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너스>

마이크 밀스는 2010년대에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두 편을 선보였다. <비기너스>(2011)에서는 75세에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며 새 삶을 살게 된 아버지를 기억했고, 그 후에는 어머니를 향한 애정과 존경을 동력 삼아 <우리의 20세기>(2017)를 완성했다. 밀스는 부모를 최선을 다하는 어른으로 그렸다. 양육과 보호의 책임에서 물러서지 않으며, 어떻게든 가장 좋은 길을 찾아내려는 존재.

동시에 영화 속 부모는 저마다 결함을 지닌 개인이자, 완벽하게 알기가 영영 불가능한 타인이기도 했다. 부모와 자식이 얼마나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관계인지 두루 파헤치면서, 밀스는 가족 공동체에서 발견하고 배운 것을 영화에 펼쳐놓았다. <컴온 컴온>은 그러한 여정 끝에 획득한 통찰 내지는 또 다른 다짐처럼 보인다. 이제 부모는 세상을 떠났고, 남은 이들은 가족을 재구성한다. 부모의 역할과 임무가 다음 세대에게 이어지듯,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일 또한 새로 태어난 아이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컴온 컴온>

치매를 앓던 어머니가 죽은 후, 조니(호아킨 피닉스)와 여동생 비브(가비 호프만)는 한동안 연락을 끊는다. 병간호 과정에서 남매는 수시로 언성을 높였다. 어머니를 돌보는 방식 때문에 다투다가 유년 시절부터 쌓아온 원망을 터뜨렸고, 상대를 염려하여 건넨 말은 의도와 달리 공격으로 가닿았다. 조니는 디트로이트의 한 호텔에서 비브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건다. 오늘은 어머니의 첫 번째 기일이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을 나눌 수 있는 이는 어쨌거나 동생뿐이다.

어색하면서도 다정한 인사를 나눈 다음, 비브는 어디냐고 묻는다. 라디오 저널리스트인 조니는 집보다 호텔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그는 미국 전역을 돌며 어린이와 청소년을 인터뷰하고, 삶에 관한 그들의 생각을 수집한다. 조니의 현재를 파악할 수 있는 주 영역이 일이라면, 비브에게는 가족이다. 비브는 아홉 살이 된 아들 제시(우디 노먼)를 똑똑하고 별난 아이라고 소개한다. 여동생이 별거 중인 남편에게 방문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하자, 조니는 그동안 조카를 돌보겠다고 자청한다.

영화는 조니를 따라 디트로이트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한다. 조니는 그곳에서도 아이들을 인터뷰한다. 미국은 넓고, 도시는 균일하게 성장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도시의 쇠락과 번영을 눈치챈다. 기후 변화의 위험성,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기성세대의 오만, 인간성의 상실 등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도 꿰뚫어 본다. 다만, 아이들은 그와 무관하게 미래를 상상하고 낙관할 줄도 안다.

조니는 나중에 방으로 돌아와서 아이들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제 의견을 짤막하게 덧붙인다. 인터뷰는 즐거움과 피로가 교차하는 업무이자, 조니에게 가장 익숙한 대화 방식이다. 그는 자주 묻고, 내내 듣는다. 말은 아주 적게 한다. 제시를 만났을 때, 조니는 마이크와 녹음기를 꺼내 든다. “미래를 생각하면 뭐가 상상돼?” 제시는 눈을 내리깔며 대답하기 싫다고 한다. 아이는 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질문하고 싶어 한다. “엄마랑 왜 연락 끊었어요?” 말문이 막힌 조니에게 제시는 계속해서 묻는다. 삼촌은 왜 결혼하지 않고 혼자인지, 그토록 사랑하는 여자와는 어째서 헤어졌는지.

<컴온 컴온>

일과 육아를 잠시 병행하는 동안, 조니는 흔들린다. 제시는 통제할 수 없는 대화 상대다. 예상치 못한 질문 속에서 조니는 미결 상태로 묵혀둔 감정을 발견하는가 하면, 이미 안다고 여겼던 이의 낯선 모습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는 여유를 잃은 채 혼란스러워하지만, 녹음을 종료해도 제시와의 관계는 중단되지 않는다. 영화는 눈앞이 캄캄할 때, 예술과 지식이 길잡이가 되어준다고 말한다.

제시는 <오즈의 마법사>를 읽으며 잠들고, 조니는 <어머니: 사랑과 잔인함에 관한 에세이> <카메라맨이 할 수 있는 일의 불완전한 목록> 등에서 힌트를 얻는다. 두 사람은 함께 미국을 횡단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으로 넘어가고, 뉴올리언스를 거쳐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온다. 물론 ‘부모 노릇’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조니는 인내심이 바닥나는 제 모습에 실망하며 돌봄을 포기하려 하거나, 두 다리가 꺾인 채 쓰러지기도 한다. 그때 제시는 계속해나가는 법을, 다시 일어나서 스스로 회복하는 법을 일러준다. 조니가 인터뷰했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제시의 목소리에도 나름의 희망과 진실이 담긴다.


리버스 reversemedia.co.kr

차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