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바닐라 스카이>(2001)는 재력과 매력을 모두 소유한 데이빗 에임즈(톰 크루즈)가 남자들로부터는 부러움을, 여자들로부터는 시선과 관심을 받고 그것을 즐기는데, 자신의 생일파티에 친구가 데려온 소피아(페넬로페 크루즈)를 만나 한눈에 반하게 되고, 소피아 때문에 데이빗한테 차인 줄리(카메론 디아즈)가 극단적 방법을 시도하면서 데이빗이 겪게 되는 일들이 주된 줄거리입니다.

세 명 배우들의 리즈 시절을 볼 수 있고 톰 크루즈가 왜 잘생긴 배우의 대명사로 불리는지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는데요. 영화의 주요 사건을 우리나라 법에 따라 살펴보겠습니다.


1. 동반자살을 시도해서 살아남으면 처벌받나요.

줄리는 데이빗을 사랑하지만 데이빗은 친구 브라이언한테 줄리를 육체관계 파트너라고 둘러댑니다. 브라이언한테 이 얘기를 전해 들은 줄리는 데이빗에 대한 분노와 소피아에 대한 질투에 사로잡혀서 데이빗과 소피아를 미행하는데요. 소피아 집에서 나오는 데이빗을 보고 줄리는 데이빗한테 자신의 자동차에 타라고 권하고, 어떤 생각에 이끌려 데이빗은 줄리의 자동차를 타고 맙니다. 줄리는 운전을 하면서 데이빗한테 사랑을 고백하지만 데이빗의 반응에 감정이 격해져 원망의 눈빛을 보낸 뒤 다리 난간을 향해 과속으로 돌진하고 자동차는 그대로 추락해버리죠. 이 사고로 줄리는 사망하고 데이빗은 간신히 목숨을 건지지만 잘생긴 얼굴은 처참하게 망가집니다.

먼저 이 자동차 추락사고가 법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 줄거리를 소개하는 정보에 의하면 줄리가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고 하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이것은 틀린 설명입니다. 데이빗은 죽으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자살이라고 할 수 없죠. 백번 양보해서 데이빗이 자살을 승낙했다면 자살승낙죄 정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데이빗은 죽으려는 마음이 하나도 없었고 줄리가 과속할 때 사랑한다고 거짓 고백을 하면서 속도를 줄이라고 소리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사고 후에 데이빗은 망가진 얼굴과 다친 몸에 절망하고 괴로워하죠. 영화 후반부에 소피아한테 (줄리가 운전하는) 그 차를 타서 너(소피아)를 잃게 되어 미안하다고 말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데이빗은 줄리가 타라고 해서 자동차를 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합니다. 결코 죽으려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줄리가 고의로 자동차 추락사고를 일으킨 행동은 줄리 자신에 대해서는 자살이나, 데이빗에 대해서는 살인이 되고 데이빗이 죽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살인죄의 장애미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가 다리 밑으로 추락하도록 난간을 향해 과속으로 돌진할 때 살인죄의 실행의 착수가 있었고 데이빗이 겨우 목숨을 건진 것은 줄리의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운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장애미수가 되어 살인죄 형량을 임의적 감경한 형으로 처벌받게 됩니다.

따라서 줄리가 죽지 않았다면 실제 어떻게 처벌되는지 살펴보면 줄리는 데이빗에 대한 살인죄의 장애미수로 처벌받아야 합니다. 자살승낙죄가 아닙니다(자살승낙죄는 형량이 살인죄보다 약해요). 단계별로 검토해 보면, 줄리가 수사를 받는 도중에 상태가 악화되어 사망하면 ‘공소권 없음’의 불기소 처분(검찰사건사무규칙)으로 수사는 종결되고, 기소가 되어 재판을 받는 도중에 사망하면 공소기각 결정(형사소송법)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판결선고를 받을 때까지 살아있다면 살인죄의 장애미수가 되어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상한은 30년 이하)형으로 처벌받게 되고, 만약 임의적 감경을 받게 되면 징역형인 경우 2년 6월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 가능할 수 있으나 임의적이므로 양형참작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감경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자살승낙죄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이므로 살인죄를 감경받아도 자살승낙죄보다 무겁게 처벌받게 되는 것이죠.

영화처럼 줄리가 사망하고 데이빗만 살아남은 경우에는 데이빗이 처벌받을까요. 데이빗은 줄리와 자살하기로 공모한 사실이 없으므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데이빗은 자동차 추락사고의 전적인 피해자입니다. 만약 데이빗이 줄리와 자살을 공모하여 자동차 추락사고로 동반자살을 시도했는데 혼자 살아남은 것이라면, 데이빗은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습니다. 판례는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가 혼자 살아남은 경우에 자살하려고 한 것이 실제 입증되면 살아남은 자를 자살방조죄로서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합니다. 실제 사건에서는 양형참작 사유가 인정된다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이런 식으로 선고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만약 동반자살이 상대방에 대한 기망이고 자신은 실제로 죽을 의사가 없었다는 것이 입증되면 자살방조죄가 아니라 죽은 자에 대한 살인죄가 될 뿐이고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데이빗은 줄리와 사전에 자살에 대해 어떠한 공모도 없었고, 줄리가 과속할 때 멈추라고 소리쳤기 때문에 자살을 승낙한 사실도 없어서 그저 피해자에 불과합니다.


2. 정신착란에 의한 살인은 처벌받나요

데이빗은 자동차 추락사고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잘생긴 얼굴이 심하게 망가지고 마음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영화 후반부로 가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지만) 데이빗은 정신착란 증세로 소피아를 줄리로 착각하여 줄리(소피아)를 죽이게 됩니다. 데이빗의 정신감정을 한 정신과 의사는 일시적 정신착란에 의한 것이라고 진단을 내리는데, 정신착란에 의한 살인행위는 어떻게 처벌받을까요. 우리 법에 따라 책임능력이 부정되기 위해서는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변별능력이 없거나 의사결정능력이 없어야 하고, 형을 감경받기 위해서는 심신장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심신미약자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에 해당돼야 심신장애 또는 심신미약으로 인정되는지는 사안마다 구체적 사실관계를 따져보아야 하는데, 판례는 원칙적으로 충동조절장애와 같은 성격적 결함은 형의 감면사유인 심신장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지만, 그것이 매우 심각하여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을 가진 사람과 동등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로 인한 범행은 심신장애로 인한 범행으로 보아 형을 감경하거나 책임능력이 조각되어 처벌을 면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심신장애가 인정되는 것은 아주 드문 경우로 대개는 자신이 저지른 범행에 따라 처벌받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데이빗이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켜서 줄리(소피아)를 죽인 행위에 대해 데이빗의 정신착란 증세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것이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을 가진 것과 동등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인지 심리해서 만약 심신장애나 심신미약으로 인정된다면 책임이 조각되거나 형을 감경받을 수 있습니다.


글 | 고봉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