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기일이다. 그는 1925년 장편 <플레져 가든>을 내놓은 이래 유작 <가족 음모>까지 50년 이상 현역으로 활동하며 영화사에 남을 무수한 걸작들을 쏟아냈다. 영화뿐만 아니라 히치콕이라는 개인 자체도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27년 전 세상을 떠난 그를 기리며 그의 독특한 삶에 대해 곱씹어보도록 하자.


19세기에 태어났다

20세기가 되기 4달 전에 태어났다. 1895년 영화의 탄생보다는 4년 늦은 셈. 과일·양계업을 운영하던 부모 사이에서 나고 자랐다. 알프레드라는 이름은 아버지의 형에게서 온 것.  엄격한 카톨릭 집안에서 자란 히치콕은 5살 때 잠시 파출소 유치장에 갇혔는데, 그로 인해 경찰에 대한 공포가 평생을 따라다녔다고 한다. 히치콕은 종종 비만 때문에 어린 시절이 외로웠다고 회고하곤 한다. 그리 밝은 유년은 아니다. 히치콕의 영화 속에 담긴 지독한 유머들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알 법하다.


입만 열면 명언!

필모그래피 전반을 스릴러로 채운 히치콕은 자신의 영화 세계를 단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말들을 많이 남겼다. 대단히 교훈적이거나 감동적이진 않지만, 자신이 천착하는 바를 간명하게 담은 말들은 후대에 전해져 여전히 깊은 깨달음을 주고 있다. 인자한 어른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덕담보다는 어떤 핵심을 지독한 화법으로 표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자의 중얼거림처럼 들린다. 그래서 더 강력한 영감을 제공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주는 놀랍고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 첫 신에서 판가름난다.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가지지 않은 영화를 참고 봐줄 관객은 그리 많지 않다."

"드라마란 지루함이 잘려나간 삶이다."

"말장난이란 문학의 가장 높은 경지다."

"환희를 안겨주어라. 그들이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 느끼는 그 환희."

"가능한 한 많이 관객을 고통스럽게 만들어라."

"복수는 달콤하되 살이 오르게 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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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광들이 진가를 발견했다

지금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추앙 받고 있지만, 히치콕이 한창 활동하던 당대의 미국 평단에겐 그다지 훌륭한 감독으로 인정 받지 못했다. 하지만 <까이에 뒤 시네마>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프랑스 영화평론가 출신의 감독들 - 장 뤽 고다르, 에릭 로메르, 프랑수아 트뤼포, 자크 리베트 등 - 은 그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정작 자국에선 비평적으로 외면 당한 히치콕 영화를 그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손꼽았고, <400번의 구타>를 내놓았던 트뤼포는 1962년 일주일에 걸쳐 히치콕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의 발견과 지지가 히치콕이라는 만신전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카데미와 연이 없다

히치콕은 유독 아카데미 시상식과의 연이 없다. 1941년 <레베카>부터 1961년 <싸이코>까지 20년에 걸쳐 5번 감독상에 노미네이트 됐지만 끝내 오스카를 거머쥐진 못했다. 대신 1968년에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그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로버트 와이즈 감독에게 상을 건네받고선 "Thank you... very much indeed"라고 아주 짧은 소감을 남겼다.

Hitchcock's acceptance speech

자기가 만든 영화를 못 봤다

히치콕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서스펜스에 있다. 일단 한번 시작하면 영화는 미친 듯이 내달리며 사건을 늘어놓으면서 관객의 숨통을 쥐고 흔든다. 그런데 이걸 가장 두려워 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영화를 만든 히치콕 자신이었다. 그는 자기 영화를 단 한번도 보러가본 적이 없고,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참고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1963년 인터뷰에서 밝혔다.
     


귀요미다

상업적으로 꽤 성공을 거둔 감독인 만큼, 히치콕은 수많은 초상 사진을 남겼다. 감독 특유의 근엄한 이미지보다는 장난기 가득한 사진이 많다. 서스펜스 속에서도 빼어난 유머 감각을 녹여낸 그는 자신의 뚱한 표정과 뚱뚱한 외모를 적극 활용해 포토제닉의 주인공이 됐다. 귀엽다. 아주 많이.


필모그래피 75%에 직접 출연했다

히치콕이 자기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했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52편의 작품 중에 무려 39편, 미국에서 제작한 30편에 모두 등장했다. 영화 시작한 후 처음 30분이 지나기 전, 모두 대사 없이 아주 짧은 순간에 휙 지나간다. 거리를 걷고, 버스에 올라타고, 신문 속 사진으로 새겨져 있고, 심지어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실루엣으로도 등장하는 등 나름 캐릭터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하숙인 (1927)
협박 (1929)
39계단 (1935)
의혹의 그림자 (1943)
구명 보트 (1944)
로프 (1948). 도대체 히치콕이 어디 있느냐고? 바로 저 빨간 네온사인.
이창 (1954)
나는 결백하다 (1955)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1959)
새 (1963)
마니 (1964)
가족 음모 (1976)

 


말년까지 영화감독으로 살았다

히치콕의 유작은 1976년 작 <가족 음모>다. 77세에 내놓은 이 작품은 전작 <프렌지> 이후 4년 만에 발표한 작품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한해 전 <짧은 밤>이라는 작품을 준비했지만 건강 문제로 결국 무산됐다. 숀 코너리, 클린트 이스트우드, 스티브 맥퀸 등과 더불어 프랑스의 카트린 드뇌브, 노르웨이 리브 울만이 물망에 올라 있던 작품이어서 그 아쉬움이 더한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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