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미국 버지니아 주에선 백인과 유색인종의 결혼이 불법이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였다. 그러던 어느날, 견고한 미국 헌정에 균열이 발생한다. 백인인 리차드 러빙(조엘 에저튼)과 흑인인 밀드레드 지터(루스 네가)가 주의 법을 무시하고 결혼을 감행한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딱히 미국 헌정을 뒤흔들려는 것도 아니었고, 투사가 되고 싶었던 건 더더욱 아니었다. 세상의 숱한 부부들처럼, 그저 아기가 생겼으니 결혼을 해야겠구나 결심한 것뿐이다.
리차드는 건설 현장 인부로 벽돌 쌓는 일을 한다. 늘 같은 속도와 호흡으로 한 장씩 벽돌을 쌓아나간다. 일하는 동안 그의 손엔 오랜 시간에 걸쳐 손에 익은 평행자가 항시 들려 있다. 과묵하고 무뚝뚝한 리차드는 자신이 가진 것에 충분히 만족하고 자기 손으로 너끈히 이룰 만한 작은 희망만을 가지고 사는 욕심 없는 남자다. 밀드레드는 평소엔 조용히 지내다가도 무언가 원하는 것이 분명히 생기면 단호히 판단할 줄 아는 여자다.
영화의 첫 장면, 밀드레드는 맑고 큰 눈에 어떤 결단을 담은 채로 리차드에게 말한다. “나 임신했어.” 그 말을 들은 리차드는 표정이 없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 리차드가 천천히 표정을 풀며 답한다. “잘됐군.” 리차드와 밀드레드는 충만한 미소로 서로를 본다.
태양이 솟고 달이 지듯 그저 당연한 것. 둘의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흑인들의 마을에서 그들과 섞여 자란 리차드에겐 밀드레드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별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여러 친구들 중 어쩌다 가까워진 여자가 밀드레드였을 뿐일 터다. 자연스럽게 서로를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은 사랑하니 또 자연스럽게 결혼을 했다. 아침이 되면 일어나 일을 하고 저녁엔 잠자리에 드는,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은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 아기가 생겼으니 아기를 낳는 것 모두 그냥 해내면 되는 일로 여겼다. 그런데 자신들이 속한 주 법원이 둘의 결혼을 불법이라 하니 다른 주에 가서 결혼을 해야 했다. 별것 아닌 것이 내것이 되면 그때부터 그건 어떤 것보다 특별해진다. 이제 리차드와 밀드레드에겐 둘 사이의 아기와 그들이 사는 공간과 가족들이 그런 존재가 되었다.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평소와 같이 잠자리에 든 두 사람은 밤중에 난입한 경찰에 의해 어떤 고지도 듣지 못한 채 체포됐다. 만삭 임산부라고 편의를 봐주는 일따위는 없었다. 그나마 백인인 리차드는 하루 만에 풀려났으나 흑인인 밀드레드는 닷새씩이나 우악스러운 백인 남성 경관의 성적인 위협과 혐오감 어린 시선을 홀로 견뎠다. 법정에서 주 법원이 25년간 추방을 명하자 두 사람은 곧바로 짐을 챙겨 고향을 떠나야 했다. 리차드가 정성스레 지은 그들의 집과 가족들은 버지니아에 그대로 남겨졌다.
고향을 떠나서도 두 사람은 열심히 살았다. 고향을 떠난 것 말고는 생활에 바뀐 건 없었다. 리차드는 새로 이사한 동네의 건설 현장에서 일을 찾았고, 밀드레드는 집주인인 친척을 도와 가사를 맡았다. 아이는 어느새 셋으로 늘었다.
1963년, 미국에 새 바람을 일으키리라 기대를 한 몸에 모으던 존 F. 케네디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군사, 의료, 교육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했고, 흑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금지했다. 존 F. 케네디의 혁신이 누군가에겐 몹시 불편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사망했어도 동생인 로버트는 법무부 장관직을 계속 수행했다. 미국 시민들 사이에선 ‘로버트 케네디에게 편지를 쓰면 딱한 사정을 들어줄 것’이란 말이 돌았다. 밀드레드는 약간의 기대를 담아 로버트 케네디에게 편지를 썼다. 뜻밖에도 응답이 왔다.
