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코로나19의 영향력이 강력한 한 해였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오랫동안 시행돼 자영업자들의 위기가 심각해지자, 결국 전 국민 백신 접종 80%에 이르러 정부는 빠르게 ‘위드 코로나’를 천명했다. 하지만 내년 초 먹는 코로나 치료제 시판을 앞두고, 델타 변이에 이어 새로운 오미크론 변이마저 발생되며 코로나19는 다시 심각한 위기 상황에 봉착할 기세다. 일일 확진자, 중증자, 사망자가 연신 최다를 기록하며 잠깐이나마 숨통이 트였던 여행과 모임, 집회는 다시 제약이 가해질 분위기고, 부스터 샷 접종을 서두르는 동시에 청소년과 임산부에게도 접종을 확대할 예정이다. 한편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띤 재보궐 선거가 치러져 야당이 승리하는 결과가 나왔고, 대장동 사건과 경선 레이스를 뒤로하고 여야 모두 대선 후보를 확정한 채 피 말리는 정쟁에 돌입했다. 그 와중에 누리호가 발사돼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영화와 공연계는 계속된 코로나 상황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접종률 80%에 달하며 여름과 추석 시즌 개봉한 <모가디슈>와 <싱크홀>, <인질>과 최근의 <이터널스>까지 좋은 성적을 거두며 희망을 봤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마블과 007, 분노의 질주 같은 할리우드 프랜차이즈들이 연달아 선보였음에도 여전히 개봉보다 연기된 작품들이 많았으며, 흥행의 기쁨보단 시장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다. 이 관심과 열기는 오롯이 넷플릭스를 위시한 각종 OTT 서비스로 모아졌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며 한류 콘텐츠 열풍이 이어졌으며, 디즈니+와 애플TV+가 새롭게 한국 시장에 런칭됐고, 내년엔 HBO MAX와 파라마운트+도 한국 진입을 선언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어김없이 2021년 한해 국내 사운드트랙에 대해 정리해 본다. 기간은 2020년 12월 9일부터 2021년 12월 7일까지 개봉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한국 OST로 한정했다.
작년에 비해서 더 줄어든 30편 정도의 사운드트랙을 접할 수 있었는데, 너무 위축된 영화음악 시장으로 인해 이제 여기서 그만두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려도 했다. 하지만 지난 5년간의 노력을 무위로 돌릴 수 없어 이들을 대상으로 5편을 추려 ‘2021년 한국 사운드트랙 리스트 5’를 뽑아보았다. 안타깝지만 사운드트랙이 나오지 않은 영화들은 과감히 후보에서 제외했다. 그편이 이 리스트에 대한 형평성과 객관화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 영화음악 베스트가 아닌, 한국 사운드트랙 리스트다. 따라 시상식 후보에 올랐거나 인상적이었던 작품들, 박기헌의 <세자매>나 조영욱의 <서복>, 김태성의 <싱크홀>과 <기적>, 이동준의 <장르만 로맨스> 등은 사운드트랙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부터 이 포스트의 대상이 되지 않음을 밝혀둔다. 개인적으로도 아쉽게 생각한다. 리스트는 개봉 날짜순이다.
자산어보
By 방준석
이준익 감독의 14번째 장편 <자산어보>는 음악감독인 방준석과 8번째 협업작이기도 하다. 흔치 않은 흑백 사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인 시기 개봉해 극장 관람료 인상 이슈와 맞물리며 흥행에 참패했지만, 방준석에게 두 번째 청룡영화상 음악상을 안겼다. 코로나로 힘든 한해라 하지만 방준석은 2021년 가장 흥행한 류승완의 <모가디슈>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이계벽의 <새콤달콤>까지 참여하며 알토란같은 활약을 보였다.
<사도>와 <조선마술사>에 이어 다시 한번 사극 장르로 돌아온 그는 앞선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담백한 현악과 평안한 목관부, 섬세한 피아노를 앞세워 창대와 함께 한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 생활을 서정적으로 담아냈다. 현서원과 김지혜, 김혜현, 양승현, 전제니 같은 젊은 작곡가들과 함께 만들어 낸 고전적인 앙상블은 이제 조영욱과 사운드트랙킹스 못지않게 단합되고 일사불란한 호흡을 들려준다. 무려 62트랙에 달하는 방대한 양도 압도적이지만, 굳이 국악이 아니더라도 한국적 인장의 흔적들을 심어놓는 퍼커션과 신스 프로그래밍 그리고 류트를 떠올릴 법한 고풍적인 공명감의 기타 등 소박한 풍류의 소리는 실학의 의미와 계급, 인생에 대해 다시금 곱씹게 만든다.
비밀의 정원
By 김명종
부산영화제를 비롯해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박선주 감독의 <비밀의 화원>은 감독 자신의 단편 <미열>을 장편화한 작품이다. 성폭행으로 인해 망가진 피해자의 삶과 트라우마, 가족들의 고통과 치유에 대해 잔잔하고도 진솔하게 담아내는데, 그 회복 과정 속 심리적 격랑과 편린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건 단편과 독립영화들에서 잔뼈가 굵은 영화음악가 김명종의 솜씨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영화 이론으로 석사를, 연출로 박사 학위를 받은 만큼 누구보다 영화와 영화음악에 대해 잘 이해하는 그는 이번 <비밀의 정원>에서 절제된 사운드로 자칫 무겁고 자극적으로 흐를 수 있는 감정과 일상을 조율해간다.
