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만큼이나 포스터도 걸작! '파묘' '헤어질 결심' '아가씨' 등을 작업한 엠파이어 디자인의 포스터

<파묘>의 해외 포스터가 처음 공개됐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포스터 가득 확대된 배우의 얼굴, 그 위에 먹으로 쓴 듯한,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자들이 빼곡히. 물론, 영화를 보고 나서는 이 글자들이 '험한 것'을 막기 위한 '경문'이라는 걸 알았지만, 당시 포스터를 봤을 때 '미지의 무언가'가 주는 위압감은 영화 <파묘>를 향한 기대를 하늘로 치솟게 했다.

 

(좌) '파묘' 국내 포스터, (우) 엠파이어 디자인의 '파묘' 해외 포스터

<파묘>의 국내 포스터와 해외 포스터의 차이는 유난히도 두드러진다. 국내 포스터는 각 캐릭터를 드러내는 데에 집중했다면, 해외 포스터는 특정한 감각을 이끌어내는 데에 집중한다. 특정한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 주된 목적인 장르 영화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해외 포스터가 작품과 일맥상통하게 구상된 셈이다. 아이코닉한 <파묘>의 해외 포스터, 어디서 만든 걸까?

 

엠파이어 디자인의 '파묘' 해외 포스터 다른 버전.

 

영화의 첫인상을 만드는 곳, 엠파이어 디자인은..

(좌)'킬 빌 - 1부'(2003), (우)'본 얼티메이텀'(2007)

<파묘> 인터내셔널 포스터를 작업한 엠파이어 디자인은 1996년 설립된 영국 회사로, 포스터 외에도 영화 예고편, 디지털 캠페인 영상 등을 제작하고 있다. 1996년에 설립된 만큼, '킬 빌' 시리즈, '토이 스토리' 시리즈, '007' 시리즈, '본' 시리즈 등 굵직한 영화의 포스터를 다수 담당했는데, 포스터가 하나같이 독창적이고 감각적이다. 영화의 첫인상을 담당하는 작업들이니만큼, 엠파이어 디자인이 영화의 흥행에 미친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좌)'스펜서'(2021) , (우)'007 스펙터'(2015)
(좌)'피그'(2021), (우)'이미테이션 게임'(2014)

그런데 엠파이어 디자인의 작업들은 단순히 ‘방에 걸어도 손색없을 만큼’ 미적으로 훌륭한 것만은 아니다. 작업물들은 ‘영화의 맛’을 잘 살렸다. 엠파이어 디자인은 순수 일러스트 포스터를 만들기도, 실사를 활용해 포스터를 디자인하기도 하는데, 주로 포스터에 여러 요소를 배치하기보다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극대화하거나 단순화해 표현하는 편이다. <파묘>(2024) <피그>(2021) <스펜서>(2021) <007 스펙터>(2015) <이미테이션 게임>(2014) 등이 대표적인 예다.

 

(좌)'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2022), (우)'너는 여기에 없었다'(2017)

또, 엠파이어 디자인은 유난히도 근사하고 맛깔스러운 타이포그래피를 잘 한다.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2022) <너는 여기에 없었다>(2017)의 포스터를 보시라. 또, 국내에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과감한 포스터를 만들기도 한다.

 

엠파이어 디자인이 작업한 과감한 포스터의 예시. (좌)'러브, 로지'(2014), (우)'스노우맨'(2017)

 

엠파이어 디자인과 박찬욱과의 인연

엠파이어 디자인은 특히나 박찬욱 감독의 영화 포스터를 많이 작업해왔다. 박찬욱의 <스토커>(2013)부터 <아가씨>(2016) <헤어질 결심>(2022) 등, 뇌리에 남는 인상적인 포스터들은 모두 엠파이어 디자인을 거쳤다. 엠파이어 디자인이 유난히도 박찬욱의 영화들을 많이 작업한 이유는 단순하다. 박찬욱이 그들의 작업을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이다.

 

엠파이어 디자인이 작업한 박찬욱의 '스토커'(2013) 포스터

엠파이어 디자인은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스토커> 포스터 작업을 시작으로 박 감독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는데, 박찬욱 감독은 <스토커>의 포스터를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한 나머지, 영화 <아가씨>가 2016년 칸영화제서 처음 상영되기 전에 직접 엠파이어 디자인을 직접 찾아가서 인터내셔널 포스터를 의뢰했다고 한다. 박 감독은 <아가씨>의 인터내셔널 포스터로 ‘칸영화제에서 눈에 띌 수 있고, 색다르며, 배우들이 모두 자국에서 대스타이기 때문에 배우들을 더욱 많이 등장시켜야 하는 한국 포스터보다 조금 더 모험적일 수 있는’ 포스터를 원했다.

 

엠파이어 디자인이 작업한 '아가씨' 포스터. 왼쪽은 국내용, 오른쪽은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해외용 포스터다. 자세히 보면 디테일들이 다른데, 마치 틀린그림찾기 하듯 찾아 보시라.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위와 같은 <아가씨> 포스터다. 엠파이어 디자인은 칸영화제를 몇 달 앞두고부터 <아가씨> 포스터의 작업을 시작했다. 스튜디오의 디자이너는 한국과 일본의 전통 회화를 닮은 포스터를 구상했다.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는 포스터 작업을 하다 ‘한국화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마치 영화의 이야기를 한 장에 집약한 듯한 전통 회화와 같은 포스터를 구상하게 된다. 영화 <아가씨>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실제로 <아가씨>의 포스터에서는 이 세 부분을 모두 찾아볼 수 있다.

 

여담으로, 엠파이어 디자인이 '아가씨' 포스터 작업 초기에 구상한 디자인은 위와 같았다. 사진=mubi.com

 

엠파이어 디자인이 후에 작업한 <헤어질 결심>(2022) 포스터 역시 <아가씨>처럼 한 장에 영화의 여러 장면이 담겼다. 여담으로, 엠파이어 디자인이 최근에 작업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2023) 포스터도 <헤어질 결심>과 비슷한 공식을 따른다.

 

엠파이어 디자인은 <아가씨>의 해외 예고편도 작업했는데, 이 예고편은 대사나 내레이션, 상황 설명, 기승전결이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대신, 예고편은 음악과 이미지로만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데에 집중했다. <아가씨> 해외 예고편은 국내에도 ‘스타일 예고편’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돼 ‘새롭다’ ‘독특하다’ 등의 반응을 낳았으며, 현재까지도 종종 회자되곤 한다.

 


엠파이어 디자인이 작업한 한국 작품들

(좌)'설국열차'(2013), (우)'파친코'(2022)

엠파이어 디자인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뿐만 아니라 한국 작품들의 포스터를 다수 작업해왔다. 특히 최근 들어서 엠파이어 디자인이 담당한 한국 작품이 늘어나고 있는데, OTT 플랫폼 등의 영향으로 국내 작품을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홍보해야 할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한국영화와 시리즈를 가리지 않고 엠파이어 디자인의 포스터를 찾아볼 수 있다. <설국열차>(2013) <파친코>(2022)와 같은 한국계 감독이 만든 글로벌 작품은 물론, 토종 OTT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인 <몸값>(2022)과 <운수 오진 날>(2023), '연니버스'를 잇는 영화 <반도>(2020)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독전 2>(2023) 등. 혹시나 추후에 엠파이어 디자인의 작업들을 만난다면 반갑게 인사하자.

 

(좌)'반도'(2020), (우)'독전'(2023)
'몸값'(2022)
'몸값'(2022)
'운수 오진 날'(2023)
'운수 오진 날'(2023)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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