영빈에게 끌린다. 물론 처음은 겉모습 때문이었다. 대학생 벤처 사업가에 집은 없어도 차는 필수품인 폼생폼사 영빈. 게다가 영빈은 다양한 이벤트로 하미를 사로잡는다. 대학생은 가기 힘든 고급 일식집을 데려가는가 하면 당당함과 유쾌함으로 시종일관 하미를 웃게 한다. 이만하면 “혈액형이 어때서!”라고 외칠 법도 하다. 하미는 말한다. “너무 멋있어~ 우리 오빠!”

 

 

"INFP가 어때서?" 나 또한 외친다. B형 남자와 마찬가지로 INFP도 편견일 뿐이다. MBTI 세계에서 사회생활 부적응 유형으로 꼽히는 대표 유형이 바로 INFP다. 내향적이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산다는 이들 성향을 두고 온라인에서는 각종 '밈'까지 만들어진다. 대부분은 친구들과 불화하는 '괴짜' 캐릭터로,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이미지다. 어느 회사에서는 'INFP 안 뽑습니다'라는 공고까지 떴다고 한다. INFP가 찐따로 분류되는 이유는 아마 눈치를 많이 보기 때문도 있을 것. INFP를 치면 나열되는 특징들을 나열해 보자면... ‘우유부단’ ‘한번 들은 말 잊지 못하고 생각’ ‘남 신경 많이 씀’ ‘잡생각 많음’.


안타깝게도 나는 ‘마이웨이’로 꼽히는 MBTI인 ESTP다. INFP의 상극을 쳤을 때 ESTP가 자주 거론될 정도로 안 맞다고 보면 된다. 여태껏 우리 부부가 안 맞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안 맞기보다는 왜 저렇게 생각하지? 라는 대목은 있었다.


음, 예를 들면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한다는 점. 남 일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다는 점. 이를테면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옆 커플이 싸우는 내용을 모두 기억했다가 나에게 나열하곤 한다. 에휴! 난 궁금하지가 않아요!
 

A형과 B형도 상극!

 <B형 남자친구>의 관전 포인트는 하나 더 있다. 바로 A형 여자 하미. 소심한 A형과 자유분방한 B형은 상극으로 분류된다. 처음에는 하미가 가지지 못한 자유분방함이 좋았다. 하지만 자유분방함도 사실 한 끗 차. 자유분방함이 배려가 없다고 느끼는 순간 하미는 점점 지치기 시작한다.


영빈은 선물 받은 장미꽃을 다시 가져가 되팔기도 하고 백화점 경품권으로 옷을 사주는 등 B형 특유의 쪼잔함으로 당황하게 만든다. 게다가 그가 즐기는 데이트란 남의 사무실에서 몰래 허들 시합을 하거나 고층 빌딩 엘리베이터에서 슈퍼맨 놀이를 하는 등 기상천외하고 엽기적. 시간이 갈수록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영빈이 하미는 힘들다.

 

 

하지만 하미는 영빈에게 대 놓고 말하지 못한다. 그것이 A형 여자의 특징이라면 특징.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두다 펑 터뜨리는 날. 그날에 영빈과 하미는 이별한다. 그리고 영빈은 그제서야 하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확인한다. 곁에 있을 땐 몰랐으나 없으니 느껴지는 참사랑이랄까. 뒤늦게 하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영빈은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려고 노력하지만 모두 헛수고가 되고 만다. 바로 하미는 A형 여자이기 때문. 한번 맘이 돌아서면 좀처럼 쉽게 돌이킬 수 없는 하미다.

다시 한번 생각해봐

달라서 좋은 점도 있다구

상극은 양날의 검이다. 맞지 않아 헤어질 수 있지만, 또 맞지 않아 끌릴 수도 있다. 오죽하면 god 앨범 중에는 '반대가 끌리는 이유'라는 노래도 있지 않는가. 나는 INFP 남편이 싫지만은 않다. 내가 무심히 놓친 것들을 남편은 하나하나 캐치한다. 예를 들자면 내 말에 상처받은 이의 표정이나, 내 무심함에 상처받은 이의 서운함.


물론 남편도 ESTP 아내를 부러워한다. 사서 걱정하지 않는 나의 긍정 마인드 혹은 될 대로 되라는 맘 편한 소리들. 남편이 항상 내게 하는 말이 있다. "스트레스 안 받고 살아서 자기는 참 오래 살 거야"


 

A형 여자 하미와 B형 남자 영빈도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여전히 서로가 이해 안 되는 성격은 있지만 그 간극은 사랑으로 좁힌다.

그렇다고 맹신은 하면 안 됩니다

<B형 남자친구>에는 맹신의 끝판왕 등장인물이 있다. 바로 혈액형 신봉자 채형(신이). 채형은 바로 하미의 사촌언니다. 혈액형으로 재혼 상담까지 하는 ‘혈액 신봉자’. 그녀는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말이 되냐는 영빈에 말에는 이렇게 답한다. “혈액에는 뇌 깊숙이 존재하는 유전자 시계가 있어요. 그것으로 사람의 성격과 운명을 좌우하죠.” 그러자 영빈은 발끈한다. “혈액형은 편견이죠. 수많은 사람들을 고작 4가지 분류로 한다는 게 말이 안됩니다.”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4가지로 구분 짓겠는가. MBTI도 그렇다. 물론 MBTI는 나름의 성격 테스트를 거치긴 했다. 심지어 MBTI는 16개로 사람을 나눈다. 혈액형의 4배이니 'MBTI는 과학'이라는 말이 나돌 만도 하다. 하지만 이 또한 맹신은 금물이다. 내 성격을 단정 짓는 증명서처럼 여길 필요는 없다는 것. MBTI가 같으면 "우린 성격 잘 맞겠다 깔깔깔". 혹시 다르면 배척당하는 기분. 회사에서 MBTI로 편가르기를 당했다는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들린다.


혈액형이건 MBTI건.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본질이다. 4가지로 구분 짓다, 16가지로 구분. 몇 년 후에는 더 정교해질지 모르는 성격 유형법 또한 기대해본다.

만 가지 유형쯤으로 구분되면

그때는 한번 맹신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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