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일하느라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주변을 돌보지 않는 루왁의 삶을 살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루왁인간>

원고를 마무리 못해 몇 날을 끙끙 앓다 정신을 차려보니 온 집안이 엉망이었다. 마감도 마무리 못 했는데 다른 일을 하는 게 뭔가 죄스럽단 생각에 먹고 자고 쓰는 것 외엔 다른 일을 안 한 탓이다. 며칠째 먹기만 하고 설거지할 엄두를 못 내 싱크대엔 설거지감이 한 가득이고, 청소기를 안 돌린 지 나흘쯤 된 탓에 눈길 닿는 곳마다 고양이 털뭉치들이 뒹굴뒹굴 굴러다닌다. “넌 집을 이 모양으로 방치하고도 여기서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니?” 사는 꼴을 들여다본 가족의 질책에 난 조용히 중얼거렸다. “집이 이 모양이라서 집중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집중이 안 돼서 집이 이 모양인 거야.”

찝찝한 기분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가 문득 내가 젊은 날의 아버지를 닮아가는구나 싶었다. 나의 아버지도 일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어린 내게 아버지의 삶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는 항상 피곤해 보였고, 언제나 화가 나 있었으며, 그 탓에 자주 아팠다. 왜 일만 하느라 스스로 돌보지 않아서 불행해지고, 더불어 같이 사는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걸까? 어떤 이유에서든 직업에 지나치게 몰두하다보면 어느새 직업이 인생의 전부가 된다는 걸, 그래서 일을 제대로 못 해내면 자기 자신이 가치 없는 인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걸 어린 시절의 나는 몰랐다. 어쩌면 아버지도 그랬던 거겠지.

수 년 전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던 자리, 우연히 젊은 시절 아버지와 동종업계에서 일했다던 분과 동석할 일이 있었다. 두 사람은 1970년대 상사맨으로 해외를 오가며 맨땅에 헤딩하듯 수출 실적을 내던 무용담을 나누며 즐거워했다. 특히나 회사의 갑작스런 지시로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급하게 북미에서 남미로 넘어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던 무용담을 늘어놓을 때의 아버지는 꼭 다른 사람 같았다. “당신들이 티켓을 안 팔면 화물칸에라도 숨어 들어가서 타고 갈 참이니 알아서들 하시라”고 항공사 직원들에게 으름장을 놓은 끝에 비행기에 탈 수 있었던 대목을 이야기하며, 그는 목젖이 보이게 웃었다. 아버지는 웃기도 잘 하고 종종 농담도 하는 사람이지만, 그가 그렇게 신나고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걸 본 기억은 까마득했다. 20대로 돌아간 듯 생기 어린 두 눈을 반짝이는 저 사람이 정말 내 아버지인가? 아버지의 낯선 얼굴을 보다가 깨달았다. 그의 청춘은 온통 일뿐이었기에, 일하지 않던 순간의 그는 그리도 불행하고 어색해보였구나. 그랬구나.

JTBC에서 2019년 방영했던 <루왁인간> 또한 그런 삶을 사는 이들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 본 작품이다. 대룡코퍼레이션에서 만년 부장으로 일하는 정차식씨(안내상)는 누가 봐도 희망퇴직대상 1호다. 엑셀을 쓸 줄 몰라 여전히 수기로 표를 작성하고, 해외 유학파들이 치고 올라오는 시기에 고졸 학력은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다. 개인적인 삶은 모두 뒤로 하고 지난 35년을 고스란히 회사에 바쳤는데, 회사가 ‘대룡상사’이던 시절부터 시작해 새 사옥을 올리고 엘리베이터가 생길 때까지 오롯이 일만 했는데, 으리으리해진 회사는 이제 더는 차식씨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상사의 비위를 맞춘다고 거래처에서 보내온 커피나무에 열린 커피체리를 입 안 가득 넣고 씹으며 충성을 다짐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부하직원들의 비아냥 섞인 뒷담화다. 일이 인생의 전부였는데 그 일이 날 배신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더 이상 일을 못 해내서 가치 없는 인간이 되면 어떻게 하지?

그랬으니, 극심한 복통 속에 볼 일을 본 뒤 변기에서 루왁(사향고양이를 뜻하는 인도네시아어. 사향고향이가 커피체리를 먹고 배설한 커피 생두를 통칭하는 단어로도 사용된다.) 생두를 발견했을 때 차식씨의 가슴은 얼마나 두근거렸을까? 영문은 모르겠지만 자신의 대장이 루왁 생두를 생산해내는 공장으로 기능할 수 있단 걸 알게 되자, 차식씨는 끊임없이 커피체리를 씹어먹기 시작했다. 카페를 운영하는 딸(김미수)에게 그 출처를 얼버무리며 루왁 생두를 가져다줄 때, 그는 다시 자신이 가치 있는 인간이란 기쁨에 차올랐을 것이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복통 속에서 변기 위에서 혼절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가 여전히 부가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차식씨는 생두 생산을 멈추지 않는다. 그게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 줄도 모른 채.

내가 일을 얼마나 잘 해내는지, 그래서 그로 인해 발생한 부가 가치는 얼마이며 내가 벌어들이는 돈은 얼마인지에 따라 자신을 평가하는 삶이란 그런 것이다. 다른 생각 없이 근면성실하게 노동에만 전념하는 인간상을 만들기 위해, 직업이 그런 삶을 요구하고 사회가 그런 삶을 권장한다. 그러다가 일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정의할 언어를 찾지 못해 생을 잃어버린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언덕길을 올라가 늦은 저녁 아버지의 집을 찾아갔다. 더 이상 일하느라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주변을 돌보지 않는 루왁의 삶을 살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아버지, 손님들 와 계시네? 고스톱 치고 계셨어요?”

“응, 치매 예방한다고. 히히히.”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아버지는 친구들과 모여 화투장을 떼며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가벼운 안부를 나눈 뒤 집을 나서며 나는 괜히 농을 걸었다. “좀 따셔요. 따서 아들 용돈 좀 주셔.” 아버지는 일흔이 넘었지만, 그렇다고 루왁의 삶 말고도 다른 삶의 풍경도 있다는 걸 배우기에 늦은 나이는 아닐 것이다. 이제, 내가 그걸 다시 배울 차례겠지.


이승한 TV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