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편은 말할 것도 없이 성공적이었으나, 속편은 조금 미묘했던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바로 그 영화 <킹스맨> 시리즈다.
흔히 할리우드 무비의 첩보물이라고 하면 재즈가 흐르는 고풍스러운 바에서 진중한 표정으로 독한 술잔을 앞에 놓고 냉랭한 공기 속에 반은 거짓말, 반은 진심인 듯 서로를 시험하는 대화를… 뭐 그런 A급 웰메이드 첩보 스릴러가 아니었겠나. 하지만 <킹스맨> 시리즈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으니, 자타 공인 B급 취향인 매튜 본 감독의 손을 거쳐 다소 가차 없는 분위기의 원작이 유머러스한 연출과 수준급 시나리오를 토대로 흥행몰이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귀족적인 이미지의 영국 배우 콜린 퍼스는 섬세한 감정연기의 대명사였으나,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해리 하트 역으로 출연하면서 원테이크 액션에서도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선보이며 전 세계에 미중년 콜린 퍼스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이전부터 역할을 가리지 않는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여 왔으나 완벽한 핏의 정장 차림으로 가차 없이 발길질에 총질까지 선사해 주는 모습은 확실히 새로웠기 때문에. 하지만 콜린 퍼스가 1편에서 하차하는 듯한 전개를 보여주었고, 2년 후 2편에서 등장을 확정 짓기까지 모두가 콜린 퍼스의 시리즈 내 행보를 궁금해했다.
시리즈는 2년 후 2편을 공개했고 콜린 퍼스도 복귀했지만, 전편에 비해 존재감이 아쉬운 빌런 포피(줄리안 무어)와 더불어 스테이츠맨이라는 신규 지부까지 등장했음에도 평은 예전만큼 좋지 못했으나 어찌 됐든 흥행에는 성공했다. 이에 따라 전편만큼 후속편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는 않았어도 시리즈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팬들도 다수였다. 하지만 제작사였던 폭스가 디즈니에 인수되면서 이래저래 늦어진 감이 없지 않다(이른바 어른의 사정…). 여차여차 어쨌거나, 매튜 본 감독은 그대로지만 출연진과 시대적 배경까지 다른 세 번째 작품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에그시 언윈의 성장 드라마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첫 번째 작품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는 주인공인 에그시 언윈(태런 에저튼)이 어떻게 킹스맨 요원으로 거듭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에그시는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운동신경을 타고나 체조 분야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으나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고, 해병대에 입대했지만 킹스맨 요원으로 일하다 유명을 달리했던 아버지처럼 되지 말라는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혀 중도 하차를 선택하고 말았다. 이후 별다른 직업도 없이 적당히 살아가다가 감옥에 수감될 처지에 처하자, 아버지의 전사 소식을 전하러 왔던 남자가 주었던 훈장과 메시지를 기억해내 전화를 건다.
에그시를 찾아온 것은 아버지의 전사 소식을 전했던 킹스맨 요원이자, 아버지가 몸을 던져 생명을 구한 사람이기도 한 해리 하트였다. 해리 하트는 귀족 출신만 선발한다는 킹스맨 요원 후보로 에그시를 추천하게 되었고, 에그시는 그렇게 킹스맨 요원 선발과정에 들어가 테스트를 거듭하게 된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해리와 애그시가 대화하던 중 동네 불량배들이 와서 시비를 걸자 해리가 우산과 안경, 놓여 있던 술잔 등 얼핏 평범해 보이는 물건으로 엄청난 화력을 선보이며 이들을 때려눕히고 선술집 사장의 기억까지 삭제해 버리는 그 시퀀스다. 킹스맨 시리즈 전체를 상징하다시피 하는 대사가 되어 버린,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 Maketh Man)'이 등장한 장면이기도 했다.
평범한 양복점처럼 보이는 킹스맨이라는 가게가 사실은 킹스맨 조직의 지부로 통하는 비밀스러운 입구였으며, 만년필과 라이터와 안경 같은 소위 '영국 신사'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물건들이 최첨단 기술을 탑재한 무기로 활용되는 장면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더불어 착한 천성도, 타고난 재능도 있었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고 그 기회도 스스로 포기한 채 살아가던 에그시가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거는 요원으로 재탄생하는 성장영화적인 면모 역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요소 중 하나였다.
미국 지부, 성장한 에그시까지, 하지만…
<킹스맨: 골든 서클>
두 번째 타이틀인 <킹스맨: 골든 서클>은 영국을 주 무대로 했던 전편에서 미국으로 무대를 확장한다. '정장은 현대 신사의 갑옷이며, 킹스맨 요원은 현대의 기사단'이라는 해리 하트의 작중 대사처럼 킹스맨이라는 이름부터 영국의 기사단을 연상시키는데다 코드네임이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단 이름을 따오고 있기 때문에 얼핏 영국에 한정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전 세계에 킹스맨 지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킹스맨의 미국 지부인 '스테이츠맨'을 선보였다.
2년 만인 2017년에 개봉한 이 영화의 시작은 영국의 킹스맨 본부가 사상 초유의 악당에게 공격당해 전부 파괴되자 어쩔 수 없이 다른 지부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위기 상황이다. 전편의 한 끗 엇나간 모습과는 달리 몸에 잘 맞는 수트를 차려입고 작전을 수행하는 에그시, 그리고 에그시의 교관이자 킹스맨 지부의 후방 요원이었던 멀린, 그리고 전편의 절정 직전에 퇴장했던 해리 하트의 재등장이 대표적인 볼거리라고 할 수 있겠다.
