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캐릭터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대책 없는 52살의 양아치 아저씨. 그리고 말은 없지만 속 깊은 어른 같은 9살 소년. 엄마를 찾아 토요하시로 떠나려는 소년에게 뜻하지 않게 아저씨가 동행하게 된다. 토요하시까지 가는 여정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이 모든 일들은 양아치 아저씨의 대책 없음에서 시작된다.
여비로 받은 5만 엔은 경륜으로 다 날려버린다. 토요하시로 가는 길은 걷는 것과 히치하이킹밖에는 없다(또는 택시 절도가 있다). 그 여행길에서 만나는 이들과 그들과의 에피소드가 영화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그렇게 만난 이들 대부분이 어설프고 착하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신경림 시인의 문장이 마치 영화 속 등장인물들을 말해주는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소년은 엄마를 만나지만 다가설 수 없다. 이때만은 아저씨도 소년을 속 깊게 위로하고 달래려 한다. 짧은 여행이 끝나고 그렇게 또 한 번의 여름이 지나간다. 여름이 지나며 소년은 몸도 마음도 한 뼘 더 자랄 것이다. 52살의 아저씨도 함께 성장한다. <기쿠지로의 여름>은 두 남자의 성장영화다.
아름다운 여름의 풍경과 아련한 두 남자의 마음 사이로 피아노 멜로디가 흘러 다닌다. 그 멜로디는 너무나 명징해서 한 번 들으면 잊을 수가 없다.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음악가 히사이시 조가 만든 멜로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음악으로 명성을 얻은 그는 이후 미야자키 감독의 거의 모든 극장판 애니메이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도 그에게 곁을 내주었다. 1991년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기타노 감독과 함께 작업했다. <기쿠지로의 여름> 역시 그 작품 가운데 하나다. 엄마를 찾아 떠나는 소년의 간절한 마음, 소년과 함께하며 조금씩 변해가는 아저씨의 변화, 여름이 주는 푸른빛의 이미지, 그리고 여름밤의 공기. 히사이시 조는 이 다양한 감정과 여름의 풍경을 음악으로 표현해냈다.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건 앞서 언급한 그 명징한 피아노 선율이다. <기쿠지로의 여름> 사운드트랙에는 모두 12곡이 담겨 있지만, 거의 대부분 주제곡 ‘Summer’에서 피아노가 들려주는 메인 테마를 변주한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바이올린이 곡을 주도하는 ‘The Rain’의 촉촉함과 ‘Two Hearts’의 아련한 정서도 좋지만 <기쿠지로의 여름> 하면 단연코 이 메인 테마다.
그렇다고 앨범이 지루하게 들리는 것도 아니다. 편곡을 달리하고 악기 구성을 다르게 가져가며 각기 다른 느낌으로 영화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못난 놈’들과 함께 놀이를 하는 즐거운 순간에도 엄마를 갖지 못하는 소년의 먹먹한 마음과도 ‘Summer’의 메인 테마는 마법처럼 잘 어울린다. 단순한 것 같지만 좋은 멜로디는 이런 것이다. 히사이시 조는 그 하나의 좋은 멜로디로 영화의 감정과 풍경을 도우며 고양시킨다.
히사이시 조는 <기쿠지로의 여름>으로 제23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음악상을 받았다. 수상의 영예보다 더 값진 건 개봉 20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여전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지금 보아도 여전히 사람을 웃고 울게 만들고 음악 역시 영화의 생명력을 따라간다. ‘Summer’는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피아노 버전으로, 바이올린 버전으로, 첼로 버전으로, 다양한 악기 소리로 더 넓게 전파된다. 이 멜로디는 작고 소박하지만 이를 듣는 감정의 파동은 이처럼 넓고 무궁무진하다.
- 기쿠지로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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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기타노 다케시
출연 기타노 다케시, 세키구치 유스케
개봉 1999 일본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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