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레페차족은 멕시코 서부의 넓은 땅을 오랫동안 지배해왔다. 푸레페차는 한때 아즈테카를 막아낼 만큼 대제국을 이뤘으나, 16세기 대항해 시대 강자로서 전성기를 누렸던 스페인에게 항복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코코 : 죽은 자들의 세상 Day of the Dead : A Celebration of Life, 이하 <코코>>(데니스 리차드, 2022)은 푸레페차가 오랫동안 지키고 가꿔 온 문명을 지키기 위해서 스페인에 백기를 들었다고 설명한다. 멕시코를 점령한 스페인은 가장 먼저 가톨릭 종교를 앞세워 전통 문화의 흔적들을 하나 둘 잠식했다. 신에게 공물을 마치던 신전 대신 성당이 들어섰고, 원주민어 대신 스페인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일부 토착민들이 스페인의 새로운 종교와 문화를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푸레페차는 스페인 문화를 적극 수용한 토착민과 전통 문화를 지켜내려는 토착민으로 나뉘었다. 인종 갈등이 문화 갈등으로 확산하며 원주민들의 문화권이 철저히 유린당했다.
식민지 시대 멕시코와 ‘죽은 자들의 날’
푸레페차가 스페인에게 항복하면서까지 지켜 낸 전통 중 하나가 매년 11월 1일부터 다음 날까지 이어지는 이른 바 ‘죽은 자들의 날’이다. <코코>는 이 ‘죽은 자들의 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축제 당일에 이르는 날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 <코코>는 중남미 여행을 가더라도 경치 좋고 우아한 풍경을 찾는 여행객보다는, 그 지역 주민의 삶에 동화돼 얼마간이라도 살아가길 원하는 여행객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다큐멘터리다. ‘세계테마기행’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듯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굳이 미신이니, 비과학적이니 하는 문제를 따지지만 않을 수 있다면 말이다. 지역의 문화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해치지만 않는다면 그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편이 좋다.
<코코>가 영화를 시작하면서부터 스페인과 멕시코 간 인종 갈등을 포함하는 시퀀스를 전개하지만 영화는 민족 또는 문화 갈등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표면 위로 드러내기보다는 ‘죽은 자들의 날’에 좀 더 초점을 맞추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엿보인다. <코코>가 보여주는 세련미와 노련함은 이 지점에서 돋보인다. <코코>는 망자를 기리는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을 길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오히려 침략국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우회적으로 전달한다.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식이다. 주제 의식 또는 정치성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영화 미학적으로는 오히려 후퇴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코코>가 취한 전략은 현명하다고 본다. 주제를 우회해 보여주려는 연출 방식은 소재와 사안이 정치적 또는 사회적으로 예민할수록 돋보이는 경우가 대체적이다. 영화에서 다루는 중심 소재인 ‘죽은 자들의 날’이 태생적으로 불가피하게 인종 갈등을 포함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망자를 기억하는 산 자의 태도
‘죽은 자들의 날’을 구성하는 인물들과 재료들에 대한 배경 설명을 통해 멕시코 전통 풍습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감독의 시선 또한 영화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코코>는 라틴 풍 음악과 함께 보여주는 마을 풍경, 제단 위 먹을 것들과 노란 꽃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준비하는 사람들까지 컷을 나눠가며 하나하나 천천히 보여준다. 인터뷰와 내레이션을 사용해 각각의 시퀀스에서 보여주려는 풍습에 대한 설명을 친절하게 하고, 슬로우 모션을 걸어 축제의 숭고함을 강조하려는 영상미를 연출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슬로우 모션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죽은 자들의 세상’을 준비하면서도 슬픔에 머물러 있지 않다. 망자를 그리워하면서도 슬퍼하지 않는 자세, 슬픔을 거두고 삶으로 나아가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삶과 죽음을 모두 자연의 일부로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자세야말로 ‘죽은 자들의 날’의 핵심이다. 멕시코와 스페인 양국 간 무거운 역사를 다루는 <코코>는 멕시코의 전통 축제를 통해 관객들에게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재고를 요청하는 것이다.
펼쳐놓고 수습하지 않는 서사의 아쉬움
다만 아쉬움도 있다. <코코>는 영화 중반까지 유지하던 노련한 균형감각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다. 중반부터 푸레페차족이 신에게 공물을 바치던 유적지 관리인을 서사의 일부분으로 포함하면서, 영화의 주제의식은 ‘죽은 자들의 날’을 하나의 축으로 뻗어나가는 한편 스페인과의 역사적 갈등을 끌어들이고 만다. 곁가지인 척하기에 양국 간 갈등은 너무나 큰 서사이기 때문에, <코코>는 영화 후반부에 다다라서는 펼쳐놓은 서사를 수습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죽은 자들의 날’을 준비해나가는 과정을 앞서 전개해두었기 때문에, 축제 당일에 다다르는 마을의 분위기를 빌어 잘 봉합하기 어려운 두 서사를 억지로 꿰맬 수 있었다.
또 일부 유가족의 서사를 영화의 중심으로 들여오기 위해 푸티지를 활용한 아찔한 장면도 있다. ‘죽은 자들의 날’을 조명하려던 영화가 자칫 가족 신파 서사로 빠질 뻔했다. 이 장면은 엄격히 말해 감독이 수습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슬퍼하기보다는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유가족이 보여주었기 때문에 ‘죽은 자들의 날’의 의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메시지가 강화됐다. 만약 유가족의 자세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려는 메시지와 달랐다면 감독은 손에 잡히는 대로 펼쳐놓은 서사를 봉합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영화 <코코>는 멕시코와 스페인 양국 간 역사적 갈등과 전통 풍습이 낯선 관객들에게 분명히 소구력을 가지지만 흩어놓은 파편들을 아슬아슬하게 수습해 위태롭게 영화를 마무리한다. 영상미도 좋고, 취재력도 기획력도 좋았지만 말이다.
같은 소재 다른 느낌,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와 함께 보면 더욱 좋을 듯?
개봉 영화를 꾸준히 챙겨보는 영화 팬에게는 ‘죽은 자들의 날’이 다른 작품으로 좀 더 익숙할 수 있다. 디즈니에서 제작해 2018년에 국내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 Coco>(리 언크리치, 2017) 역시 ‘죽은 자들의 날’을 포함해 라틴 아메리카의 풍습을 담았다. 주인공이 조부모의 기타를 훔쳐 참가한 음악 경연대회가 ‘죽은 자들의 날’에서 열렸던 것을 기억하는 영화 팬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코코>가 애니메이션 <코코>와 전달하는 메시지는 다르지만, 또 같은 소재를 다른 시각으로 풀어낸 다른 영화라는 점에서 함께 보면 좋을 영화로 추천할 만하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 영화 칼럼니스트 신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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