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백수라고 쓰고 종종 건달이라고 읽는 주인공 레보스키(제프 브리지스)의 삶은 어쨌든 폼 난다고 보기는 힘들다. 직업이 없으니 돈도 없고, 특별한 삶의 목표가 없다 보니 삶에 임하는 자세도 도대체 진지하지 못하다. 그렇게 남들에게 사소한 피해를 줘가며 개념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술을 마시고, 그러다 졸리면 자고, 일어나면 친구들과 볼링을 치며 시간을 죽이곤 하는 그에게 어느 날 사건이 벌어진다. 그를 동명의 거부로 오인한 괴한들이 찾아온 것. 부자 레보스키(데이비드 허들스톤)의 부인이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아 그 돈을 받아내기 위해 괴한들이 레보스키를 찾아온 것이다. 실수로 부자가 아닌 건달 레보스키를 두들겨 패고 카펫에 소변을 갈긴 그들은 사실을 알고 난 후 돌아가고 괴한들을 찾을 길이 없었던 레보스키는 카펫에 대한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부자 레보스키를 찾아간다.

부자 레보스키는 손해배상을 단칼에 거절하지만 건달 레보스키는 부자 레보스키의 비서 브랜트(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에게 레보스키가 아무 카펫이나 가져가라고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카펫을 들고 돌아간다.

그렇게 또 볼링을 치며 시간을 보내던 레보스키에게 부자 레보스키가 연락을 해온다. 카펫 때문에 그러나 하고 집에 찾아간 그, 하지만 실은 돈을 빌려 쓴 부자 레보스키의 아내가 납치되어 몸값을 전할 사람이 필요해 레보스키에게 연락을 해 온 것. 레보스키를 두들겨 팬 패거리가 납치범일 거라고 생각한 부자 레보스키가 그 패거리의 얼굴을 알고 있는 레보스키를 몸값 전달자로 고용하려 한 것이다.

그렇게 납치범들에게 전달할 돈 가방을 받은 레보스키는 볼링 친구 월터(존 굿맨)와 함께 몸값을 전달하기 위한 길에 나선다. 하지만 레보스키의 친구답게 월터도 딴생각으로 똘똘 뭉친 인물. 돈은 먹고 납치범들에겐 돈이 없는 쓰레기 가방을 던져 주자고 한다. 결국 월터는 가짜 가방을 던지고 진짜 가방은 차에 놔두게 되는데 그 차마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다. 그 없어진 차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레보스키에게 부자 레보스키의 딸인 마우드(줄리안 무어)가 찾아오면서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게 된다.

뭐 하나 생각한 대로 이뤄지는 일도 없고, 뭐 하나 운 좋은 일도 없는 그야말로 저질 인물들과 저질 사건의 퍼레이드들이 그야말로 코엔 형제의 작품답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데 영화 내내 나오는 볼링 장면들 속 볼링 핀들이 튕겨나가는 모습들이 마치 영화 내내 터지는 사건 사고들 같아 유쾌하다. 마치 영화 내내 레보스키가 마시는 칵테일 화이트 러시안처럼.

화이트 러시안은 유명한 칵테일인 블랙 러시안(칵테일을 잘 몰라도 이건 드셔보신 분들 많으시죠?)의 변종으로, 커피를 주 재료로 만드는 리큐르 깔루아에 보드카를 섞고 거기에 다시 크림을 넣어 만드는 칵테일이다. 깔루아 대신 드물게 베일리스나 일리 커피 리큐르를 쓰기도 하고 간편하게는 크림 대신 우유를 넣어 만들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레보스키는 커피 리큐르로 깔루아, 보드카로 스미노프를, 그리고 거기에 우유를 더해 마신다.

분량도 재료도 제각각이고 보통 보드카 45ml, 깔루아 15ml, 우유 30ml가 흔한 레시피이지만 IBA(인터내셔널 바텐더 협회)의 공식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보통은 섞어서 내놓지만 일부러 층을 어느 정도 남겨 내놓기도 한다.

IBA 홈페이지의 블랙 러시안, 화이트 러시안 설명. 50ml 보드카, 20ml 커피 리류크. 얼음으로 채워진 올드 패션드 유리잔에 재료를 붓는다. 부드럽게 젓는다. 참고: 화이트 러시안의 경우, 신선한 크림을 위에 올리고 부드럽게 젓는다.

화이트 러시안을 처음 마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만들기에 따라 물론 다르겠지만 맥X 아이스커피 생각이 난다는 것. 구체적으로야 알코올 맛도 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알코올 맛이 튀지 않는 스타일을 더 선호하는 터라 집에서 가끔 만들어 마실 때도 X 아이스커피가 생각나는 스타일로 보드카를 조금 적게 넣어 만드는 편이다.

인생 도처에 쓴맛 나는 일들만 가득한 레보스키지만 달달한 화이트 러시안을 마시는 동안은 잠시 귀찮은 일들을 잊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인간도 생명체고 생명체라는 건 결국 본능이 충족되면 행복한 건데 본능이 별건가. 배고프면 맛있는 걸 먹고, 목마르면 맛있는 걸 마시고, 쉬고 놀면 행복한 것이다. 하지만 삶이 그리 만만할 리가 없다. 레보스키만은 못해도 하루하루 정신없이 터지는 사건들 처리하고 덮다 보면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그렇게 인생은 흘러간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또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 삶이라, 가끔 숨 돌릴 틈이 있다면 또 나름 살만한 것이 삶일 텐데, 틈이야 만들기 나름이겠지만 기회가 되신다면 화이트 러시안을 만들어 마셔 보는 건 어떨까.

마티니 같은 칵테일과 달라서 만들기도 매우 쉬운 칵테일이니 커피와 술을 모두 좋아하신다면 집에서 간단히 만들어 드셔도 좋을 듯. 요새같이 후텁지근한 날씨라면 더욱더 어울릴 것이다. 

위대한 레보스키

감독 조엘 코엔

출연 제프 브리지스, 존 굿맨, 줄리안 무어, 스티브 부세미, 피터 스토메어, 데이빗 허들레스톤

개봉 199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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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렉 / 술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