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시작
영화 <블랙 팬서>가 마냥 호평 일색이었던 작품은 아니지만 그 시작이 상당히 화려했던 건 사실이었다. 시빌 워에서 멋진 등장으로 시선을 사로잡고, 비브라늄으로 전신을 휘감은 수트에, 숨겨진 거대한 왕국 와칸다의 면모를 엿볼 수 있게 됐다는 것까지. 여기에 등장인물의 90%가 흑인 배우로 캐스팅되어, 당초 흑인 배우들은 조역에 그쳤던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는 이례적인 작품이 되기도 했다.
부산에서 촬영한 광안리 추격 신과 자갈치 시장 신(...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에 등장한 한국어 등으로 한국 팬들에게도 꽤 큰 화제가 되었는데, 당시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에 방문하는 등 내한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시놉시스나 당위성에 대한 논란이 다소 있기는 했으나 영화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흥행에 대성공했다. 2018년 개봉 당시 무려 13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MCU 솔로무비 중 흥행 1위 기록을 탈환하는 기염을 토하기까지 했으며, 히어로무비 최초로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등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이후 와칸다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등에서 주요 무대로 등장하기 시작하며 명실상부 MCU의 주된 배경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고, 존재를 숨겨 왔던 지난날을 뒤로 한 채 세계에 공개적으로 와칸다의 이름을 알리고 전 세계에서 고통받는 흑인들을 위해 행동할 것을 약속하며 더 많은 일을 해낼 것으로 보였다.
트찰라의 죽음
하지만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벌어지고야 만다. 트찰라 역을 맡아 블랙 팬서로 열연을 펼치며, 미국 내 흑인 커뮤니티의 주요 인물로 급부상하기도 했던 배우 채드윅 보스만이 암 투병 소식을 전해왔던 것이다. 보스만은 투병 사실을 숨긴 채 항암 치료와 촬영을 병행해 왔지만 결국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2020년 여름 향년 42세로 별이 되고 말았다.
관계자들과 동료들, 영화계는 물론 팬들도 채드윅 보스만을 애도했는데 그가 훌륭한 배우였을 뿐만 아니라 흑인 커뮤니티에서도 다방면으로 노력하며 의미 있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소식에 의하면 그가 암 선고를 받은 것은 무려 2016년의 일로, 햇수로 5년간이나 투병 사실을 숨긴 채로 <블랙 팬서>, <마셜>,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 등 작품활동에 임해 왔으며 그간 항암 치료와 수술도 병행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보스만은 가족 곁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에서야 자신의 투병 사실을 전해 왔으며, 마블의 수장인 케빈 파이기를 비롯해 그의 많은 동료들도 모르고 있었던 일이라고 전했다.
마블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이 되고 말았는데, 흥행에 성공했음은 물론 MCU에서도 남다른 의미를 갖게 된 <블랙 팬서>의 주인공인 채드윅 보스만의 빈자리가 너무도 컸기 때문이었다.
블랙 팬서의 빈자리는?
와칸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자 블랙 팬서 그 자체였던, 거기에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던 트찰라가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되자 그의 자리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에 대한 예측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작중의 워머신이 그랬던 것처럼 배우를 교체하는 방안도 있었고, 작중에서도 트찰라가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시나리오를 변경하는 방법도 있었다.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마블 스튜디오는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힌다. 블랙 팬서 역으로 다른 배우를 캐스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새로운 배우 기용은 없다고 못 박힌 이상 기존의 배우들 중에서 블랙 팬서의 빈자리를 메워 주어야 했을 텐데. 블랙 팬서의 경우 단순히 '블랙 팬서'라는 이름의 자경단 히어로가 아닌, 대국 와칸다의 왕이자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인 동시에 어벤져스의 히어로이기도 했기에 쉽사리 누군가가 대체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개중 가장 유력한 차기 블랙 팬서로 꼽혔던 인물은 슈리였다.
'블랙 팬서' 트찰라의 친동생이자, 와칸다 최고의 과학자인 슈리는 다양한 측면에서 가능성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와칸다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슈리의 능력은 세계관 내에서도 손꼽힐 만한 실력일 것이며, 블랙 팬서가 클로를 추격하던 부산에서도 원격 조종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이후 트찰라의 생환을 돕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으며 새로운 수트를 건네주며 트찰라가 다시 승리하기까지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또다른 후보 중에서는 트찰라와의 마지막 싸움에서 최후를 맞이한 킬몽거가 블랙 팬서가 될 거라는 추측도 있었다. 하지만 전편에서 이미 킬몽거는 퇴장한 상태였고, 그가 생환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설득력 있는 서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기에 부가적인 작업이 다수 필요한 킬몽거보다는 슈리가 더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킬몽거가 트찰라와의 첫 번째 결투에서 이미 승리했고 혈통 면에서도 결격사유가 없는 바이기에 와칸다의 법칙에 따르면 킬몽거가 더 왕의 자리에 어울린다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
실제로 원작 코믹스에서는 슈리와 킬몽거가 2대 블랙 팬서가 된 사례가 있기에, 일련의 상황을 종합해서 볼 때 슈리가 2대 블랙 팬서가 되어 와칸다의 새로운 왕이 된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어 보였다.
