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를 비롯한 앤트맨 시리즈와 <로키>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으니 읽기 전 주의 부탁드립니다.
<앤트맨> 시리즈는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무수히 많은 영화들 중에서도 유독 가족적인 분위기를 고수했다. '앤트맨' 스콧 랭이 캐시라는 귀여운 딸을 둔 아버지이기도 하고, 비스타의 직원이었던 시절 자신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행동한 것 때문에 법적인 문제에 휘말려(물론 불법 행위인 것만은 명백했지만) 오랫동안 딸을 만날 수조차 없는 상황에 가정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웅적인 행위에 따르는 대가가 앤트맨에게는 가족이었던 셈이다.
다른 히어로들이 가족을 이미 잃었거나 일반적인 가정을 갖지 못한 상태로, 모종의 이유로 함께하게 된 히어로들과 어떤 유사가족의 형태를 구성하며 팀워크를 꾸려갔던 것과 달리(특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그랬다) 앤트맨의 경우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의 형태에 더 집중한 면모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딸인 캐시 랭, 그리고 연인이 된 2대 '와스프' 호프 반 다인과의 관계 그리고 호프가 갖고 있던 가정의 문제는 좀 더 중요했다. 두 번이나 더 수감되어 감옥 신세를 지고, 어벤저스의 일원이 되어 명실상부 히어로의 위치를 갖게 되는 과정 속에서도 이런 부분은 비중있게 다루어졌다.
스콧 랭이 가정을 되찾는 이야기가 시리즈의 1편 <앤트맨>이었다면 호프와 행크가 어머니이자 아내 자넷 반 다인을 되찾는 이야기가 바로 <앤트맨과 와스프>였다.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다른 무엇이 있어야 했다. 가족의 결합은 이루어졌고, 오랫동안 행크 핌과 호프 반 다인 사이에 있던 오해와 불안은 이미 해결되었기 때문에 가족적인 시리즈로서 뭔가 완전히 새로워져야 했다. 말하자면 이들 '앤트맨 패밀리'에게 더이상 해결해야 할 불통과 오해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시리즈의 3편인 이번 영화가 내세운 것은 다시금, '양자영역'이었다.
퀀텀매니아(Quantum Mania), 즉 양자영역 매니아라는 제목은 제법 독특하게 들리면서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MCU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통틀어 이들 '앤트맨 패밀리'보다 더 양자영역과 가까이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 직접적인 방법론을 찾아낸 것은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 '헐크' 브루스 배너였지만, 양자영역에 갇혀 있는 사이 시간이 5년이나 지나버렸다는 것을 알아챈 스콧 랭의 말이 아니었다면 엔드게임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다.
미지의 영역으로만 여겨지고 있던 '퀀텀 렐름', 즉 양자영역에서 3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던 1대 와스프 자넷 반 다인, 그리고 그 30년 동안 양자영역에서 아내를 구해오기 위해 연구한 핌 입자의 권위자 행크 핌, 핌 인더스트리의 CEO이자 아버지의 유지를 잇고 있는 딸 호프 반 다인까지 이 세 명은 세계관 내에서 양자영역 연구에 있어 상당한 권위자일 것이다.
여기에 시리즈의 2편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자넷 반 다인의 귀환이 실제로 가능할 것임을 온몸으로 증명해낸 인물이 바로 '앤트맨' 스콧 랭이었다. 옐로 재킷을 막고 딸을 구하기 위해 스콧은, '원자 이하로 작아져서는 안 된다'라는 행크 핌의 조언을 무시하고 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끝으로 옐로 재킷의 수트 안으로 침투하고 만다. 양자 영역으로 빨려 들어갔던 스콧 랭은 아빠를 찾는 캐시의 목소리를 듣고 기적적으로 생환했고, 이로써 행크 핌은 자넷의 귀환 가능성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양자영역과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은 이 네 사람이었다. 앤트맨 두 사람과 와스프 두 사람. 즉 앤트맨 패밀리보다 양자영역에 대해 잘 알고 오랫동안 연구했던 사람들은 없었다. 연구자가 아닌 스콧 랭도 양자영역을 두 번이나 체험한 참이었으니 누구도 체험하지 못한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 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양자영역을 <앤트맨> 3편의 테마로 잡는 것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었다. 양자영역과 그를 이용한 스토리 전개는 이미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사용되기는 했으나, 양자영역 그 자체를 다루는 방식은 아니었으니, 가장 가까운 이들이 다루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게 그만큼 매력적인 소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탄탄한 서사가 필요하고, 여기에 <앤트맨> 시리즈에서 쭉 보여주어 왔던 매력포인트가 남아 있어야 했다.
