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영화제 최고의 영광으로 꼽히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올해의 수상은 별다른 이변 없이(?)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만든 영국의 거장 켄 로치 감독에게 돌아갔습니다. 2006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이미 황금종려상을 한 차례 수상한 적 있는 그가 무려 두 번이나 수상하는 것에 대한 우려? 그런 건 전혀 없었습니다. 그의 영화를 본 수많은 사람들은 모르긴 몰라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을 겁니다.

켄 로치 감독은 언제나 자본과 체제의 폭력에 맞서 조용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투쟁을 하듯 신념으로 똘똘 뭉친 영화를 만듭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역시 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싸우고 쟁취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엄청난 굴곡의 서사를 지닌 영화도 아니고 화려한 비주얼이나 음악? 그런 것도 없습니다. 영등포 시장 주변을 걷다가 마주칠 법한 외모와 행색의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고, 그들이 동사무소나 시청 민원실 등에서 겪게 될 일들이 영화의 주요 소재로 쓰입니다. 눈과 귀를 둥둥둥 울릴만한 화끈한 시위 장면 같은 것도 없습니다. 어디를 봐도 없는 것 투성이고 밋밋해 보이는데도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잘못 돌아가고 있는 사회와 그 사회를 잘못 이끌고 있는 사람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비판의식을 지니고 있는 영화입니다.


천박한 제도의 민낯

목수로 일하던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라는 이름의 할아버지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 담당 부서 공무원들과 실랑이를 벌입니다. 그는 지금 별것도 아닌 행정제도 때문에 완전 미처버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처음엔 심장마비로 일하다 쓰러져 병원에 갑니다. 심장에 이상이 생겨 쓰러졌더니 일을 하지 말라고 하죠. 그럼 일을 쉬는 동안 실업급여를 받아야 하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취직이 불가능한 상태를 증명하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합니다. 그 건강 이상 서류를 제출해야 질병 대상자로 분류가 되어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을 증명해야 할 건강 체크 사항이 까다로워서 (다시 말해 멍청하게 관료적이라서) 심사에서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니까 행정적으로 블레이크는 어느 정도는 건강한 기준의 사람이 된 겁니다. 서류상 분류로 강제적으로 건강 이상자에서 단순 구직자로 분류된 그에게 또 다시 엄청난 난관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단순 구직자가 되어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자신의 구직 활동에 대한 모든 증빙을 컴퓨터로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는 겁니다. 컴퓨터라고는 평생 만져보지도 못한 할아버지가 심장마비로 한 차례 쓰러진 뒤에 다시 일을 하기 위해서 잠시 쉬는 동안 실업 급여를 받으려고 하는데 (누가 봐도 합당하고 반드시 제도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컴퓨터부터 배우라는 이야기인 것이죠. 그래서 블레이크 할아버지는 그때부터 평생 만져보지도 않은 컴퓨터를 배워서 온라인 등록을 하고 구직 활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제도적 절차의 모순점 때문에 그의 '행정적' 상태는 꼬일 대로 꼬여만 갑니다. 사실상 구직 활동을 하면 안 되는 질병 대상자로 등록 신청을 했는데 아직 절차상의 처리 문제로 제대로 분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직 활동을 하는 바람에 '불법'을 저지른 상태가 되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 '구직자'이기도 한 그는 어쩔 수 없이 구직 활동을 하지 않아서 담당 공무원들에게 소위 말해 찍혀버리죠. 그냥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누구에게나 일괄 공통 적용되어야 하므로 어쩔 수 없는 원칙을 지닌 제도라고는 하지만, 블레이크를 길거리로 내모는 것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몇몇 관료주의적 행태입니다. 그 때문에 평범한 노동자로 욕심도 부족함도 없이 살아가던 블레이크는 졸지에 길거리에 나앉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다루는 점에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분명하게 사회의 일부 제도적 모순을 비틀어 꼬집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일차원적인 문제 지적에 머무르지만은 않습니다.

자, 이제 영화는 다음 차원으로 넘어갑니다.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꼰대 공무원들에 둘러싸인 주인공 블레이크는 이대로 굽히지 않습니다. 온 집안 가재도구를 전부 팔아가면서도 자신은 꿋꿋하게 절차 상으로 요구하는 모든 걸 이행하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때 마침 케이티 가족을 만나게 돼죠.


사람의 희망은 사람

인간이길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쉽게 말해 돈에 굴복하며 살지 말자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블레이크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내몰린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네 가족을 알게 되면서 그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하게 됩니다. 케이티는 영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여러 제도적 폐해를 몸소 겪으며 살아왔죠. (이들과의 에피소드에서 관객들은 지금 현재 영국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이민자들의 상황을 과장 없이, 마치 다큐멘터리 보듯 마주하게 됩니다.)

실업 급여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하루 하루 버티고 있는 블레이크는 제 코가 석자인 상황에서도 케이티네 가족에게 여러 도움을 줍니다. 돈도 챙겨주고 일할 때는 아이도 봐줍니다. 케이티는 정말 인간적인 블레이크의 배려심에 감동 받지요. 공무원들이 블레이크만 나타나면 이를 갈며 경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또다른 블레이크인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 사람을 평가하거나 재단하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지요.

그럴 때마다 영화는 거창하게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나열해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별것 아닌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를 차근차근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켄 로치 감독만의 연출법이지요. 너무나 평범한데 그것이 하나 둘 쌓여 마지막에 폭발력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말자

케이티 가족과 블레이크가 점점 더 버티기 힘들어지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입니다. 모두가 살기 위해 돈을 벌지만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생계수단마저 행정 절차상의 수많은 이유로 제약이 걸립니다. 결국 제도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되는 모양새인데 블레이크는 끝까지 이에 굴하지 않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동을 넘어 경건한 마음이 들기까지 하지요.

당장 눈앞의 돈을 위해서 자존감을 팔아넘겨야 하는 상황 직전까지 가더라도 이 할아버지는 끝까지 내가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시민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누군가 자신의 자존감을 잃어버릴 상황에 처하면 주저없이 손내밀어줄 수 있는 건 제도가 아니라 먼저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1년 사계절 가운데 특히 겨울은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모든 걸 빼앗아가는 냉혹한 계절입니다. 이 한 계절을 버티기 위해서 지금도 어디선가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겠죠.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차가운 겨울 한복판에서 괜시리 주변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들고 마음 한 구석을 따스하게 해줄 영화입니다. 누군가는 분명히 이 영화를 보면서 두 주먹 불끈 쥐고 인간이길 포기하지 말자고 소리 높여 외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조건을 상실한 수많은 정치인과 기업가들을 향해서 말이지요.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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