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원작이 따로 있다는 건 창작자에게 꽤나 부담되는 일일 것이다. 히어로 코믹스의 실사화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매니아 격으로 히어로 코믹스와 캐릭터, 세계관에 통달한 이들이 전세계에 대다수 포진해 있기에. 하다못해 인쇄만화가 애니메이션화될 때도 그런데, 실제 배우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사화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오죽하랴.
이 모든 점을 고려할 때 히어로무비의 실사화는 절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기대하는 팬들이 많고, 히어로무비인 이상 제작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거기에 이미 실사화 이력이 있는 창작물을 리부트한다면? 전작의 평가가 좋건 나쁘건 부담감은 더 커진다.
히어로무비의 리부트는 지난 10여 년간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 가장 최근에는 <스파이더맨>이 있었고, <슈퍼맨>도 있었으며 <다크 나이트>(배트맨)도 있었다. <엑스맨> 시리즈도 리부트되어 전체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될 <엑스맨: 다크 피닉스>가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더불어 앞으로 리부트될 계획 중에 있는 작품도 많다. <그린 랜턴 군단>과 <판타스틱 4>의 리부트에 대한 기대는 오래 전부터 히어로무비 팬들의 관심사였다.
히어로무비의 리부트는 원작의 어떤 부분을, 얼마나 채용할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새로운 부분을 많이 넣어 가져갈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이미 저명해진 지 오래인 캐릭터를 다룬다는 점에 있어서도 그렇다. 해야 할 이야기가 분명히 존재하고, 새로이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지난 주 개봉한 <헬보이>의 리부트판은 이런 히어로무비의 리부트 프로젝트에 있어서 여러 가지 시사점을 갖고 있다. 아쉬운 점도, 재미있는 점도 있었다.
15년만의 귀환, 좀 더 대중적인 '헬보이'
<헬보이>의 실사화 이력은 총 3편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2004년과 2008년의 두 작품이 있었고, 며칠 전 개봉한 닐 마셜 감독의 2019년 리부트판이다. 전편은 연이은 흥행성적 저조로 원래 3부작이었다가 완전 취소되었고, 덩달아 스핀오프 프로젝트까지 날아간 지 오래지만 15년만에 리부트로 돌아온 것.
헬보이는 상당히 독특한 캐릭터다. 악마의 피를 타고났으며 전신이 붉고 털도 많이 나 있다. 스스로 자른 뿔 때문에 대놓고 악마처럼 보이지 않는다 뿐이지 원래 모습을 보면 훌륭한 악마다. 하지만 원작 코믹스에서는 성직자들과도 친하고, 성장기에 실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등 안 좋은 일도 많았지만 인간에 대한 증오심보다는 다정한 심성이 앞서는 캐릭터다. 악마의 태생이지만... 따뜻한 남자. 이 갭이 헬보이를 만든다고 할 수 있다.
론 펄먼이 주연한 2004년판 헬보이는 원작 코믹스와는 조금 다른 캐릭터로 설정되었다. 덩치도 크고 악마 태생에 강력한 존재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질풍노도 사춘기 소년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2019년판의 데이비드 하버 버전 헬보이는 좀 더 최근의 히어로무비에서 많이 등장하듯, 농담도 자주 하고 잘 웃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블랙하고 시니컬한 특징이 있었던 원작과는 둘 모두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원작이나 전편을 보지 않은 대부분의 관객들에게는, 새로이 등장한 헬보이가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2019년의 헬보이는 다크 히어로라기보다는… 혈통이 악마 쪽일 뿐 그냥 슈퍼히어로 스토리라고 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보인다. 아직까지 다크 히어로로서 파워풀한 인기를 누렸던 캐릭터는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니컬한 헬보이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어쩐지 아쉬울 수 있다.
엉성한 스토리라인을 극복하는 방식
2019년판 <헬보이>의 가장 큰 장점은 '보는 재미'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파워풀한 액션과, 판타스틱한 요소들을 표현하는 방식, 그리고 정말 가감없이 잔인한 고어 액션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호러무비를 방불케 하는 연출과 공포심까지 이어지지 않게끔 단순하게 나열한 액션씬들은 그야말로 오락영화다.
사건은 스피디하게 진행되며, 2시간은 정신없이 지나간다. 펜들힐, 티후아모, 다시 잉글랜드 등 각지를 오가며 펼쳐지는 사건은 정말 많고 다양하다. 하지만 스토리라인은 동일선상에 서 있으며 아주 단순하게 구분된다. 헬보이와 B.R.P.D.(초자연현상 연구 방위국) 그리고 오시리스 클럽과 니무에는 언뜻 삼각형 구도의 관계인 것 같지만 결국 니무에와 헬보이의 대결구도로 빠르게 굳어진다.