<앤트맨> 시리즈의 매력은 앞서 말했듯이 수많은 MCU 시리즈 중에서도 유독 가족애와 가정의 재결합을 다루었다는 점, 그리고 시리즈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녹아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의) 멀티버스 사가의 대표적인 단점으로 거론되는 콘텐츠 연계성과 사전지식의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알아야 할 것이 많지 않았다는 건 사실은 어벤져스를 필두로 한 MCU의 메인 스토리에서 앤트맨이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여전히 앤트맨은 캡틴 아메리카와의 친분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영화는 그걸 유머 요소로 쓴다) 앤트맨 패밀리와 스콧 랭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영화 한 편을 채울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한 서사를 갖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이제 더 복잡한 이야기를 해야 했다. 페이즈 전체에서 맡은 역할이 생겼고, 양자영역을 이용해 멀티버스에 보다 더 가까이 접근함과 동시에 이제까지 MCU 중심 이야기에서 다소 거리가 있었던 앤트맨 패밀리를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와야 했다. 그래서 이번 영화는 30년간 양자영역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자넷 반 다인에게 새로운 과거와 스토리 그리고 캐릭터를 부여했고, 그 계기로 이제 장성한(아직 학생이지만) 스콧 랭의 딸, '피넛' 캐시 랭에게 새로운 앤트맨 패밀리의 이름을 부여했으며 멀티버스에 대한 보다 복잡한 이야기를 덧붙여야 했다.
앤트맨의 딸 캐시 랭은 이번 영화에서 수트를 입고 히어로로서 직접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원작 코믹스에서도 앤트맨의 유지를 이어 활동한 적이 있었으므로 '인피니티 워'를 전후하여 캐시 랭의 성장한 모습이 스크린을 통해 공개되었을 때 이런 추측이 있기는 했으나, 영화상 데뷔한 것은 처음. 무엇보다 이 영화 속 모든 사건의 발단이 캐시 랭의 발명품에 있었기에, 캐시 랭의 비중 확대는 세대교체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그를 뭔가 유의미한 캐릭터로 만들어내는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거기까지는 꽤 자연스러운 연계였다. 하지만 새로운,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앤트맨> 시리즈는 가벼운 매력을 포기해야만 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지난 시리즈와는 달리 알아야 할 게 너무 많아졌다. 그리고 '알아야 할 것' 중에는 아니나 다를까,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로키>의 이야기가 중요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로키>에서 소개한 TVA(시간관리국)의 존재 목적과 타임키퍼들, 그리고 '성스러운 시간선'에 대한 설명이 수반되어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목적과 욕망을 이해할 수 있다. 자넷 반 다인은 왜 그를 막아설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진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기회를 왜 포기해야만 했는지, 이들은 왜 캉을 막기 위해 다시금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부분의 근거가 거기에서 온다.
물론 어떤 이야기나 요인이 다른 콘텐츠에서 올 수는 있다. 이런 서사가 있고 이 캐릭터에게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목적성을 가질 수 있다,는 설명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멀티버스 사가의 다른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역시 스토리라인과 전개에서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는 사건과 배경들은 다른 콘텐츠에서 가져온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를 이해하기 위해 봐야 할 작품이 많은 건 아니다. 다만 발표 당시부터 기대작이었고, 나름의 인기도 구가했으며 멀티버스 사가의 토대가 된 작품 <로키> 시즌 1은 봐야 한다. 이번 영화에서 로키, TVA가 직접 등장하거나 거론되지 않으나 이 부분을 알아야 자넷이 왜 그를 막아서야만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세계관을 토대로 하는 영화라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흐름일 수도 있다. 인피니티 사가가 진행되던 와중에도 각각의 영화들은 연계되어 팀업 무비로 이어졌고, 이전의 히스토리를 알고 있는 관객이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유독 멀티버스 사가에서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디즈니 플러스는 구독 시스템을 탑재한 별도의 콘텐츠 채널로, 세계관을 전부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관에서 스크린 앞에 앉기 위해 관람료를 지불하는 것 외에도 이 채널을 구독하고 신규 독자 콘텐츠가 공개될 때마다 시청을 해야 한다는 어떤 압박감이 작용한다. 요컨대 '알면 더 재미있다'와,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좀 궤가 다른 이야기라는 뜻이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를 보기 위해서는 지난 MCU의 이야기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하며 알아야 할 게 많은 데다가 <로키>의 내용도 알고 있어야 한다. 이 캐릭터는 왜 이렇게 행동하지? 이 캐릭터는 왜 이걸 목표로 하지? 왜 이렇게까지 '이것'에 집착하는 거지?를 단시간 내에 관객에게 이해시키기는 어렵다. 할 말은 너무 많고, 캐릭터도 많아졌고, 원래의 시리즈가 쭉 해왔던 이야기는 고갈됐다. 해야할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탓인지 새롭게 부각된 캐릭터인 캐시 랭에 대한 무엇인가는 뭔가 미묘했고, 종반부의 액션 씬에서도 나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는 하지만 주도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냈다기보다는 ‘앤트맨’ 스콧 랭과 앤트맨 패밀리, 즉 어른들의 의지와 영웅적 행보에 더 기대어 있다는 느낌이다. 영화 자체적인 요소만으로는 글쎼,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모든 사전지식을 배제한다고 했을 때 과연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가 재미있는 작품인가에 대해서는 약간, 확답하기 어렵다. 양자영역이 어떻게 하나의 세계인지, 그리고 시간선의 수호자가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성스러운 시간선'을 지키는 것 그리고 멀티버스의 충돌과 인커전을 일으키는 일이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 앞선다. 만약 영화 내에서 이 모든 설명을 깔끔하게 끝낼 수 있었다면, 상영관을 나온 시점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이런 애매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개인적인 사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어쩐지 <앤트맨과 와스프>가 보여주었던 시리즈의 정체성보다는 멀티버스 사가를 확립하고 거대한 빌런을 내세우기 위한 장치로서의 역할이 더 컸던 것 같아 보인다.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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