깨질 듯 무너질 듯 조심스럽게 쌓아 올린 무던하고 평화로운 삶이 피아노로 그려진다면, 내내 주인공이 감추고 있던 상처는 두터운 첼로로 표현되는데, 이 둘이 조화되며 만들어내는 미니멀한 선율의 깊이는 어떻게 지울 수 없는 깊은 고통의 흔적이 그래도 조금씩 아물어 갈 수 있는지 납득하게 만든다. 진심 어린 위로와 배려가 만들어가는 관계를 노골적이고 신파적인 선율로 포장하지 않고, 진솔한 울림으로 한 음 한 음 담아낸 스코어는 은은한 사람의 온기를 머금는다.
아이들은 즐겁다
By 이진아
네이버에 연재된 허5파6의 <아이들은 즐겁다>는 아이들 낙서 같은 간결한 그림체로 깊은 여운과 공감을 안겨준 힐링 웹툰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각종 단편영화제에서 상을 휩쓴 이지원 감독이 현대를 배경으로 연출한 영화 역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따스한 시선으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여기에 슬그머니 눈물을 닦고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음악은 독특한 음색과 아기자기하고 발랄한 노래들을 선사해 “K팝 스타 시즌4”에서 주목받은 싱어송라이터 이진아가 맡았다.
영화음악으로는 첫 도전인데 전공인 재즈뿐 아니라 팝, R&B, 힙합, 포크, 발라드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아우르며 자신의 색채를 각인시키는 뮤지션답게 달달하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를 잘 간직한 채 동요적인 터치로 원작과도 너무나 싱크로율 높은 찰떡 사운드를 선사해 동심 속 여정으로 자연스레 동참하게 만든다. 이진아 트리오에서 함께 하는 동료 드러머 서주영과 베이시스트 박종우가 참여해 힘을 보태며, 우쿨렐레나 시타르 같은 악기를 비롯해 미디를 활용해 유년 시절의 장난스럽고 신기하며, 때론 무료하고 울적하며, 또 신나는 기운까지도 척척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아이들의 시선에 잘 맞춰진 보석 같은 영화음악이다.
십개월의 미래
By 모임 별 & 남궁 선
감동으로 다가와야 할 임신과 출산이 누군가에겐, 또 어느 시기에선 하나의 재난이자 공포로 그리고 코미디로도 느껴질 수 있는 측면을 발칙하게 다룬 <십개월의 미래>는 독창적인 스타일과 경쾌한 호흡으로 밀어붙인 남궁 선 감독의 데뷔작이다.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보이지만 당사자에겐 천지개벽할 운명의 전환점이니, 어쩜 무겁고도 잔혹한 부조리일 테지만 그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고 영화에 기묘한 톤 앤 매너와 활력을 부여하는 건 모임 별이 맡은 사이키델릭하며 빈티지스러운 전자음과 여러 6∼70년대 오래된 가요들 덕분이다.
사운드트랙엔 이용복과 김태희, 김치켓의 노래들은 빠졌지만, 대신 영화 속 주요 사건의 발단이 되는 ‘김김의 생일’에서의 라이브나 인상적인 대사들이 삽입되는 등 영화의 보완적인 역할을 해준다. <고양이를 부탁해> 이후 20년 만에 영화음악으로 돌아온 모임 별이 새로 만든 드림 팝 스타일의 사운드와 감독이 직접 편집하며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부터 재즈 음악 샘플 등에서 편곡한 큐들은 초현실적이면서 암울하고 동시에 지극히 냉철하며 어리석은 인물들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독특한 에너지와 감수성을 펼쳐 보인다. 스타일리시하면서도 대범한 사운드 임팩트.
간호중
By 김준성
작년 MBC와 한국영화감독조합 그리고 웨이브가 손잡고 8명의 감독들에게 한국 SF 단편 원작을 각색해 연출을 맡긴 SF 앤솔로지 시리즈 <SF8>이 제작됐다. 민규동 감독이 연출을 맡은 <간호중>은 그 첫 번째 작품으로 호평에 힘입어 방영 당시보다 24분 늘어난 79분짜리 확장판을 새롭게 극장에서 개봉했다. 공감각적이고 미니멀한 일렉트릭을 중심으로 현악 편성을 얹어 아방가르드 색채를 띠는 강렬한 사운드가 인상적인데, 수필름과 협업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영화음악가 김준성이 음악을 맡아 김지애, 조란, 전세진, 이선하 등 씨네노트 소속의 작곡가들과 함께 국내에선 접하기 힘든 정통 SF 장르의 스코어를 선보인다.
마치 요한 요한슨의 <컨택트>나 제프 배로우와 벤 솔즈베리의 <엑스 마키나>, 혹은 한스 짐머와 벤자인 월피쉬의 <블레이드 러너 2049> 등의 접근법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음악은 죽음과 상실, 운명과 존재 등 묵직한 철학적 화두와 결부되며 으스스하면서 음침한 잔향을 짙게 드리운다. 로봇이 내리는 가치 판단에 대한 두려움인지, 인간과 닮아가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경이감인지, 아님 트롤리 딜레마에 빠진 윤리학적 혼돈과 종교적 무능인지 모를 복합적인 감정들의 비명처럼 느껴진다.
사운드트랙스 영화음악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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