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난과 전쟁, 기근으로 전 세계가 망가진 2027년, 설상가상으로 인류는 16년째 불임을 겪고 있다. 단 한 명의 아이도 태어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테오(클라이브 오웬)는, 오래된 친구이자 아버지상인 히피 재스퍼(마이클 케인)를 찾아간다. 함께 대마초를 나눠 태우던 중, 재스퍼는 몸을 앞으로 바짝 당기며 말문을 연다.
“그러니까, 휴먼 프로젝트가 전세계 석학들을 초대한대.”
“휴먼 프로젝트라니, 다들 왜 그런 헛소리를 믿어요? 설령 그런 단체가 존재해서 온갖 설비와 비밀 기지가 있다고 해도, 불임을 치료한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이미 늦었으니까. 세상이 다 썩었잖아요. 그거 알아요? 불임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너무 늦었어요, -발.”
테오의 공격적인 냉소에 재스퍼는 씁쓸하게 대꾸한다.
“그냥 농담하려던 거였어.”
재스퍼의 말에 머쓱해진 테오는, 그제야 웃으며 말한다.
“미안해요. 계속 해봐요.”
“싫어, 안 해.”
“에이, 해봐요.”
“아 씨 안 한다고.”
“해주세요.”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재스퍼는 농담을 이어간다.
“좋아. 휴먼 프로젝트 측이 온갖 석학들을 근사한 만찬에 초대해선 ‘왜 여자들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는가’라는 궁극적인 미스터리를 두고 토론을 벌였어. 유전자 실험 탓이다, 방사선 때문이다, 환경 오염 때문이다… 다 뻔한 얘기지. 그런데 구석에 한 영국 남자가 앉아서, 말은 한 마디도 안 하고 계속 먹기만 하더래. 그래서 누가 물었지. ‘선생은 왜 더는 아이가 안 생긴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남자가 큼직한 윙을 뜯다 말고 고개를 들어 말했대. ‘나도 도통 모르겠소. 그런데 이 황새고기 정말 맛있지 않소?’”
황새가 집집마다 갓난아기를 배달해준다는 영미권 전설을 비튼 농담의 끝에, 테오와 재스퍼는 함께 박장대소한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2006)의 한 장면이다.
2. 최근 BBC를 비롯한 외신들이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주목하면서, 한국의 고질적인 저출산 문제는 다시 한번 입길에 올랐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치인 0.81, 그러니까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가 1명이 채 안 된다고 조사되면서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가 중 출산율 꼴찌 자리를 다시 한번 굳혔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좋은 일자리는 없는데 집값은 오르고 아이들의 교육비는 갈수록 수직 상승하는 세태를 문제로 꼽았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일이 경제적으로 심각한 부담이 된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그들의 지적도 옳다. 하지만 주거비용 상승과 노동의 형해화는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개발이 많이 된 선진국일수록 그렇다. 좋은 일자리는 적은데 주거 관련 지출은 높고 교육열은 뜨거운 나라가 어디 한국뿐일까? 그걸 생각한다면, 경제적인 요인만으로는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출산율을 설명하기 애매해진다. 온갖 출산 장려 정책들을 써봐도 백약이 무효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이 갸우뚱하는 이유다.
뉴스를 접한 수많은 사람들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대체 몇 년째 이야기해야 하는 거냐고. 여자들이 아이를 안 낳는 이유는, 좀처럼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은 세상이라서 그렇다고. 만들기는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아이인데, 양육의 책임은 엄마가 우선적으로 져야 한다면, 그로 인해 인간관계의 단절과 직업적 경력의 단절을 경험한다면, 아이를 낳는 순간 온갖 무시와 멸시에 시달려야 한다면, 그런데 혹시라도 내가 낳은 아이가 딸이라면, 그래서 이 모든 과정을 내 아이도 똑같이 겪어야 한다면.
BBC도 같은 지점에 주목했다. BBC는 높은 생활비와 천문학적인 집값 등을 이유로 꼽은 뒤,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으로 한국 사회의 여성 인권을 짚었다. “한국의 여성들은 고등교육을 받았으나, 일터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한국은 선진국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대부분의 가사 노동과 육아는 여전히 여성의 몫이라서, 아이가 생기면 일을 그만 두거나 경력이 단절되는 일은 흔하다. 근본적으로, 많은 한국 여성들은 아직도 일과 가족 중 하나를 선택하기를 강요당한다. 그리고 커리어를 희생하기를 거부하는 이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3. 아마 ‘세상이 이미 다 썩었다’는 테오의 말도, ‘누가 황새를 잡아먹어서 그렇다’는 재스퍼의 농담도 다 맞을 것이다. 황새가 아이를 가져다준다는 전승은 아이를 누군가 선물해 준 축복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반영된 것인데, 다른 사람들이 황새를 다 잡아먹는다면, 그러니까 타인의 아이를 축복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없다면 대체 누가 아이를 낳으려 하겠는가?
그러니까, 임산부 배려석을 차지하고 앉아서는 “임신이 벼슬이냐”라고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고 “질싸 인증”이라고 비아냥거린다면. 아이를 낳는 순간 엄마는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해 경력이 끊기거나,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쓰는 것도 주변의 눈치를 봐야 한다면. 아이를 낳고 난 뒤에도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말에 온 사회가 “아이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커리어만 생각한다니 이기적이다”라고 손가락질한다면. 자영업자들이 너무도 당당하게 문 앞에 ‘NO KIDS ZONE’이라고 써붙여놓고는 문전박대한다면. 툭하면 ‘맘충’이라 불리며 증오의 대상이 된다면. 황새를 다 잡아먹어버리고 나면, 대체 세상에 아이가 어떻게 나오겠는가?
테오의 말처럼 간신히 아이가 나온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이미 썩었으니까. 이처럼 아이를 혐오하고 여성을 혐오하고 제도적으로 차별하는 것을 옹호하는 세계에, 새 생명을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있으랴. 그리고 그렇게 낳은 아이가 다시 딸이라면. 이 아이가 자라면 내가 겪은 이 온갖 수모와 고생을 다 겪어야 한다면. 아, 그때는 아마 여자들이 제일 먼저 활을 꺼내어 황새를 쏘아 떨어뜨릴 것이다. 이 땅에 다시는 아이들을 데려오지 말라고. 필연적으로 불행해 질 아이들을 자꾸 내려놓지 말라고.
4. 영화의 말미, 벡스힐 난민 수용소에서 서로 총질을 하며 싸우던 영국군과 강경 이민자 무장단체 ‘피쉬당’은, 키(클레어-호프 아쉬티)가 낳은 어린아이를 보고는 아주 잠시 총질을 멈춘다. 십 수년 만에 처음 보는 인류의 아이를 접한 경외감에,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무릎을 꿇고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올린다. 이렇게, 인류가 불임이 되고 절멸을 코앞에 두고 있어야 비로소 아이의 귀함을 알게 되는 걸까. 그 날이 오기 전에 미리 바뀔 수는 없는 걸까. 황새가 날아다닐 수 있게 할 수는 없는 걸까.
이승한 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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