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트(캐서린 클린치)는 언제나 외롭다. 가난한 집에서 넷째로 태어난 이 조용한 소녀에게 세상은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는다. 계속된 임신과 집안일로 피곤을 달고 사는 엄마는 코오트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고, 경마와 술에 빠져 지내는 폭력적인 아빠는 코오트를 “겉도는 애”라고 매정히 부른다. 언니들도 동생을 차갑게 대하긴 마찬가지다. 맘 편히 머물 곳 없는 아이는 입을 다물고 풀숲에 죽은 듯 누워있거나 침대 아래 가만히 몸을 숨긴다. 집은 물론 학교에서도 소녀는 잔뜩 움츠러든 모습이다. 열 살이 다 되도록 이불에 오줌을 지리며 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무럭무럭 자라기 위해 적절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시기이건만 코오트는 방치돼 있다. 게다가 엄마는 여섯 번째 아기를 임신했다. 이제 부모는 정말로 코오트를 돌보기 어렵다. <말없는 소녀>는 코오트가 엄마의 먼 친척 부부에게 맡겨진 어느 여름 방학의 정경을 담는다. 크고 깨끗한 집, 온화한 어른들, 고요한 식사 시간. 부부의 보금자리는 코오트가 떠나온 곳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아일린(캐리 크로울리)은 쭈뼛거리며 고개도 잘 못 드는 코오트를 정성으로 돌본다. 따뜻한 목욕물을 받아 말끔히 씻겨주고 깔끔한 옷과 잠자리도 준비해 준다. 여전히 침대에 오줌 싸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 코오트를 나무라지도 않는다. 그저 “매트리스가 오래돼 꺼져버렸네”하고 모르는 척해줄 뿐이다. 아일린과 코오트는 함께 샘터에 물 뜨러 가고 가벼운 집안일을 나눠서 하며 소박한 유대를 쌓는다. 그에 비하면 아일린의 남편 숀(앤드류 베넷)은 훨씬 무뚝뚝하다. 그는 코오트와 눈을 마주치거나 먼저 살갑게 대해주는 일이 좀처럼 없다. 하지만 숀은 “먹는 만큼 일이나 시키세요”라고 무책임하게 말하는 코오트 아빠의 말을 “그럴 필요 없다”고 단번에 잘라내는 성정의 소유자다. 그는 친자식이 없어도 동네 아이들을 위한 시설을 마련하는 데 힘은 보탤 수 있다며 기꺼이 복권을 사는 어른이다. 혼자서 돌아다니지 말라고 코오트를 꾸짖고 난 뒤 숀이 식탁에 자그마한 과자를 놓아두는 대목은 영화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을 만든다. 그런데 <말없는 소녀>는 우여곡절을 통해 인물들 사이의 거리가 차츰 좁혀지고 상처가 점차 치유된다는 식의 빤한 흐름을 거부한다. 대신 아픔과 고통을 필연적 요소로 받아들이는 삶에 대해서, 그러한 인생을 알아가는 성장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말없는 소녀>의 원작은 아일랜드 출신의 걸출한 작가 클레어 키건의 단편 소설 『맡겨진 소녀』다. 소설은 출간 이래 아일랜드 교과 과정에 포함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호평의 중심엔 ‘간결하고 단순한’ 단어 선택과 문장 배열이 있다. “내 많은 작업은 나의 노동의 흔적을 제거하는 데 쓰인다”는 원작자의 말처럼 『맡겨진 소녀』는 많은 것을 덜어내고 최대한 적게 말하려고 한다. 그렇게 잊을 수 없는 여름을 보낸 한 소녀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영화는 소설보다도 말이 적다. 일인칭으로 전개되는 소설은 시점의 제약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되 코오트의 생각과 감정은 매우 상세히 기술한다. 본 것과 보지 못한 것 사이에서 흔들리는 소녀가 어떻게 나름의 방식으로 자라나는지 간명한 언어로 쓰는 것이다. 반면 영화는 내레이션이 없어 인물의 마음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 이따금 산새처럼 종알대는 때가 있기는 하지만 코오트는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가 종종 어린아이 눈높이에 머물며 소녀가 바라보는 세상을 차분히 담으려 한다. 코오트는 많이 보고 적게 말하는 아이다. 영화는 그다지 조급해하는 기색 없이 인물의 그러한 성격을 그대로 따라간다. 본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사이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스민다.
실은 코오트만 말이 없는 게 아니다. 험담을 즐기는 수다스러운 이웃의 등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아일린과 숀이 코오트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다는 건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다. 아일린은 “이 집엔 비밀이 없어”라며 코오트를 부드럽게 안심시키지만 부부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과 바람에 실리는 한숨 소리는 집에 내려앉은 불행의 깊이를 체감케 한다. 부부의 집에서 짧은 여름을 보내는 동안 코오트는 이웃의 죽음을 경험한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죽음이다. 동시에 이웃 아주머니로부터 아일린과 숀의 비밀을 전해 듣는다. 그토록 혼란스러운 밤, 숀은 코오트를 조용한 바다에 데리고 나가 “가끔 이상한 일이 생기기도 하잖니” 하고 읊조리며 멀리 수평선을 바라본다. 아일린과 숀은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양육자가 아니라 실수하고 후회하는 보통의 어른이다. 여기엔 대단한 보살핌의 기술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들이 침묵 속에 나누는 우정이 있다. 그러한 우정은 때로 한 아이의 성장에 너무나 큰 거름이 되기도 한다. 콤 바이레드 감독이 원작에 주목한 맥락도 비슷하다. 그는 소설의 주제를 “가족의 복잡한 유대관계, 감정적·심리적 성장의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슬픔의 현상과 그것이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데 하는 역할”로 정리한다.
<말없는 소녀>는 역대 아일랜드어 영화 중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영화로 기록됐다. 1980년대 아일랜드 농가의 풍경을 담아낸 영화가 1.37:1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비로 촬영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많은 영화가 시점(時點)이나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좁은 화면비를 사용한다. 영화 전체가 플래시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말없는 소녀>도 비슷한 경우로 분류될 여지가 있다. 여러 영화에서 되풀이되는 이러한 형식이 그저 손쉬운 선택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말없는 소녀>가 빈칸으로 남겨두는 어떤 기억들에 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줄곧 소녀의 시점을 따라가면서도 영화는 몇 군데 공백을 남겨둔다. 인물들에게 무척 중요한 순간에 카메라는 뒤로 빠진다. 이러한 태도는 영화에 어둠은 물론이고 의뭉스러운 기운마저 슬쩍 불러들인다.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결코 인물의 전부는 아니다. 그들은 언젠가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그처럼 삶의 축축한 측면을 불러들인다는 점에서 <말없는 소녀>는 제법 흥미로운 영화다. 어느 밤 숀은 코오트에게 “많은 사람들이 침묵할 기회를 놓쳐서 많은 걸 잃었단다”라며 아무 말 안 해도 된다고 다독인다. <말없는 소녀>는 침묵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인다. 동시에 결국 침묵하는 데 실패한 사람들의 괴로움도 안아주려고 한다.
리버스 reversemedia.co.kr
글 손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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