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슈퍼히어로 영화 붐을 일으킨 이들 가운데 자주 간과되곤 하는 사람이 바로 프랭크 밀러다. 1980년대의 프랭크 밀러는 만화계의 구세주와 같았다. 그가 없었더라면 현재의 DC 유니버스 영화들이나 성공적인 배트맨 영화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프랭크 밀러는 남성적인 스토리를 선호하는 대표적 작가다. 그의 작품에는 몇몇을 제외하고 거의 일관되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일어나는 히어로, 억압적인 정부 또는 권위와의 투쟁, 또는 반정부적 테마가 등장한다.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이 최고의 그래픽 노블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그가 29살이던 1986년에 집필한 작품으로, 당시 프랭크 밀러의 작가적 역량은 절정에 올라 있었다. 1984년의 <로닌>, 1986년의 <데어데블: 본 어게인>, 그리고 1987년의 <배트맨: 이어 원>이 전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작품들인데, 모두 공통된 테마를 공유하면서도 각각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 영향을 미친 것들은, 30대에 접어드는 청년이 나이 먹고 노쇠해지는 것에 대해 느끼는 실존적 두려움, 당시 만연한 강력 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더티 해리등의 영화에서 볼 수 있던, 강력 범죄자들을 카타르시스 넘치는 방법으로 처단하던 히어로들에 대한 동경이다. 실제로 당시 프랭크 밀러는 불안감이나 우울감을 느낄 때마다 <더티 해리> 시리즈, 그 중에도 특히 3편인 <서든 임팩트>를 반복 시청했다고 하는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장시간의 휴지기 이후 귀환한 히어로'의 캐릭터를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크 나이트 리턴즈> 1960년대 후반 이후 코믹한 캐릭터로 전락해버렸던 배트맨을 다시 DC의 메인급 캐릭터이자 현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로 되돌려놓은 작품이다. 당장 1989년의 잭 니콜슨/마이클 키튼 주연의 영화 <배트맨이후로 나온 모든 배트맨 관련 영화, 나아가서는 모든 DC의 슈퍼히어로 영화들에 영향을 미쳤다. <배트맨 vs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 나오는 슈퍼맨과 배트맨의 대결 장면, 배트맨의 갑옷 등 세부 요소들도 전부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 처음 등장한 것들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다크 호스 코믹스에 성인 취향의 만화 <신 시티>를 성공적으로 연재하며 팬들의 큰 호응과 높은 판매고를 올리던 프랭크 밀러이지만, 2000년대 이후 작품들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예외적으로 <300>처럼 작품 자체로도 호평을 받고 영화화도 성공한 작품들도 있지만,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후속작 <다크 나이트 스트라이크스 어게인> 등 후반기 작품들은 전성기 시절의 작품에 비해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 그림체는 그로테스크하게 변했고 스토리는 부적격할 정도로 논리의 비약이 이뤄지거나 지나치게 정치적 색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팬들 사이에서는 2000년대 초반 프랭크 밀러가 정신질환이나 치매를 앓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돌기 시작했다.

그는 2011년 자신의 홈페이지에 월 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운동을 옹호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가 정치적 성향이 다른 많은 팬들의 항의와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같은 해에 출간된 <홀리 테러>는 평단과 팬들에게 외면과 혹평을 받았다. <홀리 테러>라는 제목은 프랭크 밀러가 그냥 즉흥적으로 그해에 지어낸 제목이 아니라 언젠가 쓰려고 수십년간 묵혔던 제목인데,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초고 제목이 다름 아닌 <홀리 테러>였다. 2011년 출간 당시 제목도 <배트맨: 홀리 테러>였고, 배트맨이 등장해 테러리스트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내용이었다고 전해지는데, 다행히도 편집부의 반대로 인해 배트맨 캐릭터는 전형적인 일반 히어로 캐릭터로 대체되고 내용도 대폭 수정되었다. 실제로 <홀리 테러>를 읽어 보면 내용이나 완성도를 떠나 작가 프랭크 밀러가 상당히 공을 들인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단순 글자 수만 봐도 그러하고, 패널 구성이나 그림체 등도 꽤 정성들여 작업한 결과물이라는 것이 보인다.

최근에도 프랭크 밀러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작품들이 거의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홀리 테러> 정도는 아니지만, 2016~2017년 연재한 <다크 나이트 리턴즈> 시리즈의 후속작인 9부작 <다크 나이트 III: 매스터 레이스>도 그다지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이 시리즈는 프랭크 밀러가 혼자 작업한 것이 아니라 글은 브라이언 아자렐로가 공동 집필하고, 그림은 아담 큐버트가 전담하였다. 아담 큐버트는 프랭크 밀러 특유 그림체를 최대한 모사하려 한 흔적이 보이고(그렇게 함으로써 거장에 대한 경의를 표하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브라이언 아자렐로는 DC 코믹스 편집부에서 프랭크 밀러에게 혼자 각본을 맡기기 불안했는지 따로 붙여준 작가이다. <다크 나이트 III: 매스터 레이스>는 각 권마다 작은 미니 코믹이 부록처럼 첨부되어 있는데, 프랭크 밀러 혼자 온전히 작업한 것은 이 미니 코믹뿐이다.

프랭크 밀러의 장점은 살리되 후배 작가들의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괜찮은 후속작을 만들어보려는 DC 코믹스 편집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크 나이트 III>는 전형적인 용두사미 결말을 보이며 독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프랭크 밀러는 다른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크 나이트 IV>는 혼자 작업하겠다고 밝혔지만, 후속작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최원서 / 그래픽 노블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