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럭’하면 떠오르는 배우 이선균이 봉준호 감독과 만나 <기생충>으로 돌아왔다. 영화보다 <커피 프린스 1호점>, <파스타>, <골든타임>, <나의 아저씨> 등 드라마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인생캐릭터들을 만나왔던 이선균에게 <기생충>은 또 다른 키포인트가 될 것. 그러나 드라마에 가려졌을 뿐, 스크린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이선균의 캐릭터들 또한 주목해볼만 하다. 버럭과 찌질, 그 사이에서 냉탕·온탕(?)을 번갈아 가며 연기한 이선균의 대표작과 캐릭터를 모아보았다.


<파주>(2009) 김중식 역

버럭, 하고 소리 지르며 ‘분조장(분노조절장애)’에 가까운 다혈질이 이선균을 대표하는 이미지라고 하지만 그의 잔잔한 연기를 좋아하는 대중들도 있을 터. <커피 프린스 1호점>과 <나의 아저씨> 속 다정하고 헌신하는 이선균의 모습을 스크린으로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파주>다. 사고로 아내 은수(심이영)을 잃고 은수의 동생 은모(서우)와 살던 중식(이선균). 그러던 어느 날, 은모가 갑작스레 사라지고 3년이 지난다. 고향으로 돌아온 은모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중식을 마주하게 되고, 언니의 죽음과 보험금의 비밀을 풀려 한다. 트라우마로 인해 아내를 사랑할 수 없었던 남편, 그리고 비밀로부터 지켜주고자 했던 아내의 동생, 둘 사이에 있는 중식까지. 안개가 가득한 파주를 닮은 듯한 인물들의 관계와 이선균의 연기가 일품인 작품. 이선균은 김중식 역으로 2010년 스페인 라스팔마스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옥희의 영화>(2010) 남진구 역

이선균은 홍상수 사단 중 한 명으로, <옥희의 영화>(2010)에 이어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 <우리 선희>(2013) 세 작품에서 주연을 맡아 연기한 바 있다. 술과 대화 등으로 남성들의 찌질한 면모를 드러내는데 일가견 있는 홍상수 작품답게 세 영화에서 모두 이선균의 찌질하다 못해 구질구질 하기까지 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술에 취해 ‘끝까지 파고, 가고’만 반복하며 말했던 <우리 선희>도 인상 깊지만, 그보다 <옥희의 영화> 속 남진구는 고개를 절로 젓게 만들 정도다.

<주문을 외울 날>, <키스 왕>, <폭설 후>, <옥희의 영화> 총 4편의 단편이 한 편으로 묶인 <옥희의 영화>는 옴니버스식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하나의 긴 이야기처럼 유기적으로 다가온다. 이선균은 네 편의 영화에서 모두 젊은 남자인 남진구 역을 맡아 연기했다. 지나가는 여러 사람을 붙잡고 술 마시자 하는데 거절당하는 건 기본이요, 옥희의 집 앞에서 술에 취해 잠들기까지 한다. ‘이런 느낌 처음이야, 널 사랑해. 사랑해도 되지?’와 같은 올드한 멘트는 덤이다. 찌질한 대사들과 행동 뒤에 따라붙는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그의 언행과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자아내는 웃음이 상당하다.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이두현 역

내친김에 이선균의 지질함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대표작을 하나 더 소개하겠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한때 타오르는 불보다 뜨겁게 사랑했지만 결혼 후 바뀌어버린 부부의 모습을 그린 영화다. 입만 열면 쏟아지는 불평과 잔소리에 질려버린 남편 두현(이선균)은 아내 정인(임수정)에게 이혼을 말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겁나 말하지 못한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정인이 자신에게 먼저 이혼하자고 말하게 하는 것! 소심한 반항도 해보지만 통하지 않던 찰나, 옆집에 전설의 카사노바 성기(류승룡)을 보게 되고, 성기에게 두현은 자신의 아내를 유혹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하지만 성기와 정인이 가까워질수록 두현은 어딘지 잘못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정인과 두현, 두 사람을 통해 사랑과 관계에 교훈을 주면서도 성기와 두현의 찌질한 케미스트리가 코믹함에 방점을 찍는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이 45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이선균은 필모그래피에 흥행작을 남길 수 있었다.


<화차>(2012) │ 장문호 역

커피를 사러 다녀온 사이 약혼녀가 사라졌다? 데이빗 핀처의 <나를 찾아줘>(2014)가 개봉하기 전, 한국에는 변영주 감독의 <화차>가 있었다. 사라진 약혼녀 선영(김민희)를 찾기 위해 문호(이선균)은 전직 강력계 형사인 사촌 형 종근(조성하)와 함께 선영의 자취를 밟아가지만, 갈수록 선영은 어디에도 없다. 행복하고만 싶어 선영으로 살려 했던 경선의 지난한 인생을 연기한 김민희의 강렬한 연기가 눈길을 끌지만 선영을 쫓는 약혼남 문호 역을 연기한 이선균의 연기 또한 훌륭하다. 혼란스러움에서 비롯한 화를 못 이겨 욕설과 함께 소리를 지르고, 힘겹게 마주한 경선에게 ‘너 대체 누구야!’ 하고 화를 내면서도 간절하게 끌어안는 애절한 연기는 이선균의 베스트. 가까운 시일 내에 <화차>에서 보여주었던 연기를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이다.


<끝까지 간다>(2014) 고건수 역

어머니의 장례식 날, 뺑소니 사고를 낸 형사 고건수(이선균). 시체를 간신히 어머니의 관에 숨겨 위기를 무마한 줄 알았으나, 어느 날 사건에 관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전화를 한 정체불명의 목격자는.. 경찰? 박창민(조진웅)은 고건수에게 ‘네가 차로 친 이광민의 시신을 가져와라’고 하고, 고건수는 계속해서 자신이 은닉한 범죄가 드러날 위기에 처하게 된다. 부패한 두 경찰을 주인공으로 두어 기존 범죄물과는 또 다른 스릴감을 부여한 <끝까지 간다>는 제목처럼 정말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는 등 국내외에서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버럭과 찌질의 경계에서 찰진 욕을 섞어가며 그야말로 ‘꿀잼’을 선사한 이선균의 연기 역시 호평을 이끌어내며 <끝까지 간다>는 그의 스크린 대표작이 되었다.


씨네플레이 문선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