2편 확정 및 촬영 시작
여러 가지 추측과 루머에도 불구하고 <블랙 팬서>의 2편인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내년인 2022년 개봉을 목표로 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지난 6월 촬영을 시작한 현장 유출 사진에는 트찰라 왕을 애도하는 메시지가 적힌 기둥이 찍혀 있어, 작중에서도 트찰라가 사망한 것으로 진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 오랫동안 판권 문제로 MCU 등장 여부가 불투명했던 네이머의 등장 루머가 나오면서, MCU에서는 아직 다루어진 바 없는 아틀란티스를 무대로 한 새로운 이야기를 펼칠 가능성이 제시되기도 했다. 또한 2대 아이언맨이자 흑인 여성 캐릭터인 아이언하트의 등장도 확정되어 새로운 페이즈에 걸맞은 새로운 스토리라인을 펼칠 것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추가로 나키아와 트찰라의 사이에 아들이 있으며 이 아들이 새로운 블랙 팬서의 이름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이야기, 전편에서 트찰라의 귀환에 큰 도움을 주었던 자바리 족장 음바쿠가 그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는 이야기 등 다양한 루머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전세계적인 펜데믹 사태로 인해 많은 일이 있었고 이 때문에 MCU의 라인업도 1년, 길게는 2년 가까이 지연되었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도 예외는 아니었고 이 때문에 당초 예정보다 일정이 늦어졌지만, 무사히 촬영에 돌입했고 디즈니 플러스의 선전으로 인해 다양한 플랫폼이 확보되면서 이제 별일 없이 개봉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슈리 배우의 백신 접종 거부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슈리' 역할의 배우 레티티아 라이트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게시글 때문이었다. 라이트는 지난해 말에 코로나 19 백신을 신뢰하지 않는 내용의 영상을 자신의 트위터에 공유했고, 이후에도 백신을 접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는 경우 자유로운 출입국은 물론이고 상당한 행동 제한이 이루어지는데, 백신의 효과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 것도 접종하지 않는 것도 본인의 자유이겠으나 천재 과학자 캐릭터로 이름을 알린 배우였던 만큼 다소 미신에 가까운 내용을 신뢰하는 듯한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다지 긍정적으로 비춰지지는 않았다.
이듬해 촬영이 시작된 이후, 8월에 라이트는 촬영 중 부상을 입게 된다. 영국 국적인 라이트는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던 미국을 떠나 영국에서 입원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문제는 점점 심해지는 팬데믹 사태로 인해 방역조치가 강화되자 백신 미접종자인 라이트는 다시 미국에 입국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라이트가 입은 부상이 알려진 것보다 심각해서 입원 치료가 불가피한 상황이었으며 회복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도 큰 문제이겠으나, 전세계가 코로나로 고통받는 시국에 여러 사람들과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배우가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있는 것도 문제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두 상황이 겹치면서 결론적으로 레티티아 라이트의 현재 상황 때문에 영화 개봉은 미뤄지기 시작했고, 일각에서는 레티티아 라이트가 계속해서 접종을 거부한다면 슈리 역할 배우를 재기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디즈니가 촬영장에서 일하는 스탭들에게 백신 접종 완료 표식을 한 팔찌를 할 것을 의무화했음은 물론 전세계의 방역 조치가 강화되고 있는 실정 속에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레티티아 라이트 본인이 슈리 역을 포기한다는 다소 신빙성 떨어지는 루머까지 떠돌고 있다.
그리고, 현재
문제가 심각해지자 마블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레티티아 라이트의 배역을 교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물론 본인 스스로 하차하겠다고 언급한 것 역시 사실이 아닌 루머다. 하지만 영화에서 비중이 높은 역할인 데다가 안티백신이라는 사실이 확산되면서 레티티아 라이트에 대한 논란은 한층 더 거세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일부에서 제기되었던, 레티티아 라이트가 본인이 접종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촬영장에서까지 다른 스태프들에게 접종 거부를 종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본인이 직접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런 사실이 없으며 자신은 결백하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트위터에 백신 접종 거부를 권하는 듯한 내용으로 게시했던 것은 사실이며 따지고 보면 모든 논란의 출발점은 거기였다. 지금은 트위터 계정을 삭제했고 게시글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입장이 달라졌다고도 볼 수 있겠으나, 레티티아 라이트가 아직 접종을 받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여러모로 우여곡절이 많은 타이틀이 아닐 수 없는데, 채드윅 보스만의 갑작스런 비보에다 당초 예상되었던 스토리라인도 수정이 필요했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거기에 비중이 큰 배우가 촬영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이 때문에 촬영이 지연된 데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더 지연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시국이 되고야 말았다.
생각해 보면 코로나 상황이 아니었다면, 거기에 레티티아 라이트가 현장에서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생길 수 없는 논란이었기에 불운이 겹쳐 벌어진 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작금에 와서는 무의미한 가정이 아닐 수 없고 앞으로의 상황은 좀 더 지켜볼 일이지만, 현재 상황대로라면 아무래도 예정한 시기에 개봉하는 것은 조금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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