주요한 내용은 킹스맨 요원들과 스테이츠맨 요원들이 협업하며 포피의 거대한 음모에 맞서는 것으로, 큰 사고 이후 기억을 잃은 해리 하트가 살짝 모자란 모습(…)을 보일 때마다 제자 격인 에그시가 일침을 놓거나 하는 식이다. 첫 편에서 답 없는 인생 살던 에그시를 잔잔하게 혼쭐내던 해리의 모습과 대조적인 반면… 제자의 훌륭한 듯 다소 버르장머리 없는 성장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일지도.
역사 뒤편의 영웅 ‘킹스맨’의 시작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전 세계로 나갈 준비를 마치고, 이제 더 큰 이야기를 하려나 했더니 킹스맨의 세 번째 타이틀로 제시된 것은 다름 아닌 프리퀄이었다. 해리 하트가 처음 에그시에게 킹스맨 조직에 대해 설명할 때 밝혀진 적 있는 킹스맨의 출발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인 듯. 해리 하트가 당시 에그시에게 전하기로는, 전 세계의 고위층은 킹스맨 재단사들에게 자신들의 수트 제작을 맡겼고 그들은 1차 대전 당시 대부분 아들을 잃었다고. 때문에 이런 일을 미연에 막기 위해 킹스맨이라는 이름의 조직을 만들었다 정도로만 언급되었다.
어쩌면 이쯤이 딱일 수 있다. 어떤 영화가 시리즈로 이어지고, 프랜차이즈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탄탄한 구성과 배경에 대한 설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인 프리퀄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의 개봉으로 킹스맨은 지난 시리즈를 관통하는 공통된 세계관을 획득할 수 있고, 긴 역사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추진력과 토대를 얻게 되는 셈이다.
킹스맨 조직과 요원들의 이야기, 그들이 사용하는 물건과 그에 대한 역사를 첫 편에서 보여주었다면 두 번째 작품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킹스맨 지부가 존재하고 있으며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나 서로 간에 큰 접점이 있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시리즈는 '킹스맨' 조직의 시작으로 돌아간다.
개봉 전이라 아직 자세한 시놉시스를 알 수는 없지만,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전시 시국의 유럽을 배경으로 킹스맨 요원의 성장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1편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콜린 퍼스가 담당했던 소위 '스승' 역할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지배인이자 <해리 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 역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배우 레이프 파인스가 연기한다. 신임 에이전트로는 <말레피센트 2>의 필립 왕자 역을 맡았던 배우 해리스 딕킨슨이 등장하고, 후방 지원 에이전트 역할은 <타이탄>의 이오 역으로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젬마 아터튼이 연기할 예정.
제정 러시아의 요승으로 불렸던 실존 인물, 그리고리 라스푸틴(리스 이판)이 등장을 확정지었는데 예고편에서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화려한 액션신을 예고하고 있다. 킹스맨 에이전시의 시작점과 초기 모습, 창설에 얽힌 이야기는 물론이고 당시 유럽의 비극적인 상황과 더불어 러시아 제국의 화려한 모습도 엿볼 수 있을 듯. 시대는 달라졌지만 여전한 모습의 킹스맨 양복점과 유서 깊은 무기들도 등장 예정이다.
사실 어쩐지 아쉬운 느낌이 없지는 않다. 시리즈의 팬으로서 이야기가 이어지기를 바라 왔기에 더더욱 그렇다. 물론 매튜 본 감독은 콜린 퍼스와 테런 에저튼이 킹스맨 시리즈가 3부작으로 완결된다는 데에 동의했으며 그 3편은 <킹스맨: 레드 다이아몬드>일 것임을 시사해 왔기 때문인데, 레드 다이아몬드는 코믹스로 먼저 나와 6권으로 완결되었지만 실사화 이야기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취소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기존 캐릭터들의 이야기 대신 프리퀄을 선보인 셈이니, 시리즈 전체에 있어서는 장기적인 토대가 되겠으나 ‘해리 하트와 에그시’의 이야기를 기다렸던 팬들에게는 다소 아쉬움을 남기는 게 사실이기에.
하지만 잘 차려입은 신사들이, 역사에 남지도 않을 명예를 위해 거침없이 싸운다는 건(심지어 수트를 입은 채로…!) 여전히 매력적임에 틀림없다. 007 시리즈 같은 첩보물의 고전을 거침없이 패러디하고, 액션 신만큼은 자비가 없으며, 지독하게 잔인할지언정 OST만은 유쾌하기 짝이 없는(1편의 불꽃놀이와 학살을 떠올려보자) 이 시리즈 본연의 매력이 그리워질 때가 됐다. 콜린 퍼스도 테런 에저튼도 없는 킹스맨이지만 이런 시리즈가 갖는 장점들은 그대로 남아 있기에, ‘킹스맨’이 여기서 끝나지 않고 뭔가 더 해볼 만한 시리즈라는 걸 증명해 주길 바라는 바이다.
물론 대진운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15일엔 마블 초절정 인기 히어로인 스파이더맨의 세 번째 시리즈이자 MCU의 4페이즈를 이어가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다 무려 18년 만에 컴백하는 SF 무비의 전설적인 작품 <매트릭스 4: 리저렉션>은 같은 날인 22일 경쟁작으로 개봉 예정인 탓이다. 거기에 우리의 영원한 네오, 키아누 리브스까지 돌아올 예정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역으로 보면, <매트릭스 4: 리저렉션>이 웰메이드 SF무비라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어설픈 듯 강인한 소년 피터 파커의 위기 극복 프로젝트일 테니,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전쟁 중에서도 신사의 품위와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 신개념 스파이 조직의 시작을 보여줄 것이므로 매력 포인트는 제각기 다르다. 부디 탄탄한 퀄리티로 시리즈의 연속성을 단단히 보장해 주기를.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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