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일부 영화에 스포일러가 될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기 어렵다고 했다. 하물며 슈퍼히어로는 더 하다. 그들은 세계를 뒤흔들 파워를 가지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토라지면(?), 그 자체가 비상사태가 된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도 원래 악(惡)인 캐릭터보다 한때 정의를 외치며 우리 편에 섰던 캐릭터들이 흑화되어 더 무서운 빌런으로 등장한다. 지켜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재미는 배가 되지만, 영화 속 주변 인물들을 곤란하게 했던, 슈퍼히어로 영화 속 흑화된 캐릭터를 모아봤다.


1. 진 그레이 - <엑스맨: 다크 피닉스>

<엑스맨: 다크 피닉스>

6월 5일 개봉한 <엑스맨: 다크 피닉스>의 실질적인 주인공 진 그레이(소피 터너). 어렸을 때부터 엄청난 힘을 가졌지만, 그것을 견디지 못해 불안정한 면이 없지 않았다. 다행히 프로페서 X(제임스 맥어보이)의 보살핌과 동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살아갔지만, 우주에서 구조 작업을 하던 중 사고를 당하고 이로 인해 엄청난 힘을 얻으면서 <엑스맨> 시리즈에서도 손꼽히는 빌런 다크 피닉스로 변화한다. 여전히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동료들은 흑화된 진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가공할 만한 파워를 가졌다 보니 고전이 예상된다. 과연 진은 다시 우리의 친구로 돌아올 수 있을까 아니면 <엑스맨> 세계의 멸망을 가져올 다크 피닉스로 남을까?


2. 매그니토 -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엑스맨> 시리즈의 대표적인 빌런 매그니토(마이클 패스밴더)는 그의 탄생을 다룬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준다. 애당초 매그니토는 악당이기보다는 자신의 가치관을 위해 어떠한 파괴도 감수하는 강경파에 가까운 인물로, 어린 시절 나치에 의해 자신의 눈앞에서 죽은 어머니의 트라우마로 다크 포스에 빠졌다. 복수에 모든 것을 올인하던 중 같은 돌연변이인 찰스 자비에(프로페서 X)를 만나 진정한 파워는 분노만이 아닌 평정심과의 균형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머니와 함께 했던 행복한 시절을 떠오르며 눈물의 슈퍼파워를 발휘했다. 그뿐만 아니라 세바스찬 쇼(케빈 베이컨)의 음모로 미국과 소련의 핵 전쟁을 발발하려는 쿠바 사태의 음모를 막고자 <엑스맨> 원년 히어로로 활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이상과 다른 찰스와 갈라서며 “평화는 처음부터 내 목적이 아니었어”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3. 윈터 솔져 -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하루 종일 싸울 수 있어”라는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의 절친이자 한때 동경하고 부러워했던 그 사람 버키 반즈(세바스찬 스탠). 캡틴 아메리카가 된 스티브와 함께 목숨을 걸고 적진에서 활약하며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돈독한 정을 나누었다. 하지만 작전 수행 중 버키가 사고를 당하면서 모두들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대에서 깨어난 캡틴 아메리카를 위협하는 윈터 솔져가 하이드라에게 세뇌된 버키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친구이자 적이 된 버키를 두고 고뇌하는 스티브 로저스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다행히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다시 원래의 버키로 돌아왔지만, 친구를 보호하고자 했던 스티브의 선택은 ‘인피니티 사가’, 특히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이후 중요한 영향을 미친 갈등 구조로 이용되었다.


