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다’는 영화 주인공인 돼지의 이름이다. 그러나 이 이름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어떤 방식으로든 등장하지 않는다. <군다>는 인간의 언어가 배제된 동물 다큐멘터리다. 자막, 인터뷰, 보이스오버 내레이션 대신 영화를 채우는 건 자연의 소리와 자태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작은 축사에 누워있는 돼지 한 마리가 보인다. 지금 출산 중이다. 갓 태어난 새끼 돼지들은 곧 기운을 차리고 삐악거리며 젖을 빨고, 축사 밖에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돼지 가족의 모습이 주로 등장하지만, 닭과 소도 각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다. 작은 철장 밖으로 나온 닭들은 황야를 누비듯 수풀 속을 내달리고, 들판의 소들은 인상적인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그리고 다시 돼지 가족. 새끼들은 어미와 함께 뒤뜰을 거닐며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런데 지금 보고 있는 게 어떤 광경이며, 영화가 대강 어떻게 진행될지 알려주는 설명은 끝까지 제공되지 않는다. 제거된 건 말뿐만이 아니다. 화면은 흑백으로 구성돼있고, 내용을 보조해줄 음악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렇게 오직 동물의 모습으로 가득한 93분이 흐른다.
산들바람이 불고 햇볕 내리쬐는 때가 많다고 해서 <군다>를 마냥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영화라고 소개하기엔 걸리는 대목들이 제법 있다. 무엇보다 이곳은 농장이다. 엔딩 크레딧에 따르면 영화는 노르웨이, 스페인, 영국의 농장과 보호구역에서 촬영됐으며, 돼지와 소의 귀엔 그들이 인간의 통제 아래 있다는 표식인 플라스틱 인식표가 달려있다. 또한 영화를 본 이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마지막 장면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정서적 충격을 남기는 영화의 엔딩은 축사의 돼지들이 어쨌거나 가축이라는 점을 상기하게 한다. 인간을 위해 쓰일 가축 말이다.
그렇다면 <군다>는 경각심을 일깨우고 동물을 보호하자고 외치는 투사의 영화일까. 동물권 활동가이기도 한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영화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고,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감독은 유년기를 함께 보낸 돼지의 죽음을 보고 일찌감치 채식을 시작했다고 하니, 영화의 의도를 그처럼 해석하는 건 아마도 가장 자연스럽고 적합한 방향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엔 비슷한 계열의 영화에서 흔히 찾아볼 법한 방법, 즉 피사체에 강하게 감정이입 하도록 만드는 장치가 없다. <군다>는 외려 그런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영화 매체의 가능성을 탐구해보는 작품이다.
동물을 다루는 가장 손쉬운 방식은 동물을 인간의 서사에 빗대는 것일 테다. 여기에도 그 방법을 적용해본다면, ‘군다’는 새끼들을 사랑으로 키워낸 엄마가 되고, 새끼 돼지들은 역경을 딛고 성장한 아이들이 되리라. 한쪽 다리가 없는 닭과 나이 든 소들에게도 각자의 이야기가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욕망과 필요에 의해 구성된 내용이다. 물의 압도적인 힘을 다룬 감독의 전작 <아쿠아렐라>(2018)가 날카롭게 일깨웠듯, 자연은 언제나 인간이 바라는 것보다 조금 더 차갑고 냉정하다.
동물은 인간의 영원한 타자다. 인간 서사에 꿰맞출 수 없는 존재다. 대초원을 자유로이 뛰노는 동물이 아니라 가축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이것이 <군다>가 동물 앞에서 지켜내고자 노력하는 윤리적 태도다. 인간의 말, 음악, 색깔을 전부 배제한 선택 역시 이와 연관된다.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도움 없이 보기’다. 그러면 관객은 “인간과 인간의 감정을 제거하고”, “동물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듣는다.
<군다>는 인간의 눈이 아닌 렌즈를 통해 자연을 탐구하려는 일련의 시도와 비슷한 맥락 속에 있다. <마이크로코스모스>(클로드 누리드사니, 마리 페렌노우, 1996)와 <리바이어던>(베레나 파라벨, 루시엔 캐스팅-테일러, 2012), 그리고 더 많은 수의 다큐멘터리들이 카메라 렌즈와 촬영술의 발달에 힘입어 저 미지의 세계를 비인간의 시선으로 포착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러한 작품들과 비교하자면 <군다>엔 여백이 많은 편이다.
동물의 걸음을 따르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이동이 없고, 카메라의 능력이 지나치게 강조돼있지도 않다. 그런데 그 빈 곳에 흥미롭게도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이 쌓인다. 감정을 자극하는 내레이션이나, 동물을 의인화하는 설정을 최대한 덜어냈는데도, 어쩌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는 이야기의 충동이 이따금 일렁인다. 동물의 어느 순간들을 장엄하게 담아내는 촬영이 아마도 일부 관여할 테지만, 객관적 관찰과 이야기의 욕망은 언제나 서로 등을 맞대고 긴장 상태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것이 동물 문제를 출발지로 삼은 <군다>가 도달한 곳이다.
리버스 reversemedia.co.kr
글 손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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