버나드 코헨이라는, 야심은 만만하나 경험은 많지 않은 신출내기 변호사가 밀드레드에게 연락을 해왔다. 리차드와 밀드레드는 그를 완전히 신뢰하지는 못하면서도 다시 한 번 희망을 걸었다. 버나드 코헨과 인권변호사 필립 히르츠코프가 러빙 부부의 권리를 위해, 미국의 상식과 정의를 위해, 자신들의 야심을 위해 싸웠다.
러빙 부부는 다시 버지니아로 돌아갔다. 아직은 버지니아 입주가 불법이었기에 원래 살던 터전으로 갈 순 없었다. 러빙 부부는 고향인 센트럴 포인트 대신 인근의 인적 드문 킹 앤 퀸 카운티에 새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부부를 응원하는 사람들과 여전히 투쟁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력이 혼재했다. 어느날 <라이프>지의 사진기자 그레이 빌렛이 부부의 집을 방문해 둘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갔다. 밀드레드는 세간에 더 알려져서 아군을 늘리길 원했지만 리차드는 숨죽여 지내며 고난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싶어했다. 밀드레드가 인터뷰를 하며 이목을 끄는 동안 리차드는 자신의 차 안에 부부의 기사가 실린 페이지를 벽돌에 둘러 넣어둔 사람이 누군지, 귀갓길에 뒤따라오는 차에 테러리스트가 탄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경계해야 했다. 러빙 부부는 보이지 않는 위협에 내심 두려워하면서도 침착하고 고요한 일상을 보내려 애썼다.
4년이 흘렀다. 마침내 미국 대법원은 인종 간 결혼금지법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러빙 부부는 누구의 위협도 받지 않고 당당히 양지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러빙 부부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어했지만 부부는 조용히 킹 앤 퀸 카운티로 돌아가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했다.
<러빙>은 미국 헌법을 바꾼 위대하고 영웅적인 투쟁보다 러빙 부부의 평범한 일상에 주목한다. <샷건 스토리즈>(2007) <테이크 쉘터>(2011) <머드>(2012) <미드나잇 스페셜>(2016)까지 제프 니콜스의 모든 영화는 가족과 사랑,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일의 위대함에 관한 영화였다. <러빙>의 실화를 가지고 얼마든지 굉장한 투쟁담을 만들 수 있었음에도 제프 니콜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4년간의 투쟁에 관해서 <러빙>은 결과 외에 아무것도 다른 걸 말하지 않는다. 실제 상황에서 투쟁의 주역은 젊은 변호사들이었겠지만 제프 니콜스는 그들을 어리숙하고 수다스럽고 귀엽지만 은근히 무책임한 캐릭터로 그린다. 세상이 요란하게 뒤흔들리는 와중에도 무게 중심이 놓인 러빙 부부의 집은 고요히 자리를 지킨다. 가족과 이웃, 친구와 타인이 온갖 말들을 쏟아내는 때에도 러빙 부부는 굳은 얼굴 또는 은은한 미소로 그 시간을 견딘다.
제프 니콜스의 모든 영화에서 언제나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 마이클 섀넌이 <러빙>에선 <라이프>지의 사진기자 그레이 빌렛을 연기했다.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불안의 끄트머리를 쥐고 놓지 않는 와중,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장면은 그레이가 러빙 부부를 찾아와 그들의 일상을 촬영하는 짧은 때다. 러빙 부부와 그레이는 시덥지 않은 대화를 나누며 저녁을 함께 먹는다. 설거지를 하던 밀드레드에게 그레이는 말을 건다. “곧 버지니아 주 법정에 출두하죠? … (재판에서) 질 것 같아요?” 밀드레드는 답한다. “괜찮아요. 작은 싸움에 지고 큰 싸움에 이기면 되죠.”
제프 니콜스는 일상과 가족을 유지하고 지키는 것이 어떤 투쟁보다 어렵고 위대한 싸움임을 <러빙>에서 또 한 번 말하고 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윤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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