배경도 다양하고 사건도 많다. 캐릭터도 많고 해야 할 이야기도 많고 보여줘야 할 액션도 많다. 이 모든 걸 다 가져가기 위해서 이 영화가 포기한 것은 세부적인 개연성이다. 심정적인 전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당위성 같은 디테일한 설명은 생략했다.
거기에 살짝 지루하다 느껴지기도 전에, 기괴하기 그지없는 캐릭터들의 등장으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바바야가와 마녀들, 멀린, 자이언트 등 확실한 볼거리로 지루해질 틈을 주지 않는다. 잠깐 방심하면 사건을 놓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헬보이>는 속도감 넘치는 전개로 진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헬보이>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버전의 <헬보이> 두 편이 극찬을 받은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한국에서의 평가가 더 좋은 편인데, 로튼토마토는 11%로 시작해 겨우겨우 15%까지 올라온 상태고 메타크리틱은 30점대를 넘길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다.
2019년 <헬보이>가 집중한 것은 판타스틱한 요소들을 화려하고 파워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서만 영화를 만들면 개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조연 캐릭터들마저 어떤 당위성을 갖고 행동하기보다는 사건의 나열에 의해 움직이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결국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약간 의아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되기까지 한다.
히어로무비의 실사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지점일지도 모른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듯 히어로무비가 지고 있는 짐은 무겁다. 원작 팬들이 기대하는(그들은 팬인 만큼 영화의 약속된 관객일 것이기에) 부분들을 얼마나 가져갈 것인지, 새로운 것은 얼마나 보여줄 것인지, 그리고 그 요소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원작 팬들을 고려하는 부분만큼이나 너무도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 캐릭터를 전혀 모르는 일반 관객에게도 재미있는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인가”다.
파워풀한 액션, R등급다운 고어함, 기괴한 캐릭터들과 헬보이가 펼치는 전투, 기억에 남을 만큼 좋았다. 하지만 영화는 일러스트가 아니다. 어떤 장면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캐릭터가 행동하는 데는 그럴 수밖에 없는 당위성이 존재해야 한다. 그게 그 캐릭터의 신념 때문이건, 어떤 사건에 의한 이유 때문이건 스토리가 녹아들어야 액션씬도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개연성을 포기한 덕분에 <헬보이> 리부트판은 그저 고어하고, 파워풀하지만, 헬보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매력을 느끼기엔 부족한 작품이 되고 만다.
히어로무비의 리부트, 성패가 갈리는 지점
많은 히어로무비가 리부트를 거쳤다. 그 중에는 성공한 작품도 있지만, 그다지 성공에 가까이 가지 못한 작품도 있다. 그리고 리부트 작업 자체가 부담일 정도로 실패한 작품도 있었다.
어떤 취사선택을 하는가는 전적으로 스튜디오와 감독의 몫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헬보이>가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를 캐릭터의 대중성에서 꼽는다고 한다면(대중성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닐 마셜의 <헬보이>는 조금 더 최근 히어로무비의 히어로에 가깝게 구성해 대중성을 획득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캐릭터의 대중성은 그 캐릭터의 서사를 차분히 쌓아 공감대를 넓혀 가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히어로무비는 이제 일부의 매니악한 취미에서, 당당히 대중적인 인기 콘텐츠로 부상했다. 그런 만큼 과거 작품들에 대한 리부트 요구는 더 많아졌고, 기대도 커졌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수년간 여러 작품들이 리부트되었고 성공을 거두기까지 했다. 같은 캐릭터라 할지라도 영화마다 그려내는 색채는 다르고, 그 다름을 비교하는 것도 관객과 팬들에게는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하지만 그 '이야깃거리'의 주제가 되기 위해서는 영화가 재미있어야 한다. 망작이니 명작이니를 구분하며 이야기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재미가 없다면 그렇게 조차 입에 오르내릴 수도 없다. 결국 영화도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서 상품이기에, 소비자인 관객에게 충분히 재미있다는 인상을 주어야만 한다. 원작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재미있어야 하고, 원작을 정말 잘 아는 사람에게도 재미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재미는 당연하게도 흥행성적으로 연결된다.
어떤 캐릭터를 다루건, 어떤 이슈를 토대로 하건 히어로무비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한 캐릭터가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영웅으로서의 자격을 증명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다. 또한 못해낼 일이 없을 것만 같은 영웅에게 닥치는 시련, 그리고 그를 극복하는 과정 역시 아주 전통적이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서사다.
제작이 확정되었거나 계획 중이라고 밝혀진 작품들 중에는 리부트작품도 여럿 끼어 있다. <배트맨>이 그렇고, <그린 랜턴>과 <판타스틱 4>가 그렇다. 2020년 혹은 그 이후에 제작될 이 영화들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팬들의 기대는 한결같다. '재미있는 영화'로 개봉해 많은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기를. 그래서 더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볼 수 있기를.
희재 / PNN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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