4. 모르도 - <닥터 스트레인지>

<닥터 스트레인지>

교통사고로 실의에 빠져 마지막 희망을 찾고 있던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에이션트 원(틸다 스윈턴)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동료 모르도(치웨텔 에지오프). 그 역시 가족을 잃은 어두운 과거로 방황하던 중 에이션트 원을 만나 진정한 평화와 힘을 얻었고, 자연의 법칙을 깨뜨려 사적 이익을 취하려는 자들에게 강력한 벌을 내렸다. 하지만 에이션트 원과 닥터 스트레인지가 세상을 지키기 위해 규칙을 깨뜨리자 자신과 가는 길이 다르다며 본격적인 ‘흑화’로드를 떠난다. 세상이 엉망인 이유가 마법사가 많다는 이유와 함께. 후속편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를 위협할 강력한 빌런이 될 그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5. 하비 덴트 –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해가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죠.” 본격 배트맨 덕후(?)이자 막장 고담 시티의 유일한 화이트 나이트였던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 검사. 조커(히스 레저)의 계략으로 연인 레이첼(매기 질렌할)을 잃고, 자신 역시 얼굴의 큰 흉터를 갖게 되면서 흑화의 길로 나섰다. 동전으로 운명을 정하는, 모두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 신봉자지만, 믿었던 정의와 동료에게 배신당하면서 이런 랜덤이야말로 어디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가치라는 서글픈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흑화 빌런이 얼마나 무섭고, 정의를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에게 치명적인 영향력을 끼치는지에 대한 최고의 예가 하비 덴트가 아닐까. 배트맨(크리스찬 베일)은 결국 빌런으로 생을 마감한 하비 덴트의 악행이 세상에 알려지면 사람들은 더욱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비 덴트의 만행까지 감수하며, 엄숙하고도 숭고한 또 다른 흑화의 길로 들어서 다크 나이트가 된다.


6. 위스키 - <킹스맨: 골든 서클>

포피(줄리안 무어)에게 무참히 파괴된 킹스맨을 돕기 위해 협력하는 스테이츠맨에서 에그시(태런 에저트)와 함께 작전을 펼치는 위스키(페드로 파스컬) 요원. 화려한 리볼버 장전 솜씨는 물론 그의 최대 무기 절단 올가미는 대단했다. 하지만 알고 봤더니 내부 스파이라는 충격적인 사실. 그가 이렇게 흑화의 길을 걷게 된 데는 자신의 연인이 마약 중독자에게 목숨을 빼앗겼다는 아픈 사연 때문이다. 이처럼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 흑화의 길로 인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개인적으로 슬픈 사연이라 해도 봐줄 킹스맨이 아니다. 위스키의 사연은 이해하지만 마지막 처단은 가차 없었다.


7. 닥터 옥토퍼스 – <스파이더맨 2>

<스파이더맨> 시리즈 빌런은 대부분 공감이 간다.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잘 그려내기 때문이다.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 빌런 대부분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갔지만, 부재 혹은 어쩔 수 없는 사고로 흑화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스파이더맨 2>의 빌런 닥터 옥토퍼스(알프레드 몰리나)도 그렇다. 세계에서 명망 있는 과학자였지만, 인류를 위한 에너지 개발을 위해 핵융합 실험을 하던 중 아내가 죽고 자신의 연구도 물거품 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거기에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 팔에게 세뇌되면서 닥터 옥토퍼스로 거듭나게 됐다. 그는 자신을 막던 스파이더맨(토비 맥과이어)과 싸우고 시민들을 위협했지만, 스파이더맨 덕분에 원래의 모습을 찾게 되면서 마지막 감동적인 선택으로 놀라게 했다. 그의 모습은 일반인과 히어로로서의 책임에 갈등하던 피터 파커의 상황과 연결되어 상당한 울림을 안겼고, <스파이더맨 2>는 시리즈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남아있다.


8. 미스터 글래스 – <언브레이커블>, <글래스>

<언브레이커블>에서 기차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 데이빗 던(브루스 윌리스)에게 슈퍼히어로란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조력자 미스터 글래스(사무엘 L 잭슨). 태어나면서부터 희귀병을 앓고 그로 인해 조금만 움직여도 뼈가 부러지는 유리 같은 사람이 되었지만, 자신과 정반대에 있는 데이빗에게 슈퍼히어로의 사명을 전하고자 한다. 착한 캐릭터 아니냐고? 미스터 글래스 역시 겉보기와 다른 속셈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엄밀히 말하면 흑화 된 빌런과 거리가 있다. 애당초 그는 슈퍼히어로를 찾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악행을 저지른, 처음부터 빌런이었기 때문이다. 영웅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조력자가 평생에 맞서야 하는 빌런, 즉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마지막 부분은 분노와 함께 서글픈 감정도 함께 느껴진다. 속편 <글래스>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마치 <엑스맨>의 매그니토처럼 특별한 이들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 평생을 품어온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자 한다. 어쩌면 미스터 글래스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생각하는 슈퍼히어로의 정의를 가장 잘 대변하는 캐릭터가 아닐까.


에그테일 에디터